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장애인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명문화해 장애계에 ‘헌법’으로 지칭되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법을 통해 장애인은 보호 대상이나 복지 제공의 객체를 넘어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권리 주체’로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행이 2년 남은 만큼 후속 입법과 정책 지원 향방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4일 국회에 따르면 국민의힘 최보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해당 법안은 전날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180명 중 찬성 177명, 반대 0명, 기권 3명으로 가결됐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이재명 국민주권정부 장애분야 핵심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UN CRPD)의 관점에 따라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보고 존엄과 자율성,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생활, 사회참여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8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해 같은 해부터 당사국이 됐다.
그동안 국내에도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등 관련 법률이 존재해 왔다. 구체적으로 장애인복지법은 주로 서비스 제공과 생활 지원 등 복지 체계를 규정해 왔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차별이 발생했을 때 이를 금지하고 시정하는 데 초점을 맞춰 기능해 왔다.
그러나 이번 법은 기본법적 성격을 지니며 장애인 관련 개별 법률의 해석과 정책 수립의 기준이 되는 ‘상위 지침’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는 평가다. 장애인권리보장법으로 장애인이 비로소 권리 주체의 중심이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법이 제정되기까지는 1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법은 처음 논의된 이후 여러 차례 발의와 폐기를 반복했다. 국회 회기마다 논의가 이뤄졌지만 임기 만료로 번번이 폐기됐고 그 과정에서 장애계의 요구와 정부·국회의 현실적 부담이 충돌해 왔다.
입법이 장기화된 배경에는 법의 성격과 세부적인 내용이 거론된다. 법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키우는 만큼 정부 입장에서는 예산과 조직, 정책 전반을 새롭게 설계해야 하는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장애계가 요구해 온 대통령 직속 국가장애인위원회 설치, 권리옹호체계 구축, 특별기금 조성 등 강한 제도적 장치가 최종 법안에 상당 부분 반영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부담과 무관하지 않다.
이번 법의 주요 내용 중 하나인 탈시설 권리 역시 입법 장기화에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이며, 아직까지도 논쟁 중인 영역으로 남아 있다.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자립적으로 생활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하고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제한하는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시설화’ 등 필요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했다. 장애인의 탈시설 권리가 법률에 명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만 탈시설의 구체적 절차나 지원 규모, 시설 전환 계획 등은 법률에 세부적으로 담기지 않아 향후 시행령과 후속 입법, 예산 편성 과정에서 구체화돼야 할 과제로 남았다.
일부 장애인 가족과 보호자들은 현실적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탈시설 정책이 앞서갈 경우 그 부담이 당사자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해 왔다.
특히 중증장애인의 경우 24시간 지원 체계와 안정적인 주거, 의료·돌봄 연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설 축소가 먼저 진행되면, 자립이 아니라 또 다른 방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지역사회 인프라와 예산이 뒷받침될 경우 탈시설을 둘러싼 상당수 갈등과 우려는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따라서 장애인권리보장법 통과는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닌다기보다 탈시설 등 갈등이 이어지던 분야에 새로운 변화를 알리는 출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법이 장애인의 권리를 명문화했다면 이제는 그 권리가 실제 삶에서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이 과제로 산적해 있다.
전문가들도 법안 시행까지 2년이 남은 만큼 지역사회 기반의 주거·돌봄 인프라 확충, 안정적인 예산 확보, 단계적인 탈시설 로드맵 마련 등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전지혜 교수는 법 통과를 크게 환영하면서도 장애인권리보장법이 실질적인 권리 보장 체계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장치들이 충분히 담기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국가가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편성할 때 장애인의 관점이 사전에 반영되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장애인지 예산(정책 및 사업을 만들 때 장애인 관점에서 점검하기 위해 들이는 예산)이나 장애 포괄성을 사전에 검토하는 제도가 함께 마련돼야 법이 선언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한국장애인개발원이 향후 장애인권리보장원으로 전환될 경우 기존처럼 개별 사업을 수행하거나 사후적 대응에 머무르는 수준을 넘어야 한다고 봤다.
전 교수는 “장애인개발원은 장애인 일자리, 탈시설, 배리어프리 인증 등 중앙 단위의 다양한 사업을 맡고 있지만 기관의 인력과 예산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규직보다 비정규직 인력이 훨씬 많은 구조와 제한적인 예산으로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의 취지를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도 이날 성명을 통해 “정부는 이 법률에 새겨진 권리가 장애 당사자의 실제 삶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도록 후속 과제의 이행에 끝까지 책임 있게 나서야 할 것”이라면서 “우리 모임 또한 새롭게 제정된 법이 실효성을 발휘해 차별을 철폐하고 장애 당사자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밑거름이 되도록 끝까지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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