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희 더봄] 카타니아와 타오르미나, 두 도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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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희 더봄] 카타니아와 타오르미나, 두 도시 이야기

여성경제신문 2026-04-23 10:06:01 신고

카타니아를 걷는다는 건 애초에 '겉핥기'일 수밖에 없다. 이 도시는 표면만 봐서는 잘 안 열린다. 검은 돌로 단단히 입을 다문 채 속내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 대신 이상한 것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첫인상은 색이다. 검다. 건물이 검고 길바닥이 검고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코끼리까지 검다. 처음보면 오염인가 싶겠지만 곧 알게 된다. 이 도시 전체가 현무암으로 지어져 있다는 것을. 에트나 화산이 뱉은 용암이 식어서 만들어진 검은 돌. 카타니아는 말 그대로 화산이 만든 도시다.

1669년 에트나가 분화했을 때 용암이 카타니아까지 흘러내려왔고 1693년에는 대지진이 도시를 완전히 파괴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다. 용암이 식은 자리 위에 다시 집을 짓고 무너진 성당 옆에 새 성당을 세웠다. 7번 파괴되고 7번 재건된 도시. 카타니아 사람들은 에트나에 맞서, 아니 에트나와 함께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카타니아의 수호자라고 알려진 코끼리 분수 /게티이미지뱅크
카타니아의 수호자라고 알려진 코끼리 분수 /게티이미지뱅크

카톨릭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녀는 성모 마리아다. 그런데 카타니아에서는 마리아보다 더 자주 마주치는 이름이 있다. 성 아가타. 도시 곳곳에 그녀가 있다. 교회 안에도 거리의 조각상에도 기념품 샵에도. "마리아보다 아가타" 분위기다. 두 걸음만 떼면 만나는 아가타 성녀라니···. 이쯤 되면 신앙이라기보다 어떤 정체성에 가깝다.

카타니아 사람들에게 그녀는 하늘의 존재라기보다 같은 편에 서 있는 누군가처럼 느껴진다. 전설에 따르면 아가타가 에트나의 용암을 막아냈다고 한다. 화산이 폭발했을 때 사람들이 그녀의 유물을 들고 나가자 용암이 멈췄다나 뭐라나.

과학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7번이나 파괴당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말이 된다. 그들에게는 용암을 막아줄 수호자가 필요했고 아가타가 그 역할을 맡았다. 성모 마리아는 하늘에 계시지만 아가타는 땅으로 내려와 용암 앞을 막아선 성녀였다. 도시가 아가타를 사랑하는 이유로 이보다 더 무엇이 필요할까.

카타니아의 전통 과자 이름은 '아가타의 가슴(Minne di Sant'Agata)'이다. 왜 가슴이냐고? 아가타가 순교할 때 가슴을 잘리는 고문을 당했기 때문이라는데 그래선지 과자 모양도 정말로··· 음, 가슴이다. 처음에는 기괴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이해했다. 고통마저도 달콤함으로 바꿔버리는 것. 그게 이 도시가 재난을 대하는 방식이다. 

카타니아 시장 입구 /사진=박재희
카타니아 시장 입구 /사진=박재희

아가타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건 코끼리다. 수수께끼에 가깝다. 시칠리아 한복판에 그것도 화산 옆 도시에서 왜 하필 코끼리인가. 두오모 광장 한가운데 검은 코끼리가 서 있다. 등 위에는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꽂혀 있고 코는 하늘을 향하고 있다. 용암으로 만든 검은 코끼리 조각. 카타니아의 상징이자 마스코트다.

전설에 따르면 이 코끼리는 화산의 분노를 막아주는 수호자라고 한다. 어떤 이는 한니발의 코끼리 부대와 연관이 있다고 하고 어떤 이는 8세기 비잔틴 시대부터의 유물이라고 하지만 확실한 건 아무도 정확하게는 모른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중요한 건 코끼리가 있다는 것이다. 아가타가 용암을 막아주고 코끼리가 화산의 폭발을 버텨주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태연하게 살아간다.

