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전세윤 작가] 영화를 지칭하는 세 단어가 있다. Movie, Film, Cinema.
이 세 단어를 국어사전에서는 ‘영화’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이것들 같은 뜻일까? 각각 품고 있는 온도와 관점이 조금씩 다르다. ‘디깅 #19’, ‘디깅 #21’, ‘디깅 #22’에서 영화 이야기를 했으니 이것을 한번 짚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영어사전 번역으로 세가지 뜻을 우선 논해보도록 하겠다.
Movie(Moving(motion)Picture.)
움직이는 그림, 움직이는 사진으로 Moving image(무빙 이미지)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무비는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 지칭하던 단어로 스토리를 가지고 있고, 일정한 콘셉트로 제작된 영상물, 극장에서 보는 영화 그 자체를 뜻한다. 대체적으로 오락적, 산업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Film
영화의 본질적인 요소를 강조한 이름으로 학문적인 대상, 영화제, 크레딧에 표기하는 예술적 의미를 가진다.
Cinema
뤼미에르 형제의 cinematograph에서 유래했다. 원래 극장, 영화관 지칭하는 단어였다가 의미가 확장되어 영화를 가리키는 말로 통용된다.
이것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논해보자.
흔히 상영관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이 밝아지는 순간까지를 ‘영화를 본다’는 하나의 문장으로 갈무리한다. 그러나 이를 지칭하는 세 가지 단어 ‘Movie’, ‘Film’, ‘Cinema’는 유의어라고 본다면 영화 예술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들은 각각 산업적 산물, 미학적 텍스트, 그리고 문화적 현상이라는 서로 다른 층위에서 영화의 본질을 투사한다.
Movie는 ‘Moving Picture’의 구어적 줄임말이라 위에서 말했다. 세 단어 중에서 기술적 기원을 가장 직관적으로 드러낸다. 관객의 시선에 가장 가까운 단어이기도 하다. 상업적 자본이 투입되어 박스오피스의 숫자로 환산되는 ‘상품’ 영화를 뜻하며, 대중과의 정서적 교감과 오락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둔다. 우리가 영화관에 나들이 가서 가볍게 소비하는 ‘무비’는, 영화가 태생적으로 지닌 대중 예술적 요소를 뜻한다.
반면 Film은 매체의 물리적 재료에서 기원한 단어다. 필름은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물리적인 동시에 가장 형이상학적이다. 말 그대로 창작자의 미학적 의도가 개입된 ‘작품’을 지칭한다. 이는 영화를 단순히 소비되는 상품이 아닌, 보존되고 분석되어야 할 텍스트로 격상시킨다. 단순히 움직이는 이미지로 보는 것을 넘어 빛과 화학 반응이 만들어낸 예술적 기록물이라는 것이다. 작가주의 정신과 형식미, 그리고 실험적 도전이 응축된 결과물일 때 사용하기 좋다. 디지털 데이터가 0과 1의 조합이라면, 필름은 빛이 은염(사진에서 빛에 반응해 이미지를 형성하는 감강재료)입자에 닿아 새겨진 실재의 흔적이다. 필름은 말 그대로 카메라에 들어가는 부속 물질이지 않은가. 이 ‘물질적 실체’는 영화에 대체 불가능한 질감(Grain)과 깊이를 부여한다. 따라서 필름이라는 용어는 매체의 물리적 한계마저 예술적 형식으로 승화시키려는 창작자의 장인 정신을 상징한다. 상업적 흥행작보다, 감독의 고유한 세계관이 투영된 독립적인 결과물을 필름이라 부르는데 익숙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필름이 단순한 상품(Movie)을 넘어, 편집대 위에서 컷 되고 합쳐지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작가의 선언문이기 때문이다.
