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여러분, 아마 이런 장면 다 기억하실 겁니다. 옛날에 2010년대 쯤에 겨울 아침에 학교 교문 앞을 가보면 진짜 어느 학교를 가든 풍경이 다 비슷비슷했어요. 학생들이 전부 다 진짜 전부 다 울룩불룩한 그 시커먼 패딩을 입고 똑같이 서 있었던 거예요. 그 진풍경을 만든 주인공은 바로 노스페이스 패딩이었습니다.
[밀레니엄 세대를 지배했던 '국민 교복' 추억]
당시 노스페이스 패딩은 그냥 뭐 '따뜻한 겨울옷' 이런 게 아니었어요. 10대 학생들한테는 일종의 권력이자 소속감? 이런 거였거든요. 당시에 막 이 노스페이스 패딩을 가격대별로 줄 세워서 급을 매긴 '노스페이스 계급도' 막 이런 밈이 등장하기도 할 정도였어요. 그냥 일반 검은색 패딩 입으면 좀 평범한 학생이고, 컬러풀하고 좀 더 비싼 거 입으면 약간 좀 더 노는 학생인?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웃긴데 당시에는 진짜로 그랬습니다. 그리고 또 이 패딩이 가격도 만만치 않았어요. 한 벌에 몇 십만 원씩 하는데 근데 학생들 옷을 사주는 건 또 부모님들이잖아요. 그래서 막 부모님 등골 빼먹는다고 '등골 브레이커'라는 신조어도 이때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뜨거웠던 열기는 나중에 결국 독으로 돌아오죠. 한동안 막 "일진 유니폼이냐", "알록달록한 게 아저씨 등산복 같다" 이런 이미지가 생기면서 한때는 이 브랜드 인기가 뚝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근데 여기서 끝났으면 오늘 이야기로 안 가져왔겠죠? 놀랍게도 지금 노스페이스는 과거의 그 전성기 못지않게 어쩌면 그 과거보다 더 화려하게 다시 부활했습니다. 예전처럼 학생들만 있는 브랜드가 아니라 이제는 대학생들도 입고 직장인들도 입고 이렇게 전국민이 사랑하는 브랜드가 다시 됐죠. 자 오늘 4인용 책상에서는요. 이 노스페이스가 어떻게 다시 그 자리로 올라설 수 있었는지 그 반전 드라마를 소개해보겠습니다.
[영국 '버버리'와 한국 '노스페이스'의 평행이론]
자, 이 패션 브랜드한테 제일 무서운 순간이 언제냐면요. 바로 특정 집단이랑 얽혀버렸을 때예요. 이 명품이나 패션 브랜드는 뭐 단순히 옷만 파는 게 아니라 그 브랜드 이미지까지 같이 파는 거잖아요. 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의 명품 브랜드 '버버리'가 2000년대 초반에 '차브'라고 하는 문화랑 강하게 엮였던 적이 있어요. 차브족이 약간 비행 청소년 같은 이미지인데 이 차브족이 계속 버버리를 입기 시작하니까 일반 시민들이 "아 나는 쟤네랑 같은 옷 입기 싫다", "같은 급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 이러면서 버버리랑 거리두기를 합니다. 아니 그 100년 전통의 영국 왕실 브랜드가 한순간에 좀 양아치 브랜드로 전락하는 그런 순간이었죠. 한국의 노스페이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도 학생들이 입으면서 뭐 일진옷이니 뭐니 하니까 성인 고객들이 이제 슬슬 멀어지기 시작한 거죠. 그리고 심지어는 이 10대들조차 졸업과 동시에 잘 찾지 않는 그런 브랜드가 돼버립니다.
그런데 노스페이스는 여기서 무너지지 않아요. 심지어 뭐 로고를 감추거나 바꾸거나 하지도 않고 그냥 뚝심있게 물건을 자꾸 만들어내요 주요 제품들을. 왜 그럴 수 있었냐? 결국 자기들이 믿을 구석이 있었던 거죠. 자기들의 상품에 정말 자신이 있었던 겁니다. 노스페이스의 압도적인 품질과 헤리티지 이 두 가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게 지금도 노스페이스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이 '눕시'패딩이죠. 아 이 이름부터가 좀 재밌는 게 '눕시'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냐면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옆에 있는 엄청 거친 산 봉우리 이름이 '눕체'예요. 거기서 이름을 따가지고 1992년에 제품을 내놓은 겁니다. 그니까 이 옷은 애초에 뭐 '시내에서 예쁘게 입어라' 이렇게 내놓은 옷이 아니었던 거죠. 진짜 영하 수십도까지 떨어지는 그 극한 환경에서 탐험가들을 살리기 위한 그런 장비 같은 옷으로 만들어졌던 겁니다. 게다가 그 배플(Baffle) 구조라고 이 안에 오리털이나 거위솜이 아래로 쏠리지 않게 하려고 가로로 큼직한 재봉선을 박은 거예요. 그래서 패딩이 좀 울룩불룩하죠? 근데 이 구조가 당시로는 혁신이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따뜻하고 가볍고. 아 이거 들고 있으니까 너무 홈쇼핑 같기도 한데, 제돈제산이라는 점. 어쨌든 그러니까 이 노스페이스가 위기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은 이거죠. 뭐 브랜드 이미지가 좀 흔들릴 수는 있다, 그런데 제품 자체가 이미 잘 만들어져 있으면 그 브랜드는 절대 죽지 않는다. '따뜻하고 튼튼한 진짜 아웃도어' 이 본질이 노스페이스를 끝까지 버티게 한 힘이었던 겁니다.
