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만 더봄] 1990년대, 서태지가 시대를 열고 한류가 세계를 두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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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 더봄] 1990년대, 서태지가 시대를 열고 한류가 세계를 두드리다

여성경제신문 2026-04-24 13:00:00 신고

팬덤의 탄생, 표현의 해방, 그리고 한국 음악이 국경을 넘던 순간

1980년대가 브라운관과 은빛 원반이 스타를 만들어낸 '시스템의 시대'였다면 1990년대는 그 시스템이 가두어 놓은 담장을 단 한 팀이 완전히 허물어버린 '혁명의 시대'였다. 1992년 4월 MBC  <특종 tv 연예> 무대에 처음 등장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었다. 랩과 댄스와 록이 하나의 몸 안에 뒤섞인 그 낯선 소리 앞에서 심사위원들은 최하점을 주었지만 거리의 청년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언어임을 직감했다.

당시 심사위원들의 당혹감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1980년대의 귀로 1990년대의 소리를 듣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브라운관 앞의 10대들은 달랐다. 그들은 악보도 읽지 않고 장르의 이름도 몰랐지만 그 음악이 자신들을 대변한다는 것만큼은 온몸으로 알았다.

<교실이데아> 는 입시 지옥을 정면으로 고발했고  <시대유감> 은 시대의 억압을 향해 마이크를 겨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위대한 것은 단지 음악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그들은 청소년들에게 처음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어른'을 경험하게 해주었다.

그전까지 대중음악이 10대에게 건넨 것이 사랑과 이별의 감정이었다면 서태지는 입시 제도의 폭력성과 사회의 모순을 노래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것이 단순한 가수가 아닌 문화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그리고 그 선언 앞에서 청소년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를 만났다는 감격으로 이전 어느 세대도 보여준 적 없는 방식으로 반응했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난알아요> 음반 이미지 /사진=김성만 
서태지와 아이들 1집 <난알아요> 음반 이미지 /사진=김성만 

사전 심의 폐지, 70년대부터 이어진 싸움의 끝

그 반응이 결국 제도를 바꿨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 <시대유감> 이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 과정에서 가사 일부를 강제 삭제당했을 때 팬들의 분노는 단순한 항의를 넘어 하나의 사회 운동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이 사건은 매우 상징적이다. 권력이 <시대유감> 이라는 제목의 노래에서 하고 싶은 말을 지워버렸으니.

그러나 지워진 가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의 입에서 더 크게 불렸다. 이미 1970년대부터 신중현의 음악이, 1980년대에는 민중가요가 이 칼날 아래 금지되고 삭제되었던 역사가 있었다. 그 긴 싸움의 끝에 정태춘을 비롯한 음악인들이 수십 년간 이어온 사전 심의 철폐 투쟁이 마침내 결실을 맺으며 1996년 공연윤리위원회 사전 심의제가 폐지되었다.

금지곡 가수와 제목, 금지곡 사유 /사진=김성만 
금지곡 가수와 제목, 금지곡 사유 /사진=김성만 

이 순간의 의미는 단순히 한 법 조항이 사라졌다는 데 있지 않다. 음악이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고도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1970년대 신중현이 일렉트릭 기타로 한국의 몸짓을 록 안에 심을 때부터, 1980년대 캠퍼스 어둠 속에서 민중가요가 낮은 목소리로 타오를 때부터 그 오랜 저항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하나의 제도를 무너뜨린 것이었다.

그 이후 한국 대중음악의 표현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롭고 다양해졌다. 오늘날 K-팝이 세계 시장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언어를 쏟아낼 수 있는 것, 그 자유의 뿌리 중 하나가 바로 이 싸움의 결실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다.

기획형 아이돌의 탄생과 1990년대 음악의 풍요로운 공존

표현의 자유가 열리는 동안 음악 산업의 내부에서는 전혀 다른 성격의 혁명이 조용히 완성되고 있었다. SM엔터테인먼트의 H.O.T.가 1996년 데뷔했을 때 한국 대중음악은 처음으로 '기획된 완성품'으로서의 아이돌을 경험했다.

