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고유가 충격 확산···석화·항공·물류 ‘동시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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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고유가 충격 확산···석화·항공·물류 ‘동시 압박’

이뉴스투데이 2026-04-23 08:03:1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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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 전남 여수 NCC 공장 전경. [사진=LG화학]
LG화학 전남 여수 NCC 공장 전경. [사진=LG화학]

[이뉴스투데이 노태하 기자] 중동발 고유가·공급망 불안이 촉발한 충격이 석유화학·항공·물류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은 초기·단기 처방에 머물고 있고 산업 현장에서는 수익성 악화와 구조적 한계가 동시에 부각되고 있다.

◇중동발 나프타 불안에 폐플라스틱 활용 확대···“실적 부진·사업성 한계 장벽”

당정이 중동 사태에 따른 나프타 수급 불안 대응을 위해 폐플라스틱 기반 재생유 사업 확대에 나섰다. 그러나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중국발 공급 과잉에 더해 이란 전쟁 여파로 인한 산업 불황과 재생유의 사업성 한계 등으로 관련 사업 투자 및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여당과 정부는 폐플라스틱의 순환자원 인정 기준을 완화해 음식물 등이 묻은 폐기물도 열분해 공정을 통해 나프타 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폐플라스틱을 자원으로 전환해 원료 공급망을 다변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PSP(스티로폼)와 동물성 유지 등 다양한 원료를 활용한 기술 실증도 병행될 예정이다. 제도적 기반 마련을 위해 순환경제사회법 개정과 함께 순환경제규제특구 도입도 추진된다.

정부가 추진하는 재생유 사업은 석유화학 기업 참여가 필수지만 이란 전쟁에 따른 원가 상승과 나프타 수급 불안, 실적 악화로 투자 여건은 녹록지 않다.

당장 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이번 1분기 실적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LG화학과 롯데케미칼은 각각 1890억원, 1956억원 규모의 영업손실이 예상되며 전년 대비 적자 폭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LG화학, SK지오센트릭 등 석유화학 업계는 폐플라스틱 기반 재생유 사업 관련 검토나 실제 설비 투자에까지 나선 바 있지만 상업성 부족 등으로 사업 확대가 지연되거나 보류되는 사례가 이어져 온 상황이다.

투자 대비 수익성이 낮은 구조는 열분해유 사업의 상업화를 지연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친환경성과 성장성은 인정받고 있지만 공정 구축에 수천억원대의 막대한 초기 투자비가 투입되는 데 비해 수요 부족 등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다.

업계에서는 폐플라스틱 기반 재생유 산업 활성화를 위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안정적 수요 시장을 조성하는 정책이 핵심 과제로 꼽힌다.

구체적으로 포장재를 중심으로 재생 원료 사용 의무화를 도입해 초기 시장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동차·전기전자 등 산업 전반으로 적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접근 등이 거론된다.

업계 전문가는 “의무화 정책은 안정적 수요를 기반으로 투자 유인을 높여 재생 원료 산업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다”며 “다만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 참여 확대와 물리·화학 재활용 간 역할 규제 완화 등을 통해 고품질 재생 원료 생산 체계를 구축해 재활용 밸류체인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비용은 쌓이는데 지원은 미미···항공사 ‘버티기 한계’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유가·고환율 충격이 국내 항공산업 전반을 압박하는 가운데 정부의 지원 조치가 ‘단기 처방’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부터 비상경영에 돌입한 항공업계는 산업 생태계 전반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과감하고 포괄적인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20일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인천공항에서 국내 12개 항공사 최고경영자(CEO)와 간담회를 열고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항공사의 재무구조 개선명령을 한시적으로 유예하고, 공항시설 사용료 납부도 5월부터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항공업계는 일단 반기는 분위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이번 지원 결정은 위기 상황에서 항공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하면서도 다만 현재의 복합 위기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더욱 과감하고 포괄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국토부 역시 중소 항공사를 중심으로 긴급경영 안정자금 지원을 관계 부처와 협의 중이고, 경영 여건에 따라 단계적으로 슬롯 회수 유예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업계는 이들 지원책이 조속히 시행되기를 바라는 눈치다.

