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기자실은 늘 조용하다. 조용하다고 해서 가벼운 공간은 아니다. 이 곳은 권력이 선언되는 곳이 아니라, 권력이 검증되는 자리다. 정책은 이 곳을 지나야 비로소 공론이 되고, 권력은 이곳을 통과해야 비로소 시민앞에 설 수 있다. 그래서 서울시청 기자실의 공기는 늘 일정하다. 누가 들어오든, 어떤 권력이 들어오든 그 공기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 일정함이야말로 이 도시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질서다.
며칠 전, 그 질서 위로 작은 파문 하나가 스쳤다. 이 날 금요일 오후였다.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캠프 관계자 여럿이 기자실을 갑작스레 닥쳤다. 기자들이 없는 시간이었다. 인솔자가 있었고, 몇 몇은 기자실 공간을 둘러보는 데 집중했다. 일행중 단 한사람과 형식적인 인사가 오가긴 했지만 그 보다 더 선명하게 남은 것은 그들의 걸음의 방향이었다. 이 곳을 대화나누는 공간이라기 보다, 앞으로 지나가게 될 공간처럼 대하는 인상이 느껴졌다. 그 차이는 미묘해 보이지만 사실은 결정적 차이점을 보여준다.
권력은 늘 이런 디테일에서 자신의 얼굴을 먼저 드러낸다.정치는 늘 미래를 전제로 움직인다. 누구나 승리를 상상하고, 누구나 집권을 준비한다. 그러나 미래를 준비하는 태도와 미래를 이미 점유한 듯한 태도는 다르다. 전자는 긴장이고, 후자는 교만함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그 교만함은 대개 작은 장면에서 먼저 드러난다. 문을 두드리는 방식, 공간을 대하는 태도, 사람을 대하는 시선에서 알 수 있다. 그 모든 것이 권력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지를 말해준다.
이 장면을 보며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오세훈과 한명숙 후보간 서울시장 대결때 였다. 개표가 끝나기도 전에 승리를 확신하던 민주당 한명숙 후보 지지자들의 그날 밤 풍경이다. 서울 한복판, 서울 광장에서 그들은 기쁨과 승리의 북을 치고 노래를 불렀다. '당선 확실'이란 자막이 흐르던 그 시간 그들은 "오세훈 방 빼, 당장 방 빼"하고 외쳤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 환호는 이미 결과를 넘어선 듯했다. 그 밤의 열기는 아주 뜨거웠다. 그러나 그 열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아직도 개표 중이었고, 결과는 마지막 순간에 뒤집혔다. 서울은 그렇게 선택했다. 확신에 취한 쪽이 아니라,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은 쪽을 택했다.
서울이란 도시는 늘 그렇다. 감정으로 흔들리는 듯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한 발 물러서서 판단한다. 그래서 서울은 단순한 진영논리의 도시가 아니다. 누가 더 큰 목소리를 내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균형을 지키느냐를 보고 있다. 그 균형감각이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힘이다. 정당도 그 균형 위에 서야 한다. 집권을 꿈꾸는 정당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정권을 잡는 것은 지지층의 열정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유권자 전체에 대한 태도로 결정된다. 그래서 권력은 선거로 만들어지지만 그 품격은 선거 이전에 이미 드러난다.
어떤 언어를 쓰는가, 어떤 자세료 다가오는가, 무엇을 당연하게 여기는가. 그 모든 것이 권력의 수준을 말해준다. 정원오와 그 캠프에게 이와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승리 확신의 강화가 아니라 태도의 겸손함을 보여야 한다.
서울은 단순히 접수하는 도시가 아니다. 이곳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하며, 정책 하나에도 수많은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서울은 누군가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행정은 그 시민을 대신해 일하는 공공의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 위에 올라서는 순간, 누구든 더 낮아져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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