노래와 춤, 외모와 캐릭터, 심지어 팬덤의 색깔과 응원 도구까지 치밀하게 설계된 이 시스템은 그 전까지 없었던 것이었다. 이전 시대의 스타들이 실력으로 살아남거나 우연히 발굴되었다면 H.O.T.는 처음부터 '스타가 되도록 설계'된 존재들이었다.

H.O.T.의 흰 풍선, 젝스키스의 노란 풍선, S.E.S.와 핑클의 등장으로 팬덤은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비가 쏟아져도 우비를 입고 공연장을 지키던 그 소녀들의 충성심이, 훗날 전 세계 공항을 가득 메우는 K-팝 팬덤의 직계 조상이었다.

HOT 1집 앨범 /사진 =김성만 
HOT 1집 앨범 /사진 =김성만 

그러나 1990년대의 음악이 아이돌 일색이었다고 기억하는 것은 오해다. 같은 시기 홍대 앞에서는 크라잉넛과 노브레인 같은 인디밴드들이 자신들만의 무대를 만들었고 드렁큰타이거는 한국어 힙합의 가능성을 실험했다. 신승훈과 조성모의 발라드는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며 대중의 감수성을 깊이 파고들었다.

아이돌의 화려함과 인디의 날 것, 발라드의 서정과 힙합의 거칠음이 하나의 시대 안에서 서로를 비추며 공존했던 것이 1990년대였다. 지금의 K-팝이 단일한 장르가 아닌 하나의 '생태계'로 불리는 것도 이 시기에 그 다양성의 씨앗이 함께 뿌려졌기 때문이다.

길보드차트의 역설, 밀리언 셀러의 시대, 그 빛과 그늘

음악이 이처럼 풍요롭게 흘러넘치던 시절 그 풍요는 공식 음반 시장만의 것이 아니었다. 199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뜨거운 밀리언 셀러의 시대이기도 했다.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 이 300만 장을 돌파하고 신승훈과 조성모가 각각 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밀리언 셀러'라는 단어가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된 시절이었다.

김건모 3집 <잘못된만남> /사진=김성만 
김건모 3집 <잘못된만남> /사진=김성만 

그런데 이 화려한 숫자 뒤에는 불편한 그늘이 있었다. 길거리에서는 무단 복제된 카세트테이프가 버젓이 팔렸다. 공식 음반 가격의 몇 분의 일로 살 수 있었던 그 복제 테이프들은 어느 골목에서나 구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이것을 비틀어 '길보드차트'라고 불렀다.

빌보드차트를 패러디한 이 씁쓸한 신조어는 그 시대 저작권 의식의 민낯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지금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만약 그 시절 무단 복제가 없었더라면 <잘못된 만남> 은 300만 장이 아닌 500만 장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길보드차트가 먹어치운 그 숫자들이 아깝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면 당시 한국 대중음악이 그만큼 강렬하게 대중의 일상 속에 침투해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복제 테이프를 통해서라도 노래는 더 많은 사람의 귀에 닿았고 그 귀들이 결국 한국 음악의 첫 번째 글로벌 청중이 되는 씨앗이 되었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저작권 침해가 한류의 예행연습이었던 셈이다.

당시 길보드차트라고 불려지던 불법음반  노점상. AI 재현 이미지 /구성=김성만
당시 길보드차트라고 불려지던 불법음반  노점상. AI 재현 이미지 /구성=김성만

인터넷이 열고 NRG가 두드린 세계의 문

그리고 1990년대 말,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중요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인터넷이었다. 디지털 음원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고 음악은 물리적인 매체 없이 데이터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LP에서 카세트테이프로, 카세트테이프에서 CD로 이어진 음악의 몸이 이번에는 아예 몸을 지우고 신호로만 존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변화가 가져온 가장 극적인 결과 중 하나가 바로 NRG의 중국 진출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당시 중국이 어떤 나라였는지를 먼저 짚어야 한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은 조심스럽게 문호를 열기 시작했다. 그 이전의 중국은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철저히 닫힌 나라였다. 외부의 음악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없었고, 당연히 음악적 다양성도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나마 중국 청소년들의 귀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은 정서적으로 가장 가까운 홍콩의 음악이었다.

