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에서 겨울의 매서움이 사라지고 볕이 따뜻해지면 사람들 입맛도 바뀐다.
도다리 쑥국과 쭈꾸미 볶음 / ptera-shuttestock.com
겨울 내내 기름진 방어나 붉은 살 생선을 즐겼다면 이제는 담백하고 쫄깃한 흰 살 생선이 생각날 때다. 봄이 오면 수산시장과 횟집 앞마당을 가장 먼저 차지하는 생선이 있다. 바로 도다리다. "가을 전어, 봄 도다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시기에 먹는 도다리는 다른 계절과는 비교하기 힘든 맛을 낸다.
도다리라는 이름에 담긴 뜻과 유래
도다리라는 이름이 어떻게 붙었는지 살피면 이 생선이 가진 성격을 알 수 있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이 생선을 두고 여러 이름을 붙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무언가 툭 튀어나온 모양새에서 이름이 왔다는 설이다. 도다리의 등 쪽을 보면 우툴두툴한 돌기가 솟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살 위로 돋아난 돌기 때문에 '돋아난 물고기'라는 뜻으로 부르다 도다리가 됐다는 말이 전해진다.
다른 쪽에서는 봄이 되어 만물이 돋아나는 시기에 맞춰 나타난다고 해서 도다리라 불렀다고 한다. 겨울 내내 깊은 바다에서 몸을 사리던 물고기들이 수온이 오르며 연안으로 올라오기 시작한다. 이때 대지에서 새싹이 돋듯이 바다에서도 이 생선이 돋아난다는 의미다. 이름부터가 봄이라는 계절과 떼어낼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조선 시대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도 이 생선에 대한 기록이 있다. 당시에는 가자미 종류와 비슷하게 보면서도 그 맛이 뛰어나다는 점을 기록해 두었다.
광어와 도다리, 확실하게 구분하는 법
사람들이 도다리를 보며 가장 헷갈려 하는 부분이 광어와 차이다. 모양이 비슷하게 생겨서 횟집에서도 자주 묻곤 한다. 가장 쉬운 구분법은 "좌광우도"라는 네 글자만 기억하면 된다. 생선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눈이 왼쪽으로 쏠려 있으면 광어이고, 오른쪽으로 쏠려 있으면 도다리다.
입 모양으로도 알 수 있다. 광어는 입이 크고 날카로운 이빨이 있는 포식자다. 반면 도다리는 입이 아주 작고 이빨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광어는 주로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고 살지만, 도다리는 갯벌이나 모래 속에 사는 갯지렁이나 작은 갑각류를 먹고 살기 때문이다. 성격도 다르다. 광어는 양식이 활발해 사계절 내내 흔히 볼 수 있지만, 도다리는 대부분 자연산으로 잡힌다. 양식이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나 자라는 속도가 느려 수지타산이 안 맞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봄에 먹는 도다리는 대부분 바다에서 직접 건져 올린 것이라 봐도 좋다.
왜 하필 봄 도다리일까
도다리가 일 년 중 봄에 가장 대접받는 이유는 생존 주기와 밀접하다. 도다리는 추운 겨울에 산란을 한다. 알을 낳는 동안 몸속에 있는 모든 영양분을 쏟아붓기 때문에 겨울철 도다리는 살이 푸석하고 맛이 떨어진다. 하지만 산란을 마친 뒤 봄이 되면 다시 살을 찌우기 위해 왕성하게 먹이 활동을 한다. 이때부터 살이 차오르고 영양가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도다리 회 (AI로 제작)
봄 도다리는 지방 함량이 적고 단백질이 풍부하다. 맛이 아주 깔끔하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씹을수록 은은한 단맛이 올라오는 것도 봄 도다리만의 장점이다. 여름으로 넘어갈수록 살이 더 단단해지긴 하지만, 봄에 느낄 수 있는 그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찰진 식감은 지금이 아니면 경험하기 힘들다. 바다의 수온이 섭씨 10도에서 15도 사이일 때 잡히는 도다리가 가장 맛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봄 도다리를 즐기는 여러 가지 방법
도다리를 먹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역시 회다. 특히 봄 도다리는 뼈째 썰어 먹는 '세꼬시'가 일품이다. 뼈가 아직 딱딱하게 굳기 전인 어린 도다리를 뼈와 함께 얇게 썰어내면 오도독 씹히는 식감이 재미있다. 뼈 속에 담긴 고소한 맛과 살의 단맛이 어우러져 씹으면 씹을수록 입안에 풍미가 가득 찬다. 상추보다는 깻잎에 싸서 된장이나 초장을 곁들여 먹으면 그 맛이 더 살아난다.
