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산은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른바 ‘번개사업(긴급 병기개발)’으로 불린 총기 생산을 시작으로 50여년에 걸친 혁신의 과정을 밟아왔다. 그 결과, 무기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되며 방산산업에서 위상이 높아졌다. 현재 정부는 수출 200억달러 시대 개막, 글로벌 4강(G4) 도약을 목표로 민관 협력 확대 및 생태계 강화에 힘쏟고 있다. 여기에 국내 주요 기업들의 보폭도 빨리지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에 이은 중동 전쟁으로 방산 호황을 맞은 만큼 대규모 수주전에 뛰어들며 수출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본보는 ‘K-방산 무기 성장사’ 시리즈를 통해 국내 기업의 대표 무기를 중심으로 개발 역사와 경쟁력을 짚는다. <편집자주>편집자주>
【투데이신문 이예서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가 전 세계 155㎜ 자주포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돌파하며 ‘K-방산’의 저력을 입증했다.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기반으로 현지 조립과 기술 이전까지 아우르는 한화에어로의 전방위 전략은 글로벌 방산 시장 구조를 공급자 중심에서 사용자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K9 자주포는 유럽 방산 시장에서 ‘재구매 무기’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약 9400억원 규모의 추가 도입을 결정한 핀란드를 비롯해 폴란드, 노르웨이, 인도, 에스토니아까지 5개국이 초기 도입 이후 잇따라 추가 계약 했다. 기존 운용국들의 재구매가 이어진다는 것은 K9 자주포의 성능과 활용에 만족도가 높다는 방증이다.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은 핀란드 추가 계약에 대해 “혹한과 폭설로 가혹한 북유럽 지형에서도 K9 자주포의 기동성과 화력이 탁월하게 발휘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하며 적극적인 수출 확대 지원을 약속했다.
앞서 폴란드는 2014년 KRAB용 K9 차체 120문 계약을 시작으로 2022년 212문 규모의 2차 계약, 2023년 152문 규모의 3차 계약을 이어가며 K9 자주포 최대 도입국으로 자리 잡았다. 노르웨이는 2017년 24문 1차 계약에 이어 2025년 24문을 추가 계약하며 총 48문 규모로 전력 체계를 확대했다. 인도는 2017년 100문 도입 이후 2025년 100문 추가 계약을 체결하며 총 200문 규모의 운용 체계를 구축했다. 에스토니아는 2018년 12문 도입 이후 2025년 24문을 추가 확보하며 총 36문 규모로 전력 보강을 이어가고 있다.
1998년 독자 모델 개발 성공…성능개량 지속
K9 자주포의 역사는 1980년대 후반 우리 육군의 주력 무기인 K55 자주포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신형 자주포 개발계획’에서 시작됐다. 당시 우리나라는 정밀 무기 체계의 불모지와 다름없었으나, 국방과학연구소(ADD)와 체계 종합을 맡은 삼성테크윈(한화에어로 전신)을 필두로 100여개 업체가 사투를 벌인 끝에 1998년 독자 모델 개발에 성공했다.
개발 과정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 1990년대 중반 시제차량에서 포탄 내부 폭발 사고가 발생했고, 유기압 현수장치는 설계 5회 수정을 거쳤다. 해외 기술진조차 한국 지형에 맞는 유기압 현수장치 국산화는 불가능하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일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화에어로는 포기하지 않았다. 끝내 자력으로 구현해내며 1999년 12월 역사적인 ‘제1호기’ 출고식을 가졌다.
K9 자주포는 전력화된 시점부터 수준 높은 성능을 보여줬다. 현 수준과 큰 차이가 없는 것. 최고 시속 67km의 압도적인 기동성이 눈길을 끈다. 1000마력급 고출력 엔진과 변속기를 국산 체계에 완벽히 통합시킨 결과다. 이후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실전 대응 능력을 입증했다. 기습적인 공격 상황에서도 신속히 대응 사격에 나서며 전투 운용 능력을 확인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K9 자주포는 양산 이후에도 지속적인 성능개량이 이뤄져 왔다. 2011년 1차 성능개량 필요성이 제기된 뒤 2014~2017년 보조동력장치(APU)와 조종수 열영상 야간잠망경을 새롭게 탑재하고, 자동사격통제장치와 위치확인장치를 개선하는 체계개발이 완료됐다. 이를 반영한 K9A1 자주포는 2018년부터 본격 전력화돼 야전에 배치되고 있다. 이듬해 글로벌 기술 발전 흐름에 맞춘 2차 성능개량 사업이 확정됐다. 현재는 사업추진기본전략 승인까지 마친 상태다. 2차 개량은 진화적 개발 방식에 따라 Block-Ⅰ과 Block-Ⅱ로 나눠 단계적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쏘고 바로 사라진다”…전장 바꾼 ‘사후이속’
K9 자주포의 핵심은 ‘사후이속(shoot and scoot)’ 운용 개념이다. 자동장전 시스템을 기반으로 정지 후 30초 이내 사격이 가능하고, 사격 직후 즉시 기동해 위치를 이탈할 수 있다. 이동 중에도 60초 내 사격 전환이 가능해 전장 대응 속도를 끌어올렸다. 이 구조는 현대전의 ‘대포병 전투’ 환경에서 결정적이다. 사격 이후 수 분 내 반격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기존 자주포는 위치 노출이 치명적이었다. 반면 K9 자주포는 사격과 동시에 이동하는 방식으로 반격을 피할 수 있다. 기동성은 이를 뒷받침한다.