장국영, 유덕화, 여명으로 대표되는 홍콩 배우 겸 가수들의 느와르 영화 OST와 광둥어 발라드가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가장 세련된 음악'의 전부에 가까웠다. 느리고 서정적인 그 음악들은 아름다웠지만 그 세계가 전부였던 중국 청소년들에게는 비교 대상 자체가 없었다.

바로 그 자리에 한국 댄스 음악이 들어온 것이다. 복제 테이프와 초기 인터넷을 타고 중국 청소년들에게 흘러들어간 한국 아이돌의 음악과 비주얼은 그들이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것이었다. 칼같이 맞아 떨어지는 군무, 화려한 의상, 그리고 또래의 얼굴을 한 젊은 가수들이 내뿜는 에너지···. 홍콩 발라드의 아름다운 서정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충격이었다.

NRG가 중국 무대에 섰을 때 돌아온 환호는 단순한 인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며 처음으로 신선한 바람을 맞은 사람들의 반응이었다. 한국 대중문화가 자국 시장을 넘어 아시아 전체의 감수성을 건드릴 수 있다는 가능성의 첫 신호였고 '한류(韓流)'라는 단어가 중국 언론에 처음 등장한 것이 바로 이 무렵이었다.

그러나 한류의 물결이 거세게 밀려들수록 그 안에 균열도 생겨났다. 특히 중국에서의 한류는 한때 주춤거리는 시간을 겪은 시기도 있었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중국의 자존심이었다.

같은 시기 한국 가수들이 일본 시장에서는 일본어로 음반을 내고 일본 정서에 맞게 코디와 무대 퍼포먼스를 세심하게 맞춰가는 동안 중국 무대에서는 여전히 한국어로만 노래했다. 중국 팬들이 그 차이를 몰랐을 리 없다. 음악을 사랑해도 마음 한구석에 남는 그 불균형의 감각. 그것이 결국 대륙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이후 정치적 갈등과 맞물리면서 중국 내 K-pop은 한동안 거친 파도를 만나야 했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안재욱은 달리 중국에 접근했다. 그는 중국어로 음반을 취입했고 중국 팬들의 언어로 직접 말을 걸었다. <친구> 는 그렇게 국경을 넘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중국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중 하나로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음악이 언어를 택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조용히 증언한다. 한류가 '현상'이 되기 이전에 이미 그것을 '관계'로 만든 사람들이 있었고 증명했다. 

돌이켜보면 1990년대는 K-팝이 탄생한 시대가 아니라 K-팝이 될 것들이 한 자리에 모두 모인 시대였다. 서태지가 허문 장르의 벽, 사전 심의 폐지가 열어준 표현의 자유, 기획사 시스템이 완성한 아이돌의 문법, 팬덤이 증명한 집단적 열정, 그리고 인터넷이 열어준 국경 없는 통로. 이 다섯 가지가 한꺼번에 1990년대라는 그릇 안에 담겼다.

다음 연재에서는 2000년대, 그 그릇 안의 모든 것이 마침내 하나의 이름 'K-팝'으로 불리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 시장으로 폭발하는 순간을 따라가고자 한다.

공연윤리위원회= 1976년부터 1997년까지 존재했던 민간 기구로 음반, 영화, 공연물 등에 대한 검열과 심의를 담당했다. 특히 사전 심의를 통해 가사나 내용을 규제했으나 1996년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결로 사전 심의 기능이 폐지되었으며 현재는 영상물등급위원회와 한국공연예술보호위원회가 그 역할을 나누어 맡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김성만 음악프로듀서 공연기획자
musicman2@hanmail.net

김성만 음악프로듀서·공연기획자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Bassiano Accademia delle Arti에서 예술 매니지먼트 최고 과정을 수료했다. 삼성에버랜드 엔터테인먼트팀 음악감독과 전략기획팀을 거치며 대형 공연·전시·테마 콘텐츠의 음악 및 기획을 담당했다. 국내외 대형 문화행사를 비롯해 엑스포, 국가 기념행사, 테마파크, 영상·게임·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숭실대학교, 수원여자대학교 대학원, 경민대학교 등에서 공연기획과 음악콘텐츠 프로듀싱을 강의했으며, 현재는 서울재즈아카데미(SJA)에서 후진 양성에 힘쓰는 한편 문화예술콘텐츠 기획·제작사 (주)바콘웨이브 대표로 활동 중이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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