남해안 지역에서는 도다리 미역국도 자주 끓여 먹는다. 소고기 대신 도다리를 넣어 국물을 내면 맛이 아주 시원하고 개운하다. 도다리 살이 연해서 국물 속에서 부드럽게 풀리는데, 아이들이나 어르신들도 먹기 편하다. 도다리 조림도 빼놓을 수 없다. 무를 두껍게 깔고 간장 양념에 조려내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도다리 살은 양념을 잘 흡수해서 밥과 함께 비벼 먹기에 그만이다.
봄의 정점, 도다리 쑥국
도다리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도다리 쑥국이다. 경남 통영과 거제 등 남해안 사람들에게 봄은 도다리 쑥국 냄새와 함께 온다. 바다의 도다리와 땅의 쑥이 만난 이 음식은 영양학적으로나 맛으로나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쑥은 찬 기운을 몰아내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질이 있다. 산란 후 기력이 떨어진 도다리와 환절기 면연력을 높여주는 쑥의 만남은 보약이나 다름없다.
쑥도 아무 쑥이나 쓰지 않는다. 찬 바람을 견디고 갓 올라온 어린 쑥이어야 한다. 이 시기 쑥은 향이 아주 강하고 부드럽다. 된장을 연하게 푼 국물에 도다리를 넣고 끓이다 마지막에 쑥을 한 웅큼 넣으면 끝이다. 쑥을 너무 오래 끓이면 질겨지고 향이 날아가기 때문에 마지막에 살짝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한 숟가락 떠먹으면 바다의 시원함과 흙의 향긋함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겨울 내내 웅크렸던 몸이 활짝 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도다리가 몸에 좋은 이유
도다리는 영양 성분이 훌륭하다. 지방이 적고 단백질이 많아 체중 관리를 하는 사람들에게 좋다. 특히 비타민 B군과 나이아신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 이 성분들은 에너지를 만들고 신경계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봄철에 쉽게 찾아오는 춘곤증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준다. 피로가 쌓였을 때 도다리 한 그릇을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다리 생선 자료사진 / Jongwan Kim-shutterstock.com
글루타민산이라는 성분도 풍부하다. 이 성분은 뇌 기능을 돕고 면역력을 높여준다. 또한 도다리의 껍질에는 콜라겐 성분이 있어 피부를 탄력 있게 가꾸는 데 도움을 준다. 단순히 맛있는 생선이 아니라 건강을 지켜주는 훌륭한 식재료인 셈이다. 특히 회로 먹을 때 뼈째 씹어 먹으면 칼슘 섭취량도 늘어나 뼈 건강에도 이롭다.
싱싱한 도다리 고르는 요령
시장에서 맛있는 도다리를 고르려면 눈과 비늘을 잘 살펴야 한다. 눈이 맑고 투명하며 툭 튀어나온 것이 싱싱하다. 눈이 흐릿하거나 움푹 들어간 것은 잡은 지 오래된 것이다. 비늘은 몸에 딱 붙어 있고 윤기가 흐르는 것이 좋다. 손으로 눌러봤을 때 살이 단단하고 탄력이 느껴져야 한다. 물렁물렁한 것은 신선도가 떨어진 상태다.
배 쪽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배 부분이 하얗고 깨끗해야 한다. 붉은 반점이 있거나 색이 변했다면 피해야 한다. 또한 도다리는 크기가 너무 큰 것보다는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정도가 회로 먹기에 가장 맛있다. 뼈째 썰어 먹는 세꼬시용이라면 작고 연한 것을 골라야 뼈의 거부감 없이 고소함을 즐길 수 있다.
집에서 맛있게 보관하고 요리하기
도다리를 사 왔다면 가급적 빨리 먹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보관해야 한다면 내장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 물기를 완전히 닦아야 한다. 그 뒤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하면 하루 정도는 괜찮다. 더 오래 두어야 한다면 냉동 보관을 해야 하지만, 회로 먹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냉동한 도다리는 국이나 조림용으로 쓰는 것이 좋다.
도다리 쑥국 / ptera-shutterstock.com
도다리 쑥국을 집에서 끓일 때는 육수가 생명이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진하게 육수를 낸 뒤 된장을 체에 걸러 맑게 푼다. 국물이 끓어오를 때 손질한 도다리를 넣고 익힌다. 도다리 살은 연해서 금방 익으니 너무 오래 끓이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에 쑥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뒤 바로 불을 끈다. 청양고추를 한 개 썰어 넣으면 칼칼한 맛이 더해져 해장용으로도 그만이다.
요즘은 택배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전국 어디서나 싱싱한 도다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직접 산지를 찾아가 먹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봄은 짧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계절인 만큼 그 시기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9만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유명한 맛집이나 유행하는 상품도 좋지만, 자연이 주는 선물인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 것이 진정한 미식의 즐거움이다. 이번 주말 가족과 함께 도다리 회나 쑥국 한 그릇으로 봄의 기운을 가득 채워보길 바란다. 입안 가득 퍼지는 봄 향기가 일상을 살아가는 큰 힘이 돼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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