뤼미에르 형제의 cinematograph에서 유래한 시네마토그래프(Cinematographe)는 영화라는 예술이 ‘복제 가능한 기록물’이자 ‘대중적 체험’으로 탄생했음을 상징하는 기계적 기원이자 미학적 시발점이다.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가 구멍을 통해 혼자 들여다보는 폐쇄적인 방식이었다면,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선보인 시네마토그래프는 스크린에 영상을 투사하여 다수가 동시에 목격하게 함으로써 고대의 테아트론(Theatron) 정신을 부활시킨다. 촬영기와 인화기, 영사기의 기능을 하나로 통합한 이 장치는 찰나의 현실을 Film이라는 물리적 층위에 박제했고, 어두운 공간에 모인 관객들이 집단적 경외감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비로소 Cinema라는 거대한 문화적 현상을 가능케 한다. 시네마토그래프는 단순한 기술적 발명을 넘어, 인류가 눈을 뜬 채 집단적으로 꿈을 꾸기 시작한 최초의 통로이자 Movie의 역동성이 예술적 생명력을 얻게 된 근원적 토대이다.
이어 영화의 뿌리를 추적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테아트론(Theatron)과 마주하게 된다. ‘보는 장소’를 뜻하는 이 어원에서 알 수 있듯, 예술은 본래 창작자와 관찰자가 하나의 시공간을 점유하며 완성되는 집단적 의식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반원형 극장에 모여 카타르시스를 공유했듯, 현대의 관객 역시 극장에 모여 스크린을 감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Cinema는 영화를 지칭하는 가장 거시적이고 제도적인 용어로 기능한다. 이는 개별 작품을 넘어, 영화가 상영되는 공간(Theater)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경험, 그리고 100년이 넘는 영화적 전통(History) 전체를 포괄한다. ‘시네마’라는 단어 안에는 극장 안에서 공유하며 얻는 경외감, 그리고 한 시대의 문화를 형성하는 거대한 예술적 조류가 담겨 있다. 결국 Movie가 찰나의 즐거움을 소비하는 행위이고 Film이 창작자의 고유한 미학적 실체라면, Cinema는 그 모든 것이 테아트론의 전통과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총합적 현상이다. 우리는 극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고립된 개인에서 '시선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변모한다.
결국 이 세 단어의 공존은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복합적인 정체성을 증명한다.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Movie를 선택하고, 그 안에서 발견한 Film의 미학에 전율하며, 비로소 Cinema라는 경이로운 세계의 일원이 된다.
영화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따라서 Movie, Film, Cinema는 영화라는 거대한 대륙을 지탱하는 세 가지 좌표와 같다. 이들은 서로 다른 층위에 존재하지만,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유기적 공존 관계를 맺으며 우리를 매료시킨다. Movie가 대중의 욕망과 호응하며 움직이는 역동적인 ‘소비재’라면, Film은 감독의 철학이 물리적 혹은 디지털 입자 속에 박제된 미학적 ‘텍스트’다. 그리고 Cinema는 이들이 극장이라는 공간적 특수성, 즉 Theatron의 역사적 전통과 만날 때 발생하는 거시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정리해서 한 문단으로 말해보자. 영화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세 가지 좌표이자 단어는 ‘Movie’, ‘Film’, ‘Cinema’ 세 가지가 있다. 이들은 각각 산업적 산물, 미학적 텍스트, 그리고 문화적 현상이라는 서로 다른 층위에서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투사하며, 우리가 이들을 접하는 극장 Theater은 고대 그리스의 시각적 성소인 테아트론(Theatron)에서 유래했다. ‘움직이는 그림’이라는 역동적인 대중 예술로서 소비되는 Movie의 활력이 감독의 미학적 인장과 철학이 응축된 Film이라는 예술적 실체로 치환되고, 극장 속에서 관객들과 공유하며 시대의 조류를 형성하는 Cinema라는 흐름으로 확장되며 구현된다. 관객은 상영 시간만큼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오직 시선만이 존재하는 테아트론의 객석에서, 일상적 유희로 시작해 날카로운 예술적 진실을 목격하고, 최종적으로는 100년이 넘는 영화적 유산 안에서 집단적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가 영화를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는지 알고 본다면 더 즐겁고 유익한 관람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떠올려보고 자신에게 그 영화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Movie’, ‘Film’, ‘Cinema’ 중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하며 이번 디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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