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후보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개적인 금리 인하 압박에도 "대통령의 꼭두각시가 되지 않겠다"며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분명히 했다. 동시에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의 정책 오류와 후유증을 반영해 물가 분석 체계를 근본적으로 손보는 ‘체제 전환’ 수준의 개편을 예고했다.
워시 후보자는 21일(현지시간) 연방상원 은행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대통령들은 금리 인하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면서도 "연준의 독립성은 연준에 달려 있다. 연준 지도부는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금리 인하를 거듭 요구해온 점을 언급하며 "차이가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을 대리인이나 얼버무림 없이 매우 공개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이라고도 했다.
‘트럼프의 인간 꼭두각시가 될 것이냐’는 상원의원의 직설적인 질문에는 "절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내가 연준 의장으로 인준되면 독립적인 행동을 할 것"이라며 "(대통령에게) ‘자리를 주면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선출 권력의 노골적인 압박과는 거리를 두되, 정책 판단은 연준이 주도하겠다는 메시지다.
워시 후보자는 다만 현재의 인플레이션 상황을 팬데믹 당시와는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여전히 2021년과 2022년 정책 오류의 여파를 겪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이 (당시보다) 덜 문제되는 것이 사실이며, 이는 물가 상승률이 몇 년 전보다 덜 심각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란 전쟁 등 지정학적 충격을 제외하면 팬데믹 시기와 비교해 물가 압력이 완화됐다는 인식이다.
이와 관련해 연준이 통상 통화정책의 기준으로 삼아온 물가 분석 틀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우리는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 지표를 사용했다. 이는 (물가) 상황이 어떤지 대략 추정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이제는 그런 대략적 추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내가 가장 관심 있는 것은 ‘기저 인플레이션율’"이라고 언급, 팬데믹 시기 과잉 유동성과 공급 충격의 잔재를 제거한 보다 구조적인 물가 흐름을 새 기준으로 삼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워시 후보자는 이를 토대로 "새로운 인플레이션 프레임워크" 구축을 예고했다. 팬데믹 시기 통화정책 실패를 교훈 삼아 물가의 기조적 추세를 정교하게 가려내고, 이에 맞춰 금리를 결정하는 방향으로 정책 체계를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시장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선호와 무관하게 독립적 결정을 하겠다는 전제 아래, 인플레이션을 다소 덜 위협적인 문제로 보는 만큼 향후 금리 인하 여지를 열어둔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최근 PCE 물가 상승률이 연준의 목표를 웃도는 원인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관세보다는 팬데믹 이후의 수요·공급 재조정과 과거 정책 오류의 후유증이 더 큰 요인이라는 인식으로 읽힌다.
향후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 워시 후보자는 시장에 구체적인 ‘진로’를 미리 알려주는 관행에도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나는 많은 동료와 달리 포워드 가이던스를 믿지 않는다. 미래의 결정을 예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향후 금리 경로를 사전에 제시해 시장 불확실성을 줄이는 중앙은행의 주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다.
워시는 "너무 많은 연준 관계자들이 다음 회의, 다음 분기, 다음 해의 금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미리 의견을 밝히고 있다"며 "연준 이사나 각 지방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이 언론이나 강연 등에서 통화정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는 게 상당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는 연준 내부 발언의 난립이 오히려 시장 혼선을 키우고 있다고 본 것으로, 의장 취임 시 보다 절제된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주문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워시 후보자는 연준 이사로 재직하던 2011년 제2차 양적완화(QE2)에 반대하며 이사직을 사임한 이력 때문에 한때 대표적인 ‘매파’로 분류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금리 인하 주장에 상당 부분 동조하는 발언을 내놓으며 기존 이미지와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이날 청문회에서도 금리 인하에 대한 구체적 시기나 폭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인플레이션 부담이 줄었다는 진단과 새 물가 프레임워크 구상은 향후 완화적 정책으로 기울 여지를 남긴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취임까지는 정치적 변수가 남아 있다.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의 임기는 내달까지지만, 워시 후보자가 실제로 의장직을 맡기 위해선 상원 인준 표결을 통과해야 한다. 연준 청사 개보수 비용 과다 지출 의혹을 둘러싼 미 법무부의 수사가 파월 의장을 겨냥하고 있는 가운데, 상원 은행위 소속 톰 틸리스(공화·노스캐롤라이나) 의원은 수사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워시 후보자의 인준에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공언해 왔다.
틸리스 의원은 이날도 청문회에서 "이 조사가 제거돼야 당신의 인준을 지지할 수 있다"고 못박았다. 다만 법무부 대신 의회가 연준 청사 개보수 비용 문제를 조사하는 ‘절충안’에 대해서는 수용 가능하다고 여지를 남겼다. 상원 은행위는 공화당 13명, 민주당 11명으로 구성돼 있어 민주당 의원 전원과 공화당 의원 1명 이상이 반대하면 인준안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한다.
워시 후보자의 막대한 개인 재산도 도마에 올랐다. 공개된 것만 2억 달러(약 2천940억 원)에 이르는 투자 자산을 보유한 그는 "모든 금융 자산을 매각하는 데 동의했으며, 그 대부분은 의회에서 취임 선서를 하기 전에 매각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충돌 논란을 사전에 차단해 인준 과정의 또 다른 불씨를 끄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워시 후보자가 예고한 연준의 ‘체제 전환’은 물가 분석 틀과 커뮤니케이션 방식, 그리고 백악관과의 관계 설정까지 통화정책 전반을 포괄한다. 그러나 파월 의장을 둘러싼 수사와 상원의 정치 지형이 얽히면서, 그가 실제로 새 프레임워크를 실행에 옮길 수 있을지는 인준 표결의 향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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