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임팩트 투자'는 재무적 수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사회, 환경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측정 가능한 긍정적 역할도 의도적으로 창출하는 투자를 말한다. 동아시아는 더 이상 임팩트 투자의 변방이 아니다. 뉴욕시에 본부를 둔 비영리 단체 '글로벌 임팩트 인베스팅 네트워크'(Global Impact Investing Network, GIIN)의 2025년 발표에 따르면 임팩트 투자기관의 본사 소재지 기준으로 동아시아 비중은 5%다. 2022년 2%에서 두 배 넘게 늘었다. 그런데 이 숫자를 한국의 진전으로 읽기엔 마음이 무겁다. 같은 동아시아 안에서 한국은 오히려 뒷걸음질 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GIIN은 동아시아 본사 기관이 전 세계 임팩트 투자 조직의 2%, 임팩트 운용자산(Assets Under Management, AUM)의 1%를 차지한다고 집계했다. 반면 중국·일본·한국이 차지하는 세계 경제 비중은 작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 2026년 4월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합치면 약 25.98조달러로 세계의 약 20.6%다. 세계 경제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지역이 임팩트 투자 조직은 2%, 운용자산은 1%였던 셈이다. 애초에 동아시아 전체가 '과소대표'였다.
투자대상 지역 기준으로 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GIIN이 발간한 보고서 '2023 GIINsight'에 따르면 2022년 임팩트 자금의 5%가 동아시아로 향했다고 집계됐다. 2025년 GIIN이 발간한 '스테이트 오브 더 마켓'(State of the Market) 보고서에서는 동아시아 비중이 4%로 제시됐다. 본사 숫자가 늘었다고 해서 자본의 흐름이 동아시아로 본격 이동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다. 숫자는 늘었지만, 아직 주류가 됐다고 보긴 멀다.
그럼에도 2025년 동아시아 본사 기관 비중은 5%로 늘었다. 문제는 한국이다. 업계에서 체감하는 전업 임팩트투자 조직은 10여 년 전 7~8곳에서 지금은 5~6곳 안팎으로 줄었다는 말이 공공연하다. 시장은 넓어졌는데 플레이어는 줄었다. 더 뼈아픈 것은 한국의 임팩트 운용자산(AUM)이 커져도 그 상당 부분이 정부 출자사업을 통해 형성되고, 그 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곳도 임팩트 전문기관보다 일반 밴처캐피털(VC)인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국내 임팩트투자 시장이 정부·공공기관 주도로 성장해왔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반복돼 왔다.
지금 한국 스타트업 시장 전체를 보면 왜 이 문제가 더 치명적인지 알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통계로는 2025년 연간 벤처투자액이 13조6천억원으로 2024년보다 14% 늘어 역대 두 번째 실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시장의 체감은 정반대다. 한국 스타트업 투자 DB 및 시장조사업체인 '더브이씨' 집계에선 2025년 국내 비상장 스타트업 투자 건수는 1천155건으로 전년보다 33.2% 줄었고, 평균 투자금은 47.3% 늘었다. 돈이 시장 전체로 퍼진 게 아니라 검증된 소수 기업에 더 많이 몰렸다는 뜻이다.
초기기업은 더 가혹했다. 더브이씨에 따르면 업력 3년 이내 기업의 2025년 투자유치 금액은 4천490억원으로 2024년 1조2천186억원 대비 63.2% 감소했다. 같은 해 시리즈A 투자는 2024년보다 40.4% 줄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시장이 조금 회복돼도 먼저 살아나는 곳은 대체로 후기 라운드다. 투자 건수는 줄고, 라운드당 평균 금액은 커지고, 자금은 소수 후기기업으로 쏠린다. 초기 임팩트 스타트업이 체감하는 현실은 '투자 혹한기'가 아니라 거의 '생존 시험'에 가깝다.
