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지지율 업고 '국론 양분' 정책 속속 추진…전쟁가능한 국가로 '성큼'
중동불안 대처·지방선거 앞둔 자민당 인기가 추동력 유지 관건일듯
(도쿄=연합뉴스) 조성미 특파원 = 취임 반년을 갓 넘어선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강한 일본' 추진 행보에 거침이 없다.
취임 6개월이 되던 지난 21일 그간 원칙적으로 금지됐던 살상무기 수출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방위장비 이전 3원칙과 그 운용지침 개정을 마무리 지었고, '일본판 CIA'로 불리는 국가안전보장국 설립도 국회의 큰 반대 없이 성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절반 남짓한 회기가 남은 이번 특별국회 후반기에도 60%대라는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다카이치표' 우경화 정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장기화하는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고물가가 민심의 불만을 키울 가능성이나 다른 정치인·각료들과의 의사소통이나 조직적 대처보다 총리 혼자 파고들고 결정하는 '원맨쇼' 스타일 통치가 지지율 하락과 추동력 약화를 부를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 우경화 정책 잇달아 '무사통과'…개헌 통한 자위대 헌법 명기가 '정점'될 듯
다카이치 총리는 올 초 중의원(하원) 해산 의사를 밝힌 기자회견에서 "정책 실현을 위한 기어를 한 단계 올리고자 한다"며 3대 안보 문서 조기 개정, 국가정보국 창설, 스파이 방지법 제정, 헌법 개정 등을 언급했다.
모두 찬반이 팽팽해 '국론을 양분할 수 있다'고 인식되는 사안들이었지만, 중의원 선거 여당 압승으로 야당이 반대에 큰 힘을 싣지 못하는 국회 환경과 '강한 일본' 캐치프레이즈에 동조하는 여론을 등에 업고 목표를 착착 달성해가는 중이다.
지난 21일 각의(국무회의)를 통과한 방위장비 이전 3원칙과 운용지침 개정이 대표적이다.
구난, 수송, 경계, 감시, 소해(掃海·바다의 기뢰 등 위험물을 없앰)라는 제한적인 목적을 위한 방위장비로 수출 대상을 제한해오던 일본 정부는 방위장비 이전 3원칙 등 개정으로 원칙적으로 무기 수출이 가능한 나라가 됐다.
전투가 진행되는 나라에는 수출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마저도 '일본 안보'와 연관되는 전투 당사국이라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심사와 국회 통보라는 형식적 조건을 통한다면 가능하도록 큰 변화를 줬다.
우파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실제로 무기 수출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아직 높은 장애물이 있지만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정권 시대에는 있을 수 없었던 첫걸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자위대 창설 이래 처음으로 자위대 간부 계급 명칭을 해외 군대와 비슷하게 변경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전수방위(타국의 공격을 받은 경우에만 방위력 행사)'가 핵심이었던 자위대 성격을 점차 군대로 바꿔나가는 중이다.
일본이 '전쟁 가능 국가'로 변신하는 마침표이자 정점은 다카이치 총리가 내년 봄까지 성안하자고 강조한 개헌을 통한 자위대 헌법 명기가 찍을 것으로 보인다.
제정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식적인 개정이 없었던 평화헌법을 바꾸기란 방위장비 이전 3원칙 변경보다 훨씬 난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카이치 총리와 자민당 연립 여당은 국회 논의 착수 등 관련 절차를 차근히 진행하는 중이다.
또, 다카이치 내각은 국가안전보장전략, 국가방위전략, 방위력 정비계획 등 3대 안보 문서를 올해 개정하겠다며 방위력 강화와 방위비 증액에도 힘을 주고 있다.
