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원 작가] 분명 전시장에 가는 걸 좋아했다. 미술 관련 정보지나 플랫폼을 통해 매달 어떤 전시가 열리는지 체크하고 그중 절반 이상은 반드시 갔다. 전시장 전경과 작품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착실히 관람 후기도 썼다. 그렇게 모인 글이 백 개가 조금 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전시 관람도 후기 작성도 멈췄다. 옛글들은 전부 비공개로 돌렸다.
처음에는 어떤 전시를 보든 신선했는데 부지런히 전시를 찾아다니는 사이 심드렁해졌다. ‘요새 이런 작품이 많네. 이런 화풍이 유행인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점점 많아졌다. 작품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차츰 전시장에 발걸음하지 않게 되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현실이 엉망진창인데 전시를 봐서 뭐 하지? 현실 도피 아닌가?’ 당시 나는 내 미술 작품으로 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돈이 될 만한 다른 진로를 개척하던 중이었다. 뭔가를 새로 시작하려니 막막해서 작품을 감상할 겨를이 없었다.
지금은 전시장에 거의 가지 않는다. 일 년에 한 번 갈까 말까다. 일단 집 밖에 나가는 일 자체가 내키지 않는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멀리까지 가는 것도 지긋지긋하다. 막상 가면 즐겁게 잘 관람하긴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항상 기분이 별로다. 한때 친근했던 곳과 이제는 서먹서먹해졌음을 깨닫고 울적해진다. 그래서 굳이 전시장을 찾아 그런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다. 솔직히 이제 어디서 어떤 전시가 열리는지도 잘 모른다.
내 주변에는 아직도 전시를 착실히 챙겨 보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전시장과 멀어졌을까? 심지어 거부감마저 드는데, 이는 지난날의 애정에 대한 반작용인지 모른다. 좋아했던 만큼 서운함도 커서 좋은 마음으로 지켜보며 응원할 수 없는 것이다. 왜 나만 이렇게 성격이 꼬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얼마 전, 전시 하나를 예매했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인해 쿠팡에서 지급된 보상 쿠폰 중에 ‘트래블 2만 원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마땅히 쓸 데가 없어서 방치해 뒀었는데, 4월 15일 자로 소멸된다는 안내 문구가 계속 뜨기에 전시라도 봐서 소진하기로 했다. 막판에 쿠폰이 아까워진 것이다. 마침 4월 중순은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일감 하나가 끝나는 시점이었다. 모처럼 전시를 보며 일을 무사히 마감한 것을 기념하고 싶었다.
쿠팡에서 판매하는 티켓 중 구미가 당기는 것은 두어 개뿐이었다. 사실 쿠폰만 없었다면 전부 굳이 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가장 나은 선택을 하고 싶어서 각각의 전시장 위치와 전시 내용을 견주며 한참 고민했다. 어떤 전시를 볼지 고민하는 것은 아주 오랜만이었다. 마침내 너무 멀지 않은 곳의 적당한 전시 티켓을 예매했다.
티켓도 샀겠다, 이제 보러 가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바로 오늘, 나를 괴롭히던 그 일이 드디어 끝났다. 그러므로 오늘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전시장에 가면 아주 완벽했을 것이다. 하지만 꾸물대는 사이 이미 정오가 지나 어느덧 늦은 오후로 향해 가고 있다. 나가려면 진즉에, 아무 의심도 타산도 없이 물 흐르듯 현관문을 빠져나갔어야 하는데 집 문턱을 넘지 못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틀린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일에 에너지를 다 쏟아부은 만큼 쉴 때는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 돌아다닐 기운이 없다. 당장은 그동안 못 쓴 글을 쓰고 못 그린 그림을 그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예매해 둔 전시는 내일… 갈 수 있을까? 막상 가려니 너무 귀찮다. 내 돈을 들인 것도 아니니 그냥 본 셈 치고 안 가면 안 될까? 역시 지금의 내게 전시장은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멀기만 하다.
Copyright ⓒ 문화매거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