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안전공업에서 발생한 화재로 14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대형사고 뿐만 아니라, 소규모 사업장 사고가 잇따르며 최근 4년 하루 평균 1.7명이 일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산업재해로 숨진 이들의 삶과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직접 원인과 그 너머의 '구조'를 짚는 언론 보도는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위험의 외주화', '이주화' 같은 이름이 붙지만, 이는 구조를 지칭할 뿐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무엇이 이 구조를 단단히 유지시키는 원동력이며,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가? 많은 이가 기업의 이윤 극대화 동기를 그 원동력으로 지목한다. 중요한 직관이지만, 산재가 노동자와 기업이 합의한 계약관계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기업 한 쪽만 포함한 설명은 구조 속 주요 행위자를 놓치게 된다. 합의가 이뤄지는 맥락과 그 속에서 생겨난 역학 관계를 살펴야 한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분석을 위해 필요한, 즉 어떤 기업의 노동자가 산재를 겪었는지 보여주는 자료를 이용하기 어렵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정보공개청구 소송을 거쳐, 최근에서야 2022년 이후 중대재해로 분류된 사건에 한해 산재 발생 기업명이 공개되기 시작한 수준이다. 오늘 소개할 연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2001년부터 2020년 사이 발생한 약 1100만 건의 산재 청구 데이터를 활용해, 노동자가 기업과의 계약에서 더 나은 외부 선택지를 가질 때 실제로 일터가 더 안전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논문 바로가기: 더 나은 노동시장의 선택지가 산업재해를 줄인다).
노동자들이 현재 직장 외에 더 나은 일자리 선택지를 갖는 것이 어떻게 작업장 안전을 개선할 수 있을까? 직관은 단순하다. 외부에 더 나은 선택지가 충분하다면 노동자들은 위험한 일을 그만두고 이직을 시도할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기업은 작업 환경을 더 안전하게 만들 유인을 갖게 된다. 동시에 좋은 선택지를 가진 노동자는 노동 환경 개선을 더 강하게 요구하는 협상력을 가진다.
이러한 이론적 인과관계를 데이터로 검증하는 일은 한층 더 어렵다. 먼저 노동자가 얼마나 좋은 일자리 선택지를 갖고 있는지 측정해야 한다. 연구진은 각 지역에서 특정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다른 직종으로 이동할 확률과 각 직종의 평균 임금을 결합해, 이직 시 기대할 수 있는 임금 수준으로 외부 선택지의 질을 추정했다.
그러나 이렇게 측정된 외부 선택지의 질이 높은 노동자와 그렇지 않은 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을 단순 비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 경제가 호황일 경우, 외부 일자리의 임금이 높아지는 동시에 증가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업무 강도가 높아지고, 그 결과 산재 발생률 역시 상승할 수 있다. 이 경우 외부 선택지가 실제로 산재에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좋은 선택지를 가진 노동자들이 더 많은 산재를 겪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연구진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적인 경기 변동에 따라 지역별, 직종별 노동자가 경험하는 외부 선택지가 서로 다른 수준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을 활용했다.
분석 결과는 연구진의 예상과 일치했다. 외부 선택지가 개선될수록 산재 발생률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낮아졌다. 한편 산재는 축소 보고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결과가 어쩌면 실제 산재 발생이 아닌 보고 감소에 따른 것일 가능성도 있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연구진은 축소 보고가 상대적으로 어려운 중대 산재 및 직무 관련성이 명확한 산재만을 대상으로 동일한 분석을 수행했고, 이 경우에도 외부 선택지가 개선될수록 산재 발생률이 감소하는 결과를 확인했다.
이때 외부 선택지가 연구에서 주목한 경기 변동에 의해 전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연구는 객관적인 외부 선택지가 작업장 안전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했지만, 노동자의 행동은 그가 인식하는 '실질적인' 외부 선택지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한국의 E-9 비자 이주노동자처럼 이직이 제도적으로 제한되는 경우, 경제가 아무리 호황이더라도 노동자가 마주한 외부 선택지의 질은 낮을 수 있다. 또한 구인 공고에 임금이나 노동 조건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제공되지 않을 때에는, 이직을 고려하는 노동자가 외부 선택지의 질을 실제와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연구는 "경기가 좋아지면 산재가 줄어든다"는 단순한 주장에 머무르지 않고,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내는, 노동자가 마주하는 노동시장 환경이 작업장 안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작업장 안전을 위해 오랫동안 많은 노력이 쌓여 왔다. 그러나 근로 환경이 형성되는 경제적 메커니즘, 이를 움직이는 기업과 노동자의 동기, 그리고 양자 사이의 역학 관계에는 상대적으로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다. 작업장 안전은 기업 내부의 관리 문제일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의 균형 속에서 결정되는 근로 조건이기에 이러한 관점은 필수적이다. 노동자가 더 나은 대안을 가질 때 일터가 더 안전해진다는 사실은, 이러한 관점이 실제로 유효함을 보여준다. 이제는 노동자가 더 건강한 균형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지렛대를 고민할 차례다.
*서지정보
Park, R. J., Stainier, P., & Stansbury, A. (2025). Better Labor Market Options Reduce Workplace Injuries. Available at SSRN 557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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