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도자 작업이 흙과 불을 통과한 물질의 시간을 보여준다면, 바심 마그디의 ‘13 Essential Rules for Understanding the World’는 이해하려는 인간의 시간에 제동을 건다.
이 영상은 슈퍼 8 필름을 HD 비디오로 옮긴 2011년 작업으로, 제목만 보면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지침서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작품이 보여주는 것은 질서 정연한 규칙이라기보다, 세계를 규칙으로 붙잡으려는 시도가 얼마나 쉽게 미끄러지는가에 가깝다.
마그디는 영화, 사진, 텍스트, 회화, 설치를 넘나들며 부조리와 불확실성의 문제를 다뤄온 작가다. 그의 작업에서는 역사적 사건, 과학적 상상, 개인적 기억, 꿈같은 이미지가 자주 뒤섞인다. ‘13 Essential Rules for Understanding the World’ 역시 제목은 단정적이지만, 그 안의 세계는 단정적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영상은 무언가를 명확히 설명하는 대신, 설명하려는 태도 자체를 조금씩 우스꽝스럽게 만든다.
이 작품이 전시 안에서 흥미롭게 작동하는 이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단순한 정지나 휴식의 상태에서 한 걸음 더 밀어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확실한 세계 앞에서 빠르게 이해하고 싶어 한다. 원인을 찾고, 규칙을 세우고, 사건을 분류하고, 결론을 내려야 안심한다. 그러나 마그디의 영상은 그런 이해의 습관을 곧장 만족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을 느슨한 불확실성 안에 머물게 한다.
여기서 멈춤은 사고의 포기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빨리 결론 내리는 습관을 중단하는 일이다. 마그디의 영상은 세계가 복잡하다는 사실을 거창하게 선언하지 않는다. 대신 약간의 유머와 낯선 이미지, 어긋나는 문장들을 통해 우리가 붙잡고 있던 확신을 슬쩍 빼낸다. 보는 동안 관객은 무언가를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나 바로 그 어려움 때문에 이해의 속도 자체를 의식하게 된다.
이 세 작업은 서로 다른 매체를 사용하지만, 전시의 핵심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케트너의 작업은 몸을 낮추고 기울이게 만들며 접근성의 문제를 감상의 구조로 바꾼다. 세 오의 도자는 자라나는 것과 굳어버린 것 사이의 긴장을 통해 기다림의 시간을 물질화한다. 마그디의 영상은 세계를 설명하려는 인간의 조급함을 유머와 불확실성으로 늦춘다. 하나는 몸의 속도, 하나는 물질의 속도, 하나는 인식의 속도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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