후니가 말했다. "화산을 잠재우기에는 코끼리가 너무 작지 않아?" 카타니아의 코끼리는 작다. 실물 코끼리보다 훨씬 작고 심지어 귀엽다. 거대한 비극을 견뎌낸 도시의 상징치고는 묘하게 앙증맞다. 거창한 영웅 동상이 아니라 작지만 단단한 코끼리. 화려하지 않지만 무너지지 않는 것. 그게 카타니아의 진짜 모습 같아 솔직히 더 정겹게 느껴졌다.

타오르미나의 그리스 원형극장 /사진=박재희
타오르미나의 그리스 원형극장 /사진=박재희

카타니아를 떠나 타오르미나로 올라가는 길은 묘하게도 '현실에 필터를 하나씩 씌우는 과정' 같다. 거칠던 색감이 부드러워지고 소음은 줄어들고 풍경은 점점 더 완성형 구도를 갖기 시작한다. 차창 밖으로 풍경이 바뀐다. 카타니아의 검은 건물들이 멀어지고 해안선이 나타나고 산비탈에 매달린 작은 마을들이 보이더니 도착이다.

타오르미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진짜 아름답다. 게다가 이상하게 젊다. 이탈리아의 많은 도시들이 '시간을 쌓아둔 느낌'인데 이곳은 '지금도 소비되는 현재'다. 젊은 여행자들이 거리마다 넘쳐나고 그들은 이 도시를 감상하는 동시에 스스로도 젊게 피어오르는 풍경의 일부가 된다.

카타니아가 현무암의 무게로 땅에 붙어 있다면 타오르미나는 절벽 위에서 날아갈 듯 가볍다. 배낭을 멘 20대의 에너지와 선글라스를 낀 30대 청년들, 손을 잡은 연인들로 북적인다. 괴테는 타오르미나를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극찬했다는데 과장이 아니다. D.H. 로렌스도 여기 머물며 소설을 썼고 오스카 와일드는 이곳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타오르미나는 자연이 인간에게 준 선물이고 인간은 그 선물을 포장지로 감싸서 비싸게 팔고 있다. 도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그리스 극장이다. 기원전 3세기에 그리스인들이 산 중턱을 깎아서 만든 이 극장은 단순히 유적이 아니라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무대다. 무대 뒤로 바다와 하늘, 그리고 멀리 에트나까지 한 줄로 놓인다.

반칙이다. 이 정도면 자연도 연출에 협조하는 셈이다. 나는 극장 꼭대기 계단에 앉아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2300년 전 그리스인들도 이 자리에 앉아서 저 바다를 봤을 것이다. 로마인들도 봤을 것이고, 중세의 순례자들도 봤을 것이고, 괴테도 봤을 것이다. 그들도 지금의 나처럼 '와, 진짜 말도 안되게 아름답구나'라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자연으로 무대를 연출하는 타오르미나 극장 /사진=박재희
자연으로 무대를 연출하는 타오르미나 극장 /사진=박재희

"여기서 공연 보면 극에는 집중 안 될 것 같은데?"
미 선배가 정곡을 찔렀다. 무대 위의 배우보다 무대 뒤의 화산이 더 드라마틱하다. 어떤 비극도 저 풍경보다 극적일 수 없으니까. 넘실거리는 바다와 하늘에 넋을 잃을테니 배우 입장에서는 굴욕이다. 아무리 좋은 극을 열연해도 관객의 절반 이상은 배경을 보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게 바로 이 극장의 천재성이다. 인간이 만든 예술과 자연이 만든 예술을 동시에 보여주는 것. 연극이 없어도 공연은 계속된다. 해가 지고, 바다가 색을 바꾸고, 화산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입장료 10유로. 세상에서 가장 전망 좋은 좌석 값치고는 너무 싸다. 

