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경기, 대전을 잇는 사흘 일정 동안 북유럽 대표단의 시선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기술이 자리 잡는 방식에 머물렀다. 주한 덴마크·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 대사관이 21일부터 23일까지 공동 개최한 ‘한+노르딕 혁신의 날’은 인공지능(AI)을 둘러싼 협력 논의를 전면에 내세웠지만, 결론은 기술이 아닌 ‘사람’으로 모였다. 인간과 기술이 어떻게 함께 일할 것인가, 그리고 그 관계를 어떤 제도와 신뢰 위에 올릴 것인가가 이번 일정의 핵심이었다.
23일 대표단은 첫날 고양 현대모터스튜디오에서 인간-로봇 협업 사례를 점검한 뒤 한국전자기술연구원(KETI)으로 이동해 스마트 제조와 산업용 AI 적용을 주제로 연구진과 마주 앉았다. 대전 KAIST 어반 로보틱스 랩에서는 휴머노이드와 도시형 로봇을 둘러보며 기술 구현보다 적용 환경과 협업 구조에 초점을 맞춘 논의가 이어졌다. 단순 시찰이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 인간과 AI가 함께 작동하는 조건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날 서울 콘래드 호텔에서 열린 핵심 세션은 논의의 방향을 분명히 했다. ‘인간-AI 협업: 생산적인 파트너십’을 주제로 열린 이 자리에는 정부·학계·산업계 등 150여 명이 참석해 AI가 일의 방식과 조직 구조, 의사결정과 생산성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짚었다.
기조 세션에서 이다르 크뢰이처 노르웨이 기업연합(NHO) 특별고문은 “AI는 글로벌 경쟁력과 노동시장 구조를 동시에 재편하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산업 전략을 위해서는 기술 혁신과 함께 신뢰와 사회적 책임을 고려한 접근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다 레데매키 AI 핀란드 COO는 “산업 현장에서 AI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생태계 차원의 협업이 핵심”이라며 “북유럽은 기업 간 협력과 인재 역량 강화를 통해 산업용 AI의 실질적 활용을 확대해 왔다”고 설명했다.
안데르스 빌레쇠 벡 유니버설 로봇 부사장은 온라인 발표에서 “완전 자동화보다 인간과 로봇의 협업이 더 빠르고 확장성이 높다”며 “AI와 데이터 기반 협동 로봇이 제조 혁신의 다음 단계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스테판 벤딘 스웨덴 RISE 국립연구원 부문장은 “AI 대응형 사회는 기술 인프라를 넘어 인간 중심 설계와 확장 가능한 AI 엔지니어링이 함께 작동하는 사회”라며 “인간-AI 협업은 기술이 아닌 사회 시스템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진 세션에서는 ‘거버넌스·역량·신뢰’가 반복해서 언급됐다. 산업 적용과 통신 인프라, 교육과 인재 양성까지 논의가 확장됐지만, 방향은 일관됐다. 기술 도입 속도보다 그것을 운영할 제도와 기준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이번 행사는 북유럽 대사관들이 2019년 출범시킨 ‘노르딕 토크 코리아’의 연장선에 있다. 기술 협력 플랫폼으로 시작된 논의는 이제 기술을 넘어 사회 시스템 설계로 이동하고 있다. 제조 역량과 기술 구현에 강점을 가진 한국과, 제도와 신뢰 기반 설계에 강점을 가진 북유럽이 어디에서 만날 것인지가 이번 일정에서 구체화됐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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