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국내 자동차산업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노동계와 산업계가 동시에 정부를 향해 같은 요구를 던졌다. 갈등이 일상인 양측이 한목소리를 냈다는 사실 자체가 메시지다. 지금 위기는 개별 기업이나 노사 문제를 넘어, 산업 기반의 문제라는 인식이 공유됐다는 의미다.
노동계를 대표하는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금속노조)과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이하 금속노련), 산업계를 대표하는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KAICA) 4개 단체는 23일 공동 건의문을 통해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을 요구했다. 전기차 등 미래차를 국내에서 생산할 경우 법인세를 공제해주는 구조다.
지금까지 한국의 전기차 정책은 소비에 집중돼 있었다. 구매 보조금을 통해 시장을 키우는 방식이다. 초기 시장 형성에는 효과적이었지만, 생산 거점을 국내에 묶어두는 기능은 거의 없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주요국 정책이다. 미국은 고율 관세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를 통해 자국 생산을 사실상 의무화했고, 유럽연합(EU)은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관세 장벽을 높이며 시장을 통제하고 있다. 일본은 생산량과 판매 실적에 연동한 세액공제로 기업의 투자 방향을 직접 바꾸고 있다. 정책 방향이 분명하다. 소비 경쟁에서 생산 유치 경쟁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자동차산업 노동계와 산업계를 대표하는 4개 단체가 정부와 국회에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을 강력히 촉구했다. ⓒ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반면 한국은 여전히 소비 지원에 머물러 있다. 전기차를 사게 만드는 정책은 있지만, 한국에서 만들게 하는 정책은 부족하다. 이 구조가 유지될 경우 글로벌 완성차는 생산 효율이 높은 지역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노동계가 이번 사안에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전동화 전환은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니라 고용 구조를 뒤흔드는 과정이다.
자동차산업은 국내 제조업 출하의 14.1%, 약 156만명의 직간접 고용, 연간 수출액 931억달러를 담당하는 국가 핵심 산업이다. 문제는 전기차로 갈수록 부품 수가 줄고, 생산 구조가 단순화된다는 점이다. 여기에 생산 거점까지 해외로 이동하면 고용 감소는 더 가파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특히 중소 부품사는 직접적인 충격을 받는다. 내연기관 중심 공급망에서 전기차 체계로 전환하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큰 상황에서, 완성차 생산까지 해외로 빠지면 생태계 자체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노동계가 '정의로운 전환'을 언급하며 세제 도입을 요구한 이유는 임금이나 처우 문제가 아니라 '일자리의 위치를 국내에 묶어두는 문제'다.
산업계도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완성차와 부품업계 모두 생산 기반 약화를 가장 큰 리스크로 꼽는다. 전기차 전환은 이미 기술 경쟁 단계를 넘어섰다. 배터리, 소프트웨어, 플랫폼 경쟁이 중요해졌지만, 그 결과물을 어디서 생산하느냐가 최종 경쟁력을 결정짓는 구조다. 생산이 빠져나가면 기술 축적도 함께 이동한다.
결국 이번 공동 건의는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다. 노동계는 고용을, 산업계는 공급망과 경쟁력을 지키기 위해 같은 해법을 선택했다.
정부는 오는 7월 세제개편안에 관련 제도 반영을 검토하고 있다. 도입 자체보다 중요한 건 설계다. 세제 인센티브가 단순한 상징 수준에 그칠 경우 기업의 투자 결정을 바꾸기 어렵다. 이미 주요국은 수조 원 규모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결합해 생산 거점을 유치하고 있다. 경쟁 환경 자체가 다르다.
결국 관건은 명확하다. 기업이 한국에 공장을 지을 이유를 만들 수 있느냐. 노·사가 동시에 움직였다는 사실은 산업의 경고 신호에 가깝다. 전동화 전환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지만, 그 과정에서 생산 기반까지 잃을지는 정책 선택에 달려 있다.
지금 논의는 세제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앞으로도 '만드는 나라'로 남을 수 있을지, 그 경계선에 서 있다는 신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