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때부터 누적된 인상 억제분 휘발유 125원·경유 628원
제도 연장하며 재정부담 가중…제도 종료하면 국내유가 폭등
(서울=연합뉴스) 신창용 기자 = 중동 전쟁에 따른 원유 수급 위기 속에서 정부가 시행 중인 '석유 최고가격제'의 출구 전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제도 도입 초기에는 국내 유가 상승 속도를 완화하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했으나 전쟁 장기화로 정부 재정 부담이 커지고, 석유 소비를 억제하지 못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하지만 제도를 당장 종료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간 민생 안정을 위해 억눌러왔던 누적 인상 억제분이 한꺼번에 반영될 경우, 국내 유가가 폭등하며 서민 경제에 막대한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2주 단위로 국제유가 변동률을 반영해 정유사가 주유소 등에 공급하는 출고 가격에 상한을 정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가격을 고정하는 방식에 비하면 시장 변동성을 어느 정도 흡수하므로 반등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상한액이 실제 국제유가의 변동률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6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최고가격제 시행 이후 실제 가격 억제 효과는 상당한 수준이다.
제도를 시행하지 않았을 경우를 가정하면 현재 주유소 판매가격은 휘발유가 리터(L)당 2천200원 내외, 경유는 2천800원 내외, 등유는 2천500원 내외까지 치솟았을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이 2천원 선임을 고려하면 소비자는 이 제도 덕분에 L당 800원 정도의 인하 효과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혜택 이면에 감춰진 '인상 억제분'이다.
정부는 물가 관리와 서민 경제 부담 등을 고려해 국제가격 인상분보다 낮은 수준으로 상한액을 조절해왔다. 그 결과 2차 최고가격 결정 때부터 지금까지 누적된 인상 억제분은 휘발유 125원, 경유 628원, 등유 573원에 달한다.
제도 조기 종료 시 이 차액이 한꺼번에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는 것은 피하기 어렵다.
해외 사례는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파키스탄은 2022년 2∼5월 석유 가격을 동결했다가 해제 직후 휘발유 가격이 66%나 급등하는 혼란을 겪었다.
헝가리 역시 2021∼2022년 가격상한제 기간 중 연료 판매량이 50%나 급증하며 수급 왜곡이 심화했고, 결국 제도가 끝난 뒤 혹독한 가격 조정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렇다고 해서 제도를 무한정 연장하기에는 정유사가 입는 손실 보전을 위한 정부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석유 최고가격제 적용 대상인 휘발유·경유·등유의 국내 일일 소비량은 약 100만∼120만 배럴에 달한다.
정유사 공급 단계에서의 가격 차액을 L당 100∼200원으로만 잡아도 정부가 부담해야 할 월 손실 보전 규모는 5천억원에서 1조원대에 이를 수 있다.
시장의 왜곡을 최소화하면서도 제도 종료 시 발생할 수 있는 충격을 분산할 수 있는 정교하고 단계적인 연착륙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최근 정부가 국제유가 하락 국면에서도 4차 석유 최고가격을 인하하기보다는 동결한 것을 두고 출구 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제유가 하락 시에 최고가격을 동결해 그간 쌓여온 누적 인상 억제분을 줄여 나감으로써 제도 해제 시점의 충격을 미리 완화하려는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석유 최고가격제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며 대안 수단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홍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행 석유 최고가격제는 그 이름과 달리 실질적으로는 정부 재정으로 유가 변동성을 흡수하는 보조금 정책"이라며 "유가 급등 초기의 단기 대응으로서는 역할이 있었으나 이 구조를 장기간 유지하는 것은 재정적으로도, 자원 배분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최고가격제를 점진적으로 축소하면서 유류세 조정과 취약부문 직접지원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기고 출구 시점을 구체화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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