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 수단에 머물던 전기차가 전력망과 연결된 '움직이는 에너지 저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한국과 영국, 미국, 일본, 네덜란드 등 주요국에서 양방향 충·방전(V2G) 기술을 접목한 전력 자산화 시도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V2G란 전기차 배터리를 전력망에 연결해 쌍방향으로 전기를 교환하는 기술이다. 전력 제어와 통신 기능이 내장된 차량에서만 구현이 가능하다. 심야처럼 전력 수요가 적은 시간대에 배터리를 채운 뒤,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 피크 타임에 저장된 전력을 전력망으로 내보내는 구조다. 이를 통해 수급 균형과 에너지 효율이 동시에 개선되며, 차량 소유자에게는 충전 요금 할인과 수익 창출 기회가 주어진다.
태양광·풍력 등 발전량 변동이 심한 재생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에서는 V2G 전기차가 특히 주목받고 있다. 잉여 전력 흡수와 전력망 안정화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상용화 선두 주자는 영국이다. 재생에너지 대기업 옥토퍼스 에너지는 지난해 전기차 리스, V2G 충전기 설치, 요금제를 통합한 패키지 상품을 선보였다. 충전기에 차량을 연결하기만 하면 복잡한 절차 없이 서비스 참여가 가능하다. 일정 시간 이상 충전기에 연결할 경우 전기 요금을 전액 면제해주는 인센티브도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유럽 최초의 대규모 도시 단위 V2G 실증 프로젝트 '위트레흐트 에너자이즈드'가 진행 중이다. 인구 기준 네 번째로 큰 이 도시는 건물 35%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낮 시간대 전력 과잉 문제를 안고 있다. V2G 기술 적용 차량들이 잉여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시 전력망에 돌려보내며 불균형을 해소한다. 충전과 방전 시점은 시스템이 실시간 수급 상황을 분석해 자동 결정한다.
자연재해가 잦은 국가들도 전기차를 핵심 에너지 인프라로 삼고 있다. 캘리포니아주에서는 공공유틸리티위원회(CPUC) 주도로 산불·폭염으로 인한 정전 시 전기차 연계 전력 복구 속도를 검증하는 실험이 한창이다. 일본은 2024년 이시카와현 노토 지진 때 피해 지역에 전기차를 급파해 가정집과 피난소, 병원에 비상 전력을 공급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사업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전용 전기차 모델과 양방향 충전 기술을 기반으로 V2G 생태계 구축에 나섰다. 지난해 12월부터 제주도에서 아이오닉9, EV9 등 55대를 투입해 충전 인프라와 전력망 연계 안정성을 검증하고 있다.
제도적 기반 마련도 병행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작년 말 출범시킨 'V2G 민관 협의체'에는 중앙·지방 정부, 전력 기관, 기업, 학계가 참여해 요금제, 정산·보상 체계, 법령 개정, 기술 표준 등을 아우르는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 중이다. 지난달 김성환 장관은 제주 대통령 타운홀 미팅에서 V2G 확대를 7대 혁신 프로젝트로 제시하며 과감하고 신속한 전환을 천명했다.
업계 관계자는 "시범 사업과 함께 제도 설계 속도를 높여야 상용화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며 "V2G가 안착하면 전기차 보급 확대뿐 아니라 국가 에너지 전략 자산 확충의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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