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한강을 따라 걷다 보면, 바람과 빛이 머무는 작은 공간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사각사각플레이스는 나에게 단순한 작업실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이야기가 쌓이는 ‘시간의 장소’였다. 그리고 2026년, 나는 이 공간과의 시간을 다시 더 이어가게 되었다.
재계약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기쁨’보다는 ‘장면’이었다. 주말마다 스튜디오를 찾아와 조심스럽게 3D펜을 쥐던 아이의 손, 자신이 만든 작은 조각을 건네며 웃던 시민의 표정, 그리고 그 조각들이 하나둘 쌓여가던 순간들. 지난 2년은 어떤 결과보다도 그런 장면들로 기억된다.
사각사각플레이스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작업의 방식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전까지의 작업이 비교적 개인의 내면에서 출발했다면, 이곳에서는 자연스럽게 ‘함께 만드는 과정’으로 확장되었다. 누군가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도 괜찮았고, 완성도가 조금 부족해도 문제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참여했다는 경험’과 ‘함께 만들었다는 감각’이었다.
특히 3D펜을 활용한 체험 프로그램은 나에게도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평면 회화에서 출발한 나의 작업이 입체적인 형태로, 그리고 타인의 손을 거쳐 만들어지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냈다. 참여자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형태를 만들고, 감정을 담고, 때로는 그 안에 작은 소망을 담아내기도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예술은 결국 ‘표현을 나누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시도들도 이어지고 있다. 시민 참여 경험을 조금 더 확장하고 연결해보고 싶은 고민 끝에 시작된 프로젝트가 있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 칼럼을 통해 조금 더 천천히 풀어보려고 한다.
이번 재계약은 나에게 단순한 연장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의 ‘과정’을 끝까지 책임지고 완성할 수 있는 기회에 가깝다. 사각사각플레이스의 입주 조건상, 이번이 청년예술가로서 이 공간에 머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단단한 마음이 든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을 흩어지지 않게, 하나의 결과로 이어내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나는 여전히 작업을 한다. 한지 위에 색을 올리고, 캐릭터를 그리고, 이야기를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의 손에서 시작된 작은 시도들이 이어지고 쌓여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도 나에게는 중요한 작업이 되었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혼자 만드는 작가’에서 ‘함께 이어가는 작가’로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시작된 사각사각플레이스에서의 시간 동안 나는 이 공간에서 조금 더 천천히, 그리고 깊게 머물러보려 한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체험일 수 있지만, 그 안에서 만들어진 작은 기억 하나가 오래 남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기억들이 모여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사각사각, 다시.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그리고 조금 더 따뜻하게 이어가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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