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 되면 포용과 상생을 말하는 목소리가 커지지만, 정작 고용 현장에서는 다른 현실이 반복된다.
1989년 '장애인고욕촉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이래 시행 35년의 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상당수 기업은 고용보다 부담금 납부를 택하고, 그 비용은 어느새 경영 과정에서 감내하는 관행적 지출처럼 굳어졌다.
문제는 단순히 일부 기업의 소극적 태도로만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직무 특성과 산업 구조, 작업 환경의 제약, 현장 인식의 부족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장애인 고용은 여전히 기업 경영의 후순위에 머물고 있다.
그 사이 제도는 사람을 더 뽑게 하는 장치라기보다, 고용하지 못한 책임을 비용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작동해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겉으로는 제도가 유지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의무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뉴스락>뉴스락>은 장애인 고용을 가로막는 기업 내부의 한계와 제도 설계의 허점을 짚어본다.
장애인 채용 대신 수백억 '부담금' 택한 기업들
기업들이 장애인 채용 대신 수백억 원의 부담금 납부를 선택하면서, 법정 의무고용제도가 사실상 기업의 세금 처리용 비용으로 전락했다.
매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기업들은 상생을 강조하지만 현실의 지표는 정반대의 상황을 보여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민간부문 장애인 고용률은 3.03%로, 법이 정한 의무고용률인 3.1%에 미치지 못했다.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2025년 말 기준 등록장애인이 전체 인구의 5.1%인 262만 7761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민간 노동시장의 진입 장벽은 여전히 견고하다.
특히 상시 300인 이상 민간기업 284곳은 고용 의무를 현저히 불이행해 최종 공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업들은 고용을 확대하기보다 고용부담금을 납부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상시 100인 이상 사업장이 의무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하면 미달 인원 1인당 월 최대 215만 원의 부담금(2026년 납부 기준)을 내야 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 따르면 올해 장애인 의무고용 미이행에 따른 부담금 납부액은 9177억원으로 추산된다.
부담금은 2024년 7471억원, 2025년 8851억원 등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고용 의무를 만성적으로 방기하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HMM, 한국씨티은행, 리치몬트코리아, 데상트코리아 등 51개 기업은 10년 연속 고용 의무 불이행 명단에 포함됐다.
HMM 관계자는 <뉴스락> 과의 통화에서 "전체 인력의 절반에 가까운 해상직(선원)의 업무 특성상 현실적으로 장애인 고용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뉴스락>
이어 "그럼에도 ESG 경영을 강화하고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준수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직무 확대 등을 통해 장애인 채용을 지속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물리적인 채용 한계뿐만 아니라 직장 내 포용성 부족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1%가 자신의 직장에 '배리어프리(Barrier Free)'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답했다.
직장에서 장애를 비하하거나 희화화하는 표현을 들었다는 응답도 17.4%였으며, 76.7%는 한국이 장애인이 일하기 좋은 사회가 아니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2027년 3.3%, 2029년 3.5%까지 단계적으로 상향하고, 고용 컨설팅과 시설장비 무상지원 제도를 확대해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할 방침이다.
박은하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기본적인 노동 접근권조차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현실은 장애인을 '있어도 없는 사람'처럼 취급해온 문제를 보여준다"며 "고용의무제의 실효성을 높여 실제 고용으로 이어지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담금 대신 일자리 택한 기업들...장애인 고용, '의무' 넘어 '모델'로
기업들이 '부담금 납부'라는 손쉬운 우회로를 택하는 현실 속에서도, 장애인 고용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전환하며 실질적인 성과를 입증하는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설립을 통해 지속 가능한 고용 기반을 다지고 있다.
현대차는 100% 지분을 출자해 설립한 '현대무브(Hyundai MOVE)'를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 운영한다.
현대무브는 단순 노무를 배제하고 전통 간식을 재해석한 K-디저트 제조를 시작으로 친환경 굿즈 제작, 사내 카페 운영 등으로 직무 영역을 확장한다.
특히 사업장 전반을 배리어프리 환경으로 조성하고 정신건강 지원 프로그램까지 구축해 종합적인 돌봄 체계를 마련했다.
기아 역시 2024년 장애인 지원자가 동등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독립적인 특별채용 전형을 신설한 데 이어, 2025년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이음'을 설립해 차별 없는 일자리 조성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무브는 기업이 사회적 약자와 어떻게 공존하고 함께 성장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며 “장애인 직원들이 성취감을 느끼고 온전한 자립을 이룰 수 있도록 성장 여정의 동반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업무 영역 확장을 통한 '일자리 기반 포용금융' 모델이 안착하고 있다.
KB금융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KB국민은행을 중심으로 장애인 청년 대상 인턴십을 신규 추진해 중장기 커리어 탐색 기회를 제공한다.