화력 지속 능력은 자동화로 강화됐다. 최대 48발 탄약을 탑재하고 장전·공급 과정이 자동화돼 연속 사격이 가능하다. K9A2는 자동화 수준을 높여 발사 속도를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사격 통제 체계는 디지털 기반으로 전환됐다. GPS와 전자 운용 체계를 통해 표적 좌표 산출부터 사격까지의 시간을 단축했고, 감시 장비를 통해 야간과 악조건에서도 작전 수행이 가능하다. 이는 단순 성능 개선을 넘어 ‘속도의 격차’를 만든다. 탐지부터 타격까지 시간을 줄이면서 전장에서 먼저 대응할 수 있는 구조를 확보한 것이다. 결국 K9 자주포의 경쟁력은 화력 자체보다 생존과 속도에 있다. 사격·이동·재사격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며 전장 운용 방식 자체를 바꿨다는 평가다.
현재 10개국 운용…장기적인 운용 파트너십 형성
K9 자주포의 확산은 단순한 수출 확대를 넘어 장기 운용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2000년대 터키 수출을 시작으로 폴란드, 인도, 호주 등으로 공급이 확대됐다. 특히 폴란드는 전쟁 이후 대규모 추가 도입을 결정하며 최대 고객으로 부상했다. 한화에어로 관계자는 “현재 10개국에서 운용 중이며, 운용 국가 간 평가가 신규 계약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흐름은 ‘패키지형 수출’ 전략과 맞물려 있다. 최근 방산 수출은 현지 조립, 기술 이전, 운용 교육, 장기 정비(MRO)를 포함하는 형태로 확대되는 추세다. 단순 판매를 넘어 ‘운용 생태계 구축’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한화에어로 역시 계열사와 협력을 통해 지상·해상·항공우주 전력을 아우르는 통합 제안을 강화하고 있다.
주목되는 부분은 ‘규모의 경제’다. 한국국방기술학회 유형곤 센터장은 “K9 자주포는 성능과 가격 경쟁력은 물론 여러 국가가 함께 운용하면서 부품 수급과 유지·보수 측면에서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국가가 동시에 요구하는 성능 개량 사항은 투자 효율을 높여 후속 개발을 유연하게 만든다”며 “장기적인 운용 파트너십이 형성된 것이 핵심 경쟁력”이라고 평가했다.
향후 수요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전망이 나온다. 유 센터장은 “자주포는 모든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무기체계는 아니지만, 러시아 인접 지역이나 중동처럼 군사적 긴장이 높은 지역에서는 수요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실제 도입이 필요한 국가라면 K9 자주포가 우선 검토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K9A2·A3로 진화…사거리·속도 끌어올린 차세대
K9 자주포의 경쟁력은 지속적인 성능개량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화에어로는 K9을 기반으로 K9A2, K9A3 등 차세대 모델 개발을 추진하며 글로벌 시장 대응력을 높이고 있다.
현재 한화에어로는 2027년 완성을 목표로 방위사업청과 약 2조3600억원 규모의 K9A2 자주포 2차 성능개량 사업을 진행 중이다. K9A2 자주포는 포탑 완전 자동화를 통해 발사 속도를 분당 6발에서 9발로 끌어올리고 복합고무궤도 적용으로 연료 효율과 소음·진동 저감 성능을 개선했다. 원격사격통제체계 도입으로 생존성을 높이는 동시에 탑승 승무원도 기존 5명에서 3명으로 줄였다.
K9A3 자주포는 사거리 확장에 초점을 맞춘다. 58구경장 포신을 적용해 70km 이상 장거리 타격을 목표로, 포신 수명 연장 기술과 장사정 포탄 호환을 통해 대포병 전투 능력 강화를 추진한다. 한화에어로 관계자는 “지속적인 성능 개량을 통해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향후 유무인 복합 체계까지 적용되면 자주포 시장에서 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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