[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우리는 하루를 얼마나 의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일을 하고, 다시 잠에 드는 이 반복 속에서 ‘오늘’이라는 시간은 종종 특별함 없이 흘러간다. 그러나 헤일리 티프먼의 전시 ‘평범한 하루의 온도’를 마주한 순간, 나는 그 익숙한 하루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마이아트뮤지엄 원그루브점에서 열린 이 전시는 제목 그대로 ‘하루의 온도’를 이야기한다. 도슨트의 설명을 따라 천천히 공간을 이동하며 작품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점점 더 ‘감상자’가 아닌 ‘나 자신의 하루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어갔다. 전시는 거창한 사건이나 극적인 장면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듯한 순간들, 창가에 앉아 햇빛을 받는 시간, 혼자 식탁에 앉아 있는 장면,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의 풍경처럼 우리가 너무 익숙해서 지나쳐버리는 장면들을 담아낸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는 분명한 감정의 결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감정은 ‘온도’라는 감각으로 번역되어 관람자에게 전달된다.
도슨트는 이 전시에서 ‘온도’가 단순한 물리적 개념이 아니라 감정의 은유라고 설명했다. 따뜻한 색감은 위로와 안정감을, 낮은 채도의 차분한 색은 고요함과 때로는 외로움을 담고 있다.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다시 바라보았고, 그제야 화면 속 인물의 표정과 공간의 공기가 조금 더 또렷하게 다가왔다. 어떤 장면은 분명 따뜻했지만 동시에 쓸쓸했고, 또 어떤 장면은 조용했지만 편안했다. 감정은 늘 하나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전시는 조용히 말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여백’이었다. 작가는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이야기의 결말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관람자가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그 자리에 채워 넣도록 남겨둔다. 그래서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하루를 떠올리게 된다. 나 역시 작품 앞에 서서 문득 오래전의 어느 날을 떠올렸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따뜻하게 기억되는 하루였다. 그날의 공기, 빛, 그리고 나의 감정이 겹쳐지며 작품은 더 이상 ‘작가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로 변해갔다.
나는 캐릭터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몽다’와 같은 캐릭터는 비교적 분명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으며, 관람자에게 직접적으로 감정을 건넨다. 그런데 이번 전시를 통해 나는 또 다른 방식의 가능성을 느끼게 되었다.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그저 ‘머물게 하는 방식’. 그것은 훨씬 더 조용하지만 깊게 스며드는 전달 방식이었다.
도슨트의 마지막 설명 중 이런 말이 기억에 남는다. “이 전시는 특별한 하루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신, 여러분의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게 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최근 나의 하루들을 떠올렸다. 바쁘다는 이유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이유로 스쳐지나가 버린 수많은 순간. 그 시간에도 분명 각자의 온도가 있었을 텐데 나는 그것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전시장을 나오며 생각했다. 예술은 거창한 메시지나 강렬한 이미지로만 완성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때로는 아주 작고 사소한 감정을 포착하고, 그것을 조용히 건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일상 속에서 가장 자주 마주하지만, 동시에 가장 놓치기 쉬운 감정일지도 모른다.
‘평범한 하루의 온도’는 나에게 ‘잘 살아야 한다’는 다짐 대신 ‘잘 느껴야 한다’는 질문을 남겼다. 오늘의 나는 어떤 온도를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온도를 나는 충분히 느끼고 있었는지. 아마도 이 질문은 전시가 끝난 이후에도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닐 것 같다. 이어 나는 다시 작업을 시작할 것이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따뜻하게. 내가 만들어낼 또 다른 하루의 온도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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