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민 40만명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이주민을 향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인권침해는 여전히 심각하다. 그 실상은 각종 통계와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를 통해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다.
저출생과 인구감소, 노동력 부족이 현실이 된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자생적으로만 유지되기 어려우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도 결국 이주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단지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만 필요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주민을 낯선 타인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본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이주민을 둘러싼 현재 제도의 한계와 사회적 배제를 비판적으로 짚고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미래와 공존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안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폭력적인 단속으로 목숨을 잃고 새우꺾기식 제압을 당하고 병원 진료조차 마음 놓고 받지 못한다. 일상 속에는 늘 추방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한국 사회 미등록 이주민들의 현실이다. 이들은 대단한 악인도 중대한 범죄자도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일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소시민일 뿐이다.
법무부는 올해 1월 기준 국내 불법체류 외국인 규모를 약 40만명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한국에서 태어난 미등록 아동·청소년과 공식 통계에 충분히 포착되지 않는 인원까지 감안하면 실제로는 이보다 더 많을 가능성이 크다.
국내 체류외국인에게 ‘불법’ 낙인이 찍히게 되는 과정은 대부분 다음과 같다.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체류기간 만료나 자격 유지 실패로 합법 체류 상태에서 미등록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첫째, 합법적으로 입국한 외국인이라도 체류기간 연장에 실패하면 곧바로 미등록 체류 상태로 전환된다. 외국인의 체류자격은 대부분 일정 기간으로 제한돼 있는데, 연장 심사 과정에서 필요한 소득·고용·학업 관련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행정 처리 지연이 발생하면 체류자격을 잃는 일이 벌어진다.
둘째, 체류자격 조건을 지키지 못해 합법 체류 자격을 뺏기는 경우다. 대표적으로 유학생은 체류자격상 허용된 시간과 업종 안에서만 일할 수 있는데, 현실 노동시장에서는 제도가 허용하는 일자리와 실제 구할 수 있는 일자리 간 큰 괴리가 있다. 이 때문에 생계나 등록금 마련을 위해 허용 시간을 넘겨 일하거나 허가받지 않은 업종에 종사할 경우 체류 자격 취소와 미등록 체류로 연결되는 것이다.
셋째, 국내 고용허가제도 합법 체류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고용허가제 아래 들어온 노동자는 사업장 변경이 엄격히 제한돼 있어 임금체불이나 폭력 등 부당한 대우를 겪더라도 사업주 협조 없이는 일터를 옮기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가 일터를 떠나면 ‘무단이탈’ 처리되고 체류자격 유지도 어려워진다.
지난해 10월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법무부는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대구의 한 공장에서 20대 베트남 유학생 뚜안씨가 이른바 ‘토끼몰이식 단속’을 피하려다 추락해 숨졌다. 뚜안씨는 위 세 가지 경우 중 두 번째 사례에 해당된다.
법무부의 강압적 단속과 보호 행정이 논란이 된 것은 뚜안씨 사건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에는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가 단속 과정에 추락해 숨졌고 2021년에는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보호 외국인을 ‘새우꺾기’ 자세로 결박한 가혹행위가 드러나 인권침해 논란을 산 바 있다. 다만 뚜안씨 사건 뒤 법무부가 처음으로 사과에 나서면서 단속 방식과 이주민 인권 보호 정책 전반에 변화가 뒤따를 것이라는 기대도 나왔다.
올해 들어 법무부는 ‘2030 이민정책 미래전략’을 발표하고 지난 3월에는 ‘이민자 권익보호 TF’도 신설했다. 2030 전략은 해외 인재 유치, 민생경제 활성화, 안전한 국경관리, 외국인 인권 보호 등을 포괄한다고 밝혔고 권익보호 TF 역시 국내 체류외국인 인권침해의 재발 방지와 권리구제 강화를 내세웠다.
하지만 이 같은 법무부의 정책에서 미등록 이주민의 체류 안정화나 합법화, 혹은 장기 미등록 상태에 놓인 이들에 대한 별도의 보호 대책은 확인되지 않았다.
