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근한 봄기운이 팔공산 능선을 타고 흐르면, 칠곡 가산산성은 연초록 새순과 들꽃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해발 901m 정상부에 자리한 이 성곽은 조선 시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군사 요새로, 100여 년에 걸쳐 완성된 내성·중성·외성의 독특한 삼중 구조를 갖추고 있다.
1971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이곳은 이제 입장료와 주차비 없이 누구나 걸을 수 있는 트레킹 명소가 되었다. 성벽 틈새로 피어난 봄꽃을 보며 900m 고지에서 탁 트인 도심 풍경을 마주하는 여정을 소개한다.
100년의 세월로 겹겹이 쌓아 올린 삼중 석벽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해 축성되었다. 1640년 가장 안쪽의 내성을 시작으로 바깥쪽의 외성과 그 사이를 잇는 중성이 차례로 지어지며 약 100년 만에 견고한 요새가 완성되었다. 보통의 성곽이 한 줄로 둘러쳐진 것과 달리, 이곳은 세 겹의 성벽이 산 전체를 감싸 안고 있어 조선 시대 성곽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성 안에는 군사 시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행정을 담당하는 관아와 군인들이 머무는 군관청 등이 설치되어 칠곡 지역의 중심지 역할도 함께 수행했다. 성곽의 길이를 모두 합치면 11.1km에 달하는데, 산세를 따라 굽이치는 돌담길을 걷다 보면 조선 시대 석공들의 정교한 기술을 엿볼 수 있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돌을 쌓아 올린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 시절의 긴장감과 조상들의 노고가 몸소 느껴진다.
복수초 군락지와 숲길 따라 즐기는 봄나들이
탐방의 시작점인 진남문을 지나면 서어나무와 물푸레나무가 우거진 아늑한 숲길이 이어진다. 4월이면 성벽 주변으로 노란 복수초가 고개를 들며 봄이 왔음을 알린다. 복수초는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울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지녔는데, 차가운 돌 성벽 사이로 피어난 노란 꽃망울은 방문객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동문으로 향하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여 초보자나 가족 단위 방문객도 큰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특히 가산산성 탐방지원센터에서는 등산 배낭과 스틱, 등산화, 무릎보호대 등을 아무런 대가 없이 빌려준다. 덕분에 가벼운 차림으로 왔다가 뜻밖의 산행을 시작한 이들도 안전하게 정상까지 다녀올 수 있다. 성벽과 들꽃이 어우러진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새 일상의 피로는 잊히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가산바위에서 마주하는 대구의 파노라마 전경
이번 트레킹의 마침표는 성 서북쪽에 우뚝 솟은 '가산바위'다. 수십 명이 한꺼번에 앉아 쉴 수 있을 만큼 널찍하고 평평한 이 바위는 칠곡과 대구 일대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천혜의 전망대다. 바위 위에 올라서면 유학산과 황학산 등 주변 산줄기가 파도처럼 굽이치고, 저 멀리 대구 도심의 윤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맑은 날에는 시내의 건물들이 손에 잡힐 듯 또렷하게 보여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바위 정상부에는 깊게 파인 구멍이 여러 개 있는데, 여기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통일신라 시대 도선 국사가 땅의 기운을 다스리기 위해 쇠로 만든 소와 말을 이 구멍 안에 묻었다는 전설이다. 비록 지금은 그 형상을 볼 수 없지만, 천 년 전 고승의 이야기와 조선의 군사 요새가 한자리에서 만난다는 점이 이곳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든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발 아래 놓인 세상의 풍경은 올라온 보람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Copyright ⓒ 위키푸디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