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전효재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중국 시장 진출 24년 만에 전략을 전면 전환하며 재도약에 나섰다. 앞선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중국을 기준으로 제품과 사업 구조를 원점에서 다시 설계하고, 현지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등 절치부심한 모습이다.
현대차는 24일 베이징 중국국제전람센터 순의관에서 열린 ‘2026 베이징 국제 모터쇼’에서 ‘아이오닉 V(아이오닉 브이)’를 세계 최초 공개했다. 지난 9일 공개한 비너스 콘셉트의 양산형 모델이자 아이오닉 브랜드의 첫 중국 전략형 모델이다. 현대차가 중국을 재공략하기 위해 전동화 기술력과 노하우를 결집한 모델인 만큼 현지 시장에서 반향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이날 공개된 아이오닉 V는 전체적으로 날렵하고 날카로운 이미지다. 측면부를 곡선으로 구성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디자인이었던 아이오닉 5·6과 확인히 다른 모습이다. 이는 중국을 겨냥한 현대차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 ‘디 오리진’이 반영된 결과다. 새 디자인으로 시장을 선도하려는 의지를 담았다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현지 파트너사와의 기술 협업으로 상품성도 높였다. 아이오닉 V의 배터리는 중국 배터리 기업 CATL과 협업해 제작됐다. 중국 자율주행 기술 전문 기업 모멘타와 협업해 개발한 첨단 운전자 보조 기술(ADAS)도 적용됐다. 현대차는 핵심 기술을 직접 내재화해야 한다는 기조로 미래차 시장에 접근해 왔지만 중국에서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중국의 혁신적인 산업 생태계를 적극 활용하고, 중국 현지에 최적화된 차량으로 시장 반등을 이끌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현대차의 이번 행보는 중국 시장에서 약화된 입지를 회복하기 위한 재도전 성격이 짙다. 과거 중국 시장은 현대차에 조(兆) 단위 매출을 안겨주던 시장이었다. 2002년 EF쏘나타를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중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6년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대를 달성했다. 2013~2016년에는 4년 연속 10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가파른 성장세가 꺾인 건 2017년부터다. 사드 배치 문제로 한국과 중국의 갈등이 부각됐고, 2019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도시가 봉쇄되면서 판매량이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대외적인 변수가 현대차에 악재로 작용했다.
중국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점이 패착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중국 정부는 2010년부터 전기차 등 신에너지차 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했다. 중국 로컬 신에너지차 기업이 점유율을 키우며 경쟁 구도가 확연히 달라졌다. 배터리부터 완성차까지 수직계열화하며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한 BYD가 시장 점유율을 확대했고, 화웨이를 비롯한 IT 기업도 지능형 차량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차량의 완성도를 넘어 기술로 경쟁의 무게추가 이동했다. 올해 베이징모터쇼의 키워드도 ‘지능의 미래’다.
그동안 현대차의 입지는 계속 좁아졌다. 중국에서 운영하던 5개 공장 일부를 매각하거나 가동률을 중단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한때 현대차의 중국 시장 철수설이 돌기도 했지만, 현대차는 중국을 포기하지 않았다. 세계 최대 규모 시장인 만큼 점유율을 조금만 높여도 성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현지 전기차 업체가 주도하는 어려운 시장이지만, 전체적인 규모가 거대하다”며 “한 세그먼트(차급)라도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면 따라오는 구매력이 크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는 강력한 현지화를 통해 중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갈 방침이다. 이번에 내세운 새로운 감각의 디자인이나 행성 컨셉의 차량 모델명도 중국 소비자가 선호하는 미래지향적 느낌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 관계자는 “지커나 BYD 등 중국 차들이 미래지향적 디자인을 앞세우는 만큼 현대차도 양산차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디자인이나 최첨단 기술 느낌을 강조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호세 무뇨스 대표이사 사장은 이날 행사에서 2030년까지 베이징현대의 연간 판매량을 50만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로드맵을 제시했다. 지속적인 투자와 현지 맞춤형 제품 개발, 파트너사와의 협력 등 중국 시장을 위한 종합 전략도 함께 발표했다. 현대차는 지난해 합자 파트너인 베이징자동차그룹과 함께 베이징현대에 80억위안(약 1조5500억원)을 공동 투자한 바 있다. 이를 기반으로 중국의 혁신 산업 생태계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현대차가 현재 포화 상태인 중국 시장에서 브랜드 경쟁력을 입증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중국 시장을 향한 의지는 강력하다. 무뇨스 사장은 이날 행사에서 ‘중국에서, 중국을 위해, 세계로’라는 기조를 내세우며 “중국은 단순히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을 넘어 가장 앞선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중심 차랑(SDV) 생태계를 가진 곳”이라며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중국에서 진정한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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