현장의 평가 역시 냉담했다. 투데이신문 취재 결과, 법무부가 뚜안씨 사건 이후 예고없는 합동단속을 대폭 줄이고 단속 실적 중심의 운영도 완화한 것은 사실로 확인됐지만 여전히 제보가 있을 때는 단속이 이뤄지고 있었다.
법무부가 정작 미등록 이주민을 여전히 관리와 통제, 퇴거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도 법무부는 특별 자진출국 제도, 불법체류 감소, 관리 강화에 더 집중해 왔다.
윤석열 정부 시기 법무부의 미등록 이주민 정책이 ‘단속’, ‘질서 확립’에 방점이 찍혀 있었고, 이재명 정부에서도 그 큰 틀은 아직 뚜렷하게 달라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평가다. 표현은 권익보호와 인권으로 옮겨왔지만 공개된 정책 문서만 놓고 보면 미등록 이주민을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어떻게 보호하고 어떤 방식으로 제도권 안으로 편입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은 희미한 실정이다.
특히 지난 3월 이재명 정부 산하 법무부는 불법 외국인 라이더 단속에 들어갔는데 이 역시 특정 업종을 대상으로 집중단속을 하면 체류 자격이 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이주배경 시민 전체가 낙인과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현장의 비판을 사고 있다.
현장 당사자와 전문가는 공통으로 법무부가 뚜안씨 사건 이후 단속 강도를 일부 낮췄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미등록 이주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복잡한 체류·비자 제도와 고용허가제 구조가 계속 미등록 이주민을 만들어내는 만큼 체류 안정화와 체류자격 회복, 노동권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우다야 라이 위원장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고용허가제와 비자 제도가 까다로워 미등록 상태로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단속을 줄이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이미 미등록 상태가 된 노동자들의 체류권을 보장하고 합법적으로 비자를 받아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비자 없이 일하게 두면 노동착취를 당해도 임금을 받지 못하고 다쳐도 산재 신청조차 못 하는 일이 반복된다”며 “노동자들이 공식적으로 체류자격을 갖고 일할 수 있게 해야 근본적인 해결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민정책연구원 장주영 연구위원은 미등록 이주민 지원체계의 필요성을 짚었다. 장 연구위원은 본보에 “현장에서 미등록 이주민이 되게 된 원인을 보다 보면 생계 지원이 필요하거나 자녀·질병·언어 문제 등으로 혼자서는 상황을 타개하기 어려운 분들도 있다”며 “귀환을 지원하거나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 자격을 전환할 가능성이 있는지 상담할 수 있는 공식 절차, 기관, 예산이 지금은 충분히 확보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벨기에 같은 경우 미등록 이주민에게 자발적 출국을 권고하고 방안을 찾아주는 상담 체계가 있다. 한국도 이 같은 시스템이 마련되면 해결할 수 없는 미등록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 대응의 한계와 관련해서는 “법무부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 체류 관리고 미등록 문제나 인권 문제는 법무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고용주 관리 문제는 또 다른 영역이고 등록 외국인의 사회권 보장 문제는 보건복지부 등 다른 부처가 해야 하는 일이다. 어느 한 부처가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산업재해로 팔을 잃은 필리핀 노동자 사건을 맡아 그의 권리를 대변한 바 있다. 타국에서 일하다 중대한 상해를 입고 귀국해야 했던 노동자의 사연에 많은 이들이 공감을 건넸고 이 대통령은 그를 도와 정당한 배상을 받게 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잔혹한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무수한 학대 사례와 산재 위험 속에서 ‘등록’ 여부가 생명의 무게와 존엄, 그리고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자격까지 가르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들 역시 한국 사회를 떠받치며 일해온 노동자들이다.
전쟁과 재난 속 희생되는 생명에 대해 국가가 연민과 책임을 말한다면 국내에서 일하다 단속을 피해 도망치다 목숨을 잃는 이들의 죽음 역시 외면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미등록 이주민의 죽음과 부상을 국가가 어떻게 예방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되묻고 답해야 할 때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