이 밖에 법률이나 헌법 조항은 아니지만 사실상 국가 원칙으로 통용돼온 '비핵 3원칙'도 다카이치 정권 아래서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보유하지도, 제조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것으로,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표명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직후 비핵 3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명확히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가 27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리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재검토 회의에 총리나 장관급에서 격하한 외무성 부장관을 보내기로 한 데 대해서도 '비핵 3원칙'이 흔들리는 조짐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들은 다카이치 내각이 '전쟁 가능 국가' 추진 등 우경화에 속도를 내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궈자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방위장비 이전 3원칙 개정 직후 '심각한 우려'를 표한 데 이어 러시아 외무성 관계자도 "무기나 군수품 수출 자유화에 관해 일본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교도통신이 25일 전했다.
◇ 경제안보에도 빗장 채우기…'강한 일본' 만들기 완주할까
군사안보 외에도 다카이치 내각이 힘을 싣는 분야는 경제안보 확보다.
일본 중의원은 정부의 무기 수출 허용이 결정된 지 이틀 뒤인 지난 23일 본회의에서 '일본판 중앙정보국(CIA)'으로 평가받는 국가정보국 신설 법안을 통과시켰다.
중의원에서 연립 여당인 자민당과 일본유신회 외에도 중도개혁연합, 국민민주당, 참정당, 팀 미라이 등 야권도 대거 찬성표를 던져 자민당 연립 여당이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 참의원(상원) 통과도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국가정보원 같은 정보기관을 두고 있지 않던 일본은 총리를 의장으로 국가정보회의를 두고 사무국인 국가정보국이 내각정보조사실, 경찰청, 외무성, 공안조사청 등 각 기관이 모은 정보를 총괄하도록 한다.
국민의 개인정보가 침해될 우려, 야당 견제에 악용될 우려 등이 제기됐지만 다카이치 정권은 추진에 거리낌이 없었다. 처음에는 반대 의견을 내던 중도개혁연합 등 야당도 슬그머니 찬성에 동조했다.
국가정보국은 중국·러시아·북한 등 견제 대상국의 군사 정보나 기밀을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의 전략기술과 관련된 기밀 유출 방지 등 경제 안보에 관한 활동도 활발히 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AI)·로봇 등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첨단 전략기술이나 군사적 목적으로도 활용 가능한 이중용도 기술이 중국 등 경쟁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목적이다.
미국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와 같은 전략기술 기업의 매각 심사 전담 기구를 추진하는 일본 정부는 전략기술에 대한 해외 투자에도 '메스'를 대기 시작했다.
다카이치 내각은 스파이 방지법을 추진하는 한편 중국을 주된 배후로 의심하는 온라인상 정보전에 대응할 정부 조직 신설도 검토 중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주변 강대국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이고 쉽고 대중적인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데다 취임 반년간 지지율을 크게 떨어트릴 만한 실수를 피하면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가시화된 원유 등 공급망 불안을 동남아·중동 산유국 등 국가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타개하고 유가 보조금과 국가 비축유를 과감히 푸는 정책으로 고유가에 대체로 잘 대응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중동 정세의 신속한 해결이 요원해 보이는 상황에서 그가 위기관리에 계속 성공할 수 있을지에는 현지 언론들도 물음표를 표하고 있다.
오는 6월쯤 원유나 나프타의 일본 공급에 빨간불이 켜진다는 지적이 많은데 다카이치 내각 각료들이 '문제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는 비판이 대표적이다.
교도통신이 다카이치 정권 반년에 대한 평가를 묻자 한 전문가는 "첫 여성 총리라는 신선함이 있었고 기대감이 적어도 1년은 갈 것"이라면서도 아베 신조 전 총리 당시처럼 총리 관저가 팀으로 움직인다기보다 다카이치 총리 개인의 판단에 의존하는 '원 우먼 정치'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높은 내각 지지율을 유지하는 다카이치 총리의 인기가 내년 지방선거를 치러야 하는 자민당에는 닿지 않고 있는 현상 역시 뚜렷해지며 자민당이 선거에서 고전할 경우 '강한 일본'을 향한 다카이치 총리의 추동력이 시험대에 오를 가능성도 언급된다.
cs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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