한국의 모험자본이 완전히 마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책금융은 계속 움직이고 있다. 중기부는 2025년 1분기 벤처펀드 결성이 3조1천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6% 늘었다고 발표했고, 올해 1차 모태펀드 출자사업으로 4조4천억원 규모 벤처펀드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런 자금이 임팩트의 의도성과 전문성을 가진 초기투자 생태계로 얼마나 흘러가느냐다. 공급은 있는데 설계가 틀어져 있으면, 자금은 언제든 가장 안전하고 가장 익숙한 곳으로만 몰린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더 선명해진다. 한국은 인공지능(AI)과 딥테크 역량에서 결코 뒤처진 나라가 아니다. 스탠퍼드 AI 인덱스 2026에 따르면 한국은 2025년 '주목할 만한 AI 모델' 수에서 세계 3위였고, 인구 10만명당 AI 특허는 세계 1위였다. 좋은 기술도, 사회문제를 풀 수 있는 창업팀도 있다. 그런데 그 기술이 임팩트 비즈니스로 자라날 자본의 토양이 없다.
반면 일본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GSG Impact JAPAN 조사에 따르면 2024년 일본의 임팩트 AUM은 17조3천억엔으로 전년의 150% 수준까지 커졌다. 동아시아의 확대가 숫자로 보인다면, 그 안에는 분명 일본의 공격적 성장도 들어 있다. 한국이 '좋은 기업은 많은데 돈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동안, 일본은 시장을 키우는 쪽으로 한발 더 나아갔다.
더구나 임팩트 스타트업이 주로 뛰어드는 분야는 원래도 돈이 늦게 붙는 영역이 많다. 기후테크는 실증이 길고, 돌봄·교육·헬스케어는 매출이 붙어도 급격한 스케일업을 증명하기 어렵고, 농식품·지역문제 해결 기업은 성장 가능성이 있어도 수도권 중심 심사 구조에서 늘 후순위로 밀린다. 일반 VC가 꺼리는 이유가 분명한 분야일수록 임팩트 자본이 더 필요하지만, 지금 한국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임팩트를 말하는 돈은 줄고, 임팩트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돈만 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임팩트투자 생태계는 숫자상 성장과 체감상의 붕괴가 동시에 나타난다. 펀드 총액은 늘었다고 하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창업팀이 느끼는 건 "투자자가 많아졌다"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투자자가 사라졌다"는 감각이다. 임팩트투자는 결국 수익률의 하위 장르가 아니다. 시장이 외면한 문제를 먼저 사업기회로 읽어내는 자본의 감각이다. 그 감각을 가진 자본이 줄어드는 나라에서, 사회문제를 푸는 혁신기업이 버티기 어려운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재원 구조의 혁신이다. 초기 임팩트기업에는 일반 VC 방식만으로는 닿지 않는 구간이 있다. 기술과 고객은 있는데 회수기간이 길고, 사회성과 측정까지 요구돼 자본비용이 더 높아지는 구간이다. 여기에는 선손실 촉매자본과 인내자본이 필요하다. 공공이 모든 것을 직접 하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공공은 첫 손실을 떠안아 민간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연기금·재단·기업자금은 그 위에서 더 긴 호흡으로 들어올 수 있게 설계해야 한다. 한국 임팩트투자의 진짜 빈곤은 돈의 총량이 아니라 돈의 성격에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돈이 아니라, 더 오래 기다릴 수 있고 더 먼저 위험을 져줄 수 있는 돈이다.
임팩트투자 불모지라는 말은 시장이 작아서가 아니다. 시장을 키울 철학과 구조, 그리고 첫 위험을 감당할 자본이 비어 있어서다. 그 공백을 더 이상 방치할 시간이 한국에는 많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의 이름이 아니라, 창업가가 실제로 숨 쉴 수 있는 자본의 시간표다. 한국은 더 늦기 전에 그 설계를 시작해야 한다. 더 미루면 안 된다
이순열 공익법인 임팩트투자 NGO 큐네스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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