실제로 항공사가 특정 공항에서 특정 시간대에 이착륙할 수 있는 슬롯을 유예하는 것은 단순한 규제 완화를 넘어 항공사 생존과 직결되는 조치로 평가된다. 국내 항공사업법에 따르면, 항공사는 배정받은 슬롯의 80% 이상을 실제 운항에 사용해야 다음 시즌에도 해당 슬롯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국토부가 해당 슬롯을 회수해 다른 항공사에 재배분할 수 있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와 같이 수요 불확실성과 비용 부담이 동시에 확대된 상황에서 슬롯을 지키기 위해 적자 운항을 지속할 경우, 이는 곧바로 재무 악화로 이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노선을 유지하는 것보다 생존이 우선인 국면”이라며 “일시적인 감편을 이유로 슬롯을 회수하면 회복 국면에서 다시 공급을 늘리기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성수기인 7~8월을 제외한 5월부터 10월까지 국내선 슬롯을 유예할 계획인 가운데 업계에서는 국제선 슬롯 회수에 대한 유예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국제선 슬롯은 국내 공항뿐 아니라 해외 공항 슬롯과 함께 운영되는 구조”라며 “우리나라에서만 유예를 적용하더라도 해외 공항에서 유예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쪽 슬롯만 남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해외 공항의 대응 상황을 함께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국제선은 노선 특성상 운항 횟수가 제한적인 만큼 감편 시 대체편 마련이 쉽지 않아 이용자 불편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관계자는 “우선 국내선 중심으로 슬롯 회수를 유예하고, 전쟁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해외 공항 운영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보면서 국제선은 추후 검토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조치는 탄소배출 감축 제도인 ‘코르시아(CORSIA)’ 의무 이행에 대한 유예다. 코르시아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도입한 제도로, 항공사가 일정 기준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면 그만큼의 배출권을 돈을 주고 사서 상쇄하도록 하는 제도다. 쉽게 말해 비행이 많을수록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다.

한편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을 단기 유동성 위기를 넘어선 ‘구조적 충격’으로 보고 있다. 지정학적 리스크, 에너지 가격 변동성, 환경 규제 강화가 동시에 작용하는 복합 위기라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공항시설 사용료 유예와 같은 개별 정책이 아닌, 금융·세제·운항 규제 완화·환경 규제 조정 등을 포함한 ‘패키지형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물류망 타고 번지는 ‘연쇄 리스크’

국내 유통·물류 체인에도 중동발 고유가 사태의 파동이 확산하고 있다. 즉각적인 가격 충격이 운송 부담으로 작용되면서 물류·운송업계 곳곳에서 파열음이 이는 중이다.

특히 유가 변동에 민감한 물류업 특성상 비용 부담이 일정 선을 넘어설 경우 대규모 파업 사태로 이어지는 터라 유통 현장에서는 수급 차질은 물론, 소비자 피해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경유 가격은 리터당 1997.69원 수준이다. 이달 1일 1890.33원과 비교하면 3주 만에 100원 넘게 올랐다.

최근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세를 고려해 정부에선 경유 유가연동보조금 연장 및 지급 비율도 70%로 상향했으나, 유류비가 운송 원가의 25~40%를 차지하는 물류업계의 부담은 여전히 크다는 현장 의견이다.

물류업계는 비용 절감 및 인력 부담 완화를 위한 다단계 계약 구조 비중이 높다. 원청에서 운송사, 하청 운송사, 개인 화물기사 등으로 이어지는 하청 구조는 유가 등의 변동비를 분담하는 제도적 완충 장치가 미비해 손실 부담이 말단 개인사업자인 화물기사에게 과중 될 가능성이 높다.

업계 전문가는 국내 노동 시장의 경직성이 이 같은 다단계 위·수탁 구조를 굳히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기업들이 직접 고용 시 수반되는 높은 고정 비용 부담과 인력 구조조정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외부 위탁을 통한 ‘고용 유연성’ 확보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는 지적이다.

현장에 누적된 비용 부담은 생활 물류 마비로 이어진다. 이달 초 화물연대가 CU 배송기사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시작한 파업이 진주, 화성, 안성, 나주 등 주요 물류 거점을 둘러싼 갈등으로 번진 사태가 대표적이다.

BGF리테일 측은 점포 운영 정상화와 상품 공급 안정을 위해 비상 대응에 나섰으나, 물류 파업이 점주 발주 차질과 소비자 불편으로 직결된다는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노출했다.

이번 물류 현장의 충돌은 중동발 유가 변동으로 촉발됐으나 배경에는 계약 구조의 근본적 한계가 자리하고 있다. 산재·고용보험 적용 등 화물차주와 배송기사에 대한 제도적 보호망은 넓어졌지만 현장의 비용 분담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화물 운송 시장의 적정 운임을 보장하는 안전운임제는 올해 1월부터 3년간 재도입돼 지난 2월부터 고시가 시행 중이다. 다만 현재 적용 품목이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에 한정돼 있어 생활 물류 전반의 갈등을 바로 해소하는 장치로 보기는 어렵다.

비용 효율화에 초점을 맞춘 기존 물류 하청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류망은 국민 생활과 직결된 기반 산업인 만큼 원가 상승의 부담이 운송 기사에게 집중되는 구조가 지속될 경우 파업 등 물류 전반의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업계 일각에서는 다단계 위·수탁 계약 구조를 정비하고 유가 등 변동 요인을 합리적으로 분담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계약의 본질은 위험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인데 현행 구조에서는 연료비 상승 등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 화물기사에게 기울어져 있는 구조”라며 “변동 위험성을 계약에 반영하지 못하면 파업 등 극단적 위협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일방적인 피해를 예방하고 합리적인 계약을 위해 정부 차원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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