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약 8000억원 규모의 태국 차세대 호위함 수주전에 한국·싱가포르·튀르키예·스페인 등 6개 글로벌 조선사가 뛰어든 가운데, 국내에서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나란히 참가해 해외 사업에서 이례적으로 맞붙게 됐다. 이르면 내달 중 최종 수주업체가 선정될 전망인 가운데, 이번 수주전의 승부를 가를 핵심 변수로 절충교역(Offset)이 거론되고 있다.
◇ HD현대·한화오션, 개별 경쟁으로 참가
2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업은 4000t급 호위함 1척 규모로 시작하지만, 태국이 향후 동일급 함정 추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어 후속 사업까지 포함하면 전체 시장 규모는 최대 3조원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이번 사업에서 HD현대와 한화오션의 동반 참가는 ‘원팀’ 예외 조항이 적용된 결과다. 지난해 2월 방위사업청과 양사가 체결한 ‘함정 수출 원팀 MOU’는 수상함 수출은 HD현대, 잠수함은 한화오션이 주관하도록 역할을 분담하고 있지만, 태국 해군이 양사 모두에 정보요청서(RFI)를 개별 발송하면서 각자 참전이 가능해졌다.
태국 현지 매체 카오솟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제안서를 제출한 업체는 HD현대와 한화오션을 비롯해 싱가포르의 ST엔지니어링, 튀르키예의 ASFAT와 TAIS, 스페인의 나반티아 등 6개사로 확인됐다. 제안요청을 받은 다멘(네덜란드)·핀칸티에리(이탈리아)·SK오션플랜트(한국)·CSTC(중국)·로소보론엑스포르트(러시아) 등 5개사는 기한 내 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 “구매자에서 제조자로”…태국의 3단계 로드맵
태국 영문매체 타이 인콰이어러에 따르면, 태국 해군은 지난 20일 태국 내 조선소와 태국조선수리협회(TSBA), 국가과학기술개발원(NSTDA) 등과 절충교역 정책회의를 열고 평가 기준을 공식 확정했다. 파라치 라타나차이야판 해군 대변인은 “이번 사업을 통해 파트너와 협력해 기술이전과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고, 태국 조선산업을 육성할 발판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파라치 대변인은 이번 사업의 목표를 기술이전·인력양성·태국산업의 글로벌 공급망 편입을 통해 태국을 구매자(buyer)에서 제조자(builder)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경로로 세계적 조선사로부터 기술을 습득하고, 부분 국산화를 거쳐 완전 국산화로 나아가는 ‘3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절충교역 평가는 국내 투자, 연구·기술이전, 인력 양성, 공동생산, 국내 자원 활용 등 5개 축을 기준으로 하며, 상한액 없이 국가에 기여하는 부가가치에 따라 결과 중심으로 평가한다. 또한 지식재산권을 포함한 완전한 기술이전이 핵심 평가 기준으로 명시됐으며, 현지 건조 비율 최소 20% 조건도 공식 전제 조건으로 확정됐다. 특히 절충교역 항목 가운데 기술이전 수준이 핵심 평가 요소로 부상하면서, 실제 경쟁은 기술이전 범위를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 한국이 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관건은 기술이전에 관한 법적 제약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방위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핵심 방산기술의 국외 유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화오션 관계자도 “기술이전은 업체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며, 정부 간 협의 등 상호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라면서 “법적 제한 범위 안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기술이전을 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기술이전 가능 범위는 기존 수출 사례를 통해 가늠할 수 있다. 예컨대 페루 사업이 이번 태국 사업을 가늠하는 선례로 꼽힌다. HD현대는 지난 2024년 페루 국영조선소 시마 페루(SIMA PERU)와 6406억원 규모의 함정 4척 현지 건조 공동생산 계약을 체결하며, 블록조립·용접기술·건조 공정 노하우를 이전하고, 현지 인력 양성도 병행했다.
이러한 현지 건조 조건에 맞춰 기술이전과 산업협력을 패키지로 제시한 결과, 15년간의 전략적 파트너 지위와 함께 후속 10척에 대한 우선협상대상자 지위까지 확보했다. 기술이전과 산업협력을 레버리지로 활용해 단발 수주를 장기 파트너십으로 전환한 이 구조는 태국 사업과 구조적으로 닮아있다.
그러나 태국은 페루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타이 인콰이어러(Thai Enquirer) 보도에 따르면, 페루가 건조 기술이전에 초점을 맞췄다면, 태국 해군은 지식재산권을 포함한 완전한 기술이전을 공식 평가 기준으로 명시했다. 방위산업기술의 국외 유출을 엄격히 제한하는 방위산업기술보호법을 감안하면, 지식재산권(IP) 이전까지 요구하는 태국의 조건은 한국이 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될 수도 있다.
◇ HD현대·한화오션, K조선의 자존심 대결
이 같은 조건 속에서 HD현대중공업은 기존 수출 경험을 앞세워 대응에 나서고 있다. HD현대 관계자는 “태국 해군의 전력 강화에 기여할 수 있는 최적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며 “기술력이 높다 보니 태국 현지에서도 배우려는 수요가 있다”고 밝혔다. HD현대중공업은 필리핀과 페루에서 입증한 현지 건조 모델을 태국에서도 적용한다는 구상이다.
한화오션은 오랜 현지 관계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이 2018년 태국 해군에 인도한 3650t급 호위함 ‘푸미폰 아둔야뎃’ 건조 이력이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해외 사업은 해당 국가와의 보이지 않는 관계가 중요하다”며 “태국 해군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 왔고, 이미 우리 함정을 운용해 본 경험이 있어 기술력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최근 해외 수주전에서 단순한 기술이전 조건 충족만으로는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진단한다. 유형곤 한국국방기술학회 이사는 “현지 생산과 적기 납품은 이제 기본이 됐다”며 “군용 분야를 넘어 민수 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 인력 양성까지 아우르는 종합 패키지를 제안해야 경쟁국과 차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향후 사업 시 경쟁력 확보에 대해서도 “일본이 함정 수출에 본격적으로 나설 경우, 동남아 시장에서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수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산업협력 패키지를 함께 발굴하고 지원 체계를 갖추는 것이 병행돼야 수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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