완벽한 거리, 정확히 말하면 '아름답게 정리되어 있다'. 골목 하나 창문 하나 간판 하나까지도 다 적당히 예쁘다. 그래서 걷다 보면 감탄이 나오다가 아름다움에 결국은 그냥 웃게된다.  

타오르미나의 보행거리 코르소 움베르토는 무대위의 골목과 같다. 길을 걷다가 묘한 장면을 목격했다. 구찌 매장 앞에서 어린 배낭여행객이 젤라토를 핥고 있고 그 옆 벤치에는 70대 할머니가 프라다 쇼핑백을 들고 있었다. 그들 뒤로는 2000년 된 성문이 서 있다.

타오르미나는 이런 도시다. 고대와 현대가, 사치와 검소함이, 늙음과 젊음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고 그 혼합은 전혀 어색하거나 이질적이지 않다. 마치 다 계산된 것처럼.

카타니아에서는 삶이 흘러넘쳤다. 시장에서는 물이 튀고,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도시 전체가 현재진행형이었다. 반면 타오르미나는 이미 완성된 문장 같다. 더 보태지도 덜어내지도 않아도 되는 상태.

미 선배가 또 젤라토를 샀다. 며칠 동안 우리가 먹은 젤라토는 아마 20개쯤 될 것이다. "마지막이야, 진짜 마지막." 미 선배가 말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마지막 젤라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마지막 맥주가 없고, 마지막 와인이 없듯이.

타오르미나 항공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타오르미나 항공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카타니아와 타오르미나는 차로 40분 거리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다. 카타니아는 검고, 무겁고, 땅에 붙어 있다. 7번 무너지고 7번 일어선 도시. 화산재 위에 집을 짓고 용암이 식은 돌로 성당을 세운다. 아가타가 지켜주고 코끼리가 버텨주기에 사람들은 살아간다.

타오르미나는 밝고, 가볍고, 하늘을 향하고 있다. 절벽 위에 걸린 도시. 극장에서 바다를 보고, 골목에서 젤라토를 먹고, 명품 가게에서 더위를 피하며 완벽하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영원할 것 같은 순간을 머문다. 이렇게 다르지만 두 도시는 같은 것을 보고 있다. 에트나 화산.

카타니아는 화산을 두려워하면서 감내하고, 타오르미나는 화산을 감상한다. 카타니아는 용암과 싸우고, 타오르미나는 용암을 배경으로 삼는다.

어느 쪽이 더 좋은 것일까? 누가 좋고 어느 편이 옳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니까. 그래서 묘한 질문은 나를 향한다. 나는 아가타와 코끼리의 보호 아래 버텨내는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완벽하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잠시 머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그런 질문의 연습인지도 모른다. 살아남을 것인가, 아름다울 것인가. 땅에 붙을 것인가, 하늘을 향할 것인가. 검은 도시를 만들고 전망 좋은 발코니를 선물한 산. 사보카로 향하는 길 비로소 에트나는 점점 뒤로 멀어지고 있다. 

현무암=에트나 화산의 용암이 식어서 굳어진 검은 돌로 구멍이 숭숭 뚫린 것이 특징이다. 카타니아의 건물과 도로 광장을 이루는 주요 건축 자재로 사용되어 도시를 검게 물들였다.

여성경제신문 박재희 작가
jaeheecall@gmail.com

박재희 작가

이화여대 정치외교학 전공 후 국제경영 MBA를 취득했다. 현대그룹과 DELL, EMC 등 글로벌 IT 기업 마케터로 일하고 미국 벤처 Actifio 아시아태평양 지역 마케팅 총괄대표를 지냈다. 커리어의 정점에서 '인생 리셋'을 선언하고 두 차례 산티아고 순례 후 현재는 여행작가이자 자기계발 리더십 코치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산티아고 40일간의 위로> , <산티아고 어게인> , <숲에서 다시 시작하다> , <그 여자, 정치적이다> 등이 있으며 현재 모모인 컴퍼니 대표를 맡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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