[등산복을 평상복처럼 '고프코어 열풍']
이렇게 품질력으로 근근히 이어가던 노스페이스에게 뜻밖의 반전 카드가 생깁니다. 바로 '고프코어' 열풍인데요. 고프코어가 뭐냐면 이 고프라는 단어가 약간 등산객들의 간식? 이런 거에서 따온 말이거든요. 쉽게 말하면 산에서만 입던 아웃도어 옷을 이제 거리에서 평상복처럼 좀 편하게 입는 스타일을 말합니다. 그때 당시 노스페이스가 슈프림, 구찌 이런 데랑 콜라보하면서 좀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었거든요. 아웃도어 옷이 좀 투박하게 생겼으니까 거기에다가 막 예쁜 문양도 넣고 하면서. 여기에 한국에서는 캐주얼 라인인 '화이트라벨'까지 출시하면서 아예 이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로 승부를 걸게 됩니다. 그러니까 노스페이스는 이제 그냥 산에서만 입는 옷이 아니라 운동복으로도 입고 강남이나 홍대 한복판에서도 입는 그런 힙한 스트릿 패션으로 다시 보이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이번 겨울에 노스페이스 검은색 숏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엄청 많았죠, 길거리에.
[나이 들고 다시 지갑을 연 왕년의 노·페 매니아들]
이런 노스페이스의 꾸준한 마케팅이 좀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데요. 지금의 이 노스페이스 열풍을 만든 사람이 누구냐 하면 바로 그 20년 전에 이 '등골 브레이커'의 주인공이었던 당시의 중고등학생이란 겁니다. 그러니까 예전에 입던 그 옷, 혹은 뭐 입고 싶었으나 입지 못했던 그 옷을 이제 구매력을 갖춘 성인이 되면서 다시 레트로 패션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거죠. 그래서 실제로 SNS 반응을 보면요. "예전에는 부모님 등골 빼서 샀는데 이제는 내 등골 빼서 산다", "10년 전에는 이거 입고 학교 갔는데 이제는 이거 입고 회사를 간다" 그러니까 그때의 학생들이 이제 돈을 버는 성인이 된 뒤 다시 그 브랜드에 열광하고 있는 겁니다. 이 과거의 기억을 지금의 취향으로 살려낸 아주 좀 드문 역주행 사례라고 볼 수 있죠.
실제로 이 한국 노스페이스를 운영하는 영원아웃도어는 패션업계 전체가 주춤하던 2023년 사상 처음으로 매출 1조 원을 돌파하고요 이후 2024년과 25년에도 이 1조 원 매출을 지켜내면서 '단순한 반짝 인기가 아니다' 이것을 증명해냈죠. 지금도 이 노스페이스는 국내 아웃도어 시장에서 35%에 가까운 비율을 차지하고 있을 만큼 여전히 강한 존재감을 가진 브랜드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품질력, 트렌드를 읽는 감각의 '환상 콜라보']
자, 이 노스페이스가 '등골 브레이커', '일진 브랜드' 이런 오명을 딛고 다시 1조원 신화를 쓸 수 있었던 비결은 의외로 분명합니다. 자기들만의 본질은 끝까지 버리지 않고 지켰기 때문입니다. 히말라야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그 품질, 그건 그대로 가져가면서요. 그 옷을 보여주는 방식은 단순히 등산복을 넘어서 시대 흐름에 맞게 훨씬 더 세련되고 더 일상적인 옷으로 바꿔낸 거죠. 결국 지금의 노스페이스를 만들어낸 건 탄탄한 품질과 트렌드를 읽는 감각, 이 두 가지의 환상 콜라보였습니다.
노스페이스는 추락한 브랜드가 꼭 끝은 아니라는 걸 보여줍니다. 브랜드의 뼈대가 튼튼하면, 그리고 이 흐름을 읽는 눈만 있으면 다시 올라가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거죠. 그러니 괜히 이미지 때문에 옷장 깊숙이 넣어두셨던 옷이 있다면 오늘은 하나쯤 다시 꺼내보셔도 좋겠습니다. 생각보다 유행은 다시 돌고 돌고 브랜드도 다시 살아나니까요 자, 오늘은 이 옷장 깊숙한 곳을 한번 열어보시길 바라면서요. 오늘 4인용 책상,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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