KB손해보험은 사회공헌 사업 기획 등 부가가치가 높은 11개 전용 직무를 새롭게 발굴했으며, KB증권은 철도역사 내 네일케어 매장 '섬섬옥수'를 직접 운영하며 서비스직 고용을 창출했다.
신한라이프도 직무 적합성을 고려해 발달장애인이 전문성을 지속 축적할 수 있는 안정적인 근무 체계를 구축하며 약 20명 규모의 추가 채용을 단행했다.
유통 및 IT 업계에서는 직무 유연성과 밀착 관리를 앞세워 고용 장벽을 허물고 있다.
쿠팡은 장애인을 100% 직접 고용하는 원칙 아래, e스포츠팀 창단과 사무직 전면 재택근무 도입으로 출퇴근의 물리적 제약을 없앴다.
유통업계 유일의 '포용경영팀'을 신설해 채용부터 근무 지원까지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한 결과, 민간 기업 의무고용률을 상회하는 3.64%를 달성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2025년 말 기준 20개 의무고용 대상 계열사 전체의 장애인 고용률 4.2%를 기록했으며, 장애인 직원의 평균 근속연수가 7년에 달할 만큼 고용의 질적 안정을 확보했다.
넥슨코리아 역시 IT 환경에 특화된 맞춤형 직무를 선제적으로 발굴하며 모범 사례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선도 기업들의 이러한 고용 모델 전환이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되기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인센티브와 평가 체계의 연계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이미 시장에서는 장애인 고용을 기업의 핵심 ESG 지표로 평가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실제로 국내 대표 ESG 평가기관인 한국ESG기준원(KCGS)은 사회(S) 부문 평가에서 장애인 고용률을 정량 지표로 다루고 있다.
한국ESG기준원 관계자는 <뉴스락> 과의 통화에서 “사회(S) 부문에서 장애인 고용 관련 정량 수치도 함께 보고 있으며, 수치가 낮은 경우 부정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며 “산업별로 장애인 고용 이슈에 대해 별도 가중치를 차등 적용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뉴스락>
이어 “기업이 의무고용률 미달로 고용부담금을 장기간 납부하거나 불이행 명단에 오르는 경우 실제 평가에도 감점 요인으로 반영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청한 재계 관계자는 "고용노동부의 장애인 고용우수사업자, ESG기준원 등의 장애인고용 우수등급을 획득한 기업에게는 공공기관 입찰 시 가점 부여 등 인센티브 강화를 통해 장애인 고용을 독려해야한다"고 말했다.
고용부담금 '세금 환급' 대법 판결...의무고용 35년, 실효성 기로에 서
최근 대법원 판결로 수백억 원대 장애인 고용부담금이 기업의 합법적 과세소득 공제 대상으로 인정받으면서 재계의 대규모 세금 환급 움직임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고용 확대'를 위한 제도가 사실상 기업의 재무적 방어 수단으로 변질되면서 시행 35년을 맞은 의무고용제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SK하이닉스는 세무당국을 상대로 낸 법인세 경정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종 승소해, 기납부한 부담금에 대한 약 35억 원의 세금을 돌려받게 됐다.
대법원은 고용부담금을 법령 위반에 따른 '제재금'이 아닌, 고용촉진이라는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한 합당한 '사업경비(손금)'로 판단했다.
이번 확정 판결로 매년 막대한 고용부담금을 납부해 온 기업들은 앞다퉈 법인세 환급을 청구할 법적 근거를 확보했다.
인프라 구축과 직무 개발에 투자해 장애인을 직접 고용하기보다, 부담금을 내고 세금 감면까지 받는 구조가 경제적으로 유리해지면서 고용 확대를 유도할 정책적 기능은 사실상 마비될 위기에 처했다.
재계는 단순히 제도를 회피하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산업 구조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제약이 존재한다고 항변한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뉴스락> 과의 통화에서 "민간 기업은 공공기관과 달리 구조적 한계가 뚜렷하다"며 "제조업 비중이 20%대 후반에 달하는 데다 AI 도입으로 전체 인력 수요가 감소하고 있고, 생산·건설 현장은 이미 외국인 노동자로 대체돼 장애인 고용을 지속할 여력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뉴스락>
대외 환경 악화 역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기업 생존 자체가 불확실해지며 비장애인조차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상황"이라며 "고용 유연성마저 약화돼 기업의 전체 채용 규모가 줄어드는 추세라 눈에 띄는 진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장애인 고용이 ESG 경영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징벌적 규제를 넘어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유인책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청각장애인의 높은 집중력을 품질 관리에 활용한 미국 스타벅스의 '사일런트 스토어'처럼, 장애를 특장점으로 전환하는 맞춤형 기술 교육과 국가 차원의 전문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장애인 고용 우수 기업에 인건비 보조나 대출이자 감면 등 구체적인 금융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지원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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