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생활에 지친 가족과 극과 극 성향의 부부가 선택한 ‘집’이 삶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사람의 숨을 틔우고 관계를 조율하는 공간으로서의 집의 역할을 EBS1 ‘건축탐구 집’이 조명한다. 이번 방송에서는 서로 다른 이유로 집을 바꾸고, 그 안에서 삶의 균형을 찾아간 두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다.
먼저 서울 강남 한복판, 상수도와 도시가스조차 들어오지 않는 우면산 자락의 한 주택이 등장한다. 1970년대 조성된 국회 단지 일대는 오랜 기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었던 곳으로, 여전히 불편한 환경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집 짓기를 선택한 부부가 있다. 이들이 지은 집은 하나가 아닌 두 채다. 사각형 본채와 원통형 별채가 나란히 마주한 독특한 구조로, 부부가 ‘각 채 살이’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두 사람은 아파트에 살던 시절부터 생활 방식이 크게 달랐다. 넓고 개방적인 공간을 선호하는 아내와, 작고 아늑한 공간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남편의 성향이 설계 단계부터 반영됐다. 아내의 공간은 삼면이 통유리로 된 개방형 구조로 꾸며졌고, 남편의 공간은 외부와 차단된 원통형 구조로 완성됐다. 같은 집이지만 전혀 다른 두 개의 세계가 만들어진 셈이다.
아내 은주 씨의 집은 층별로 기능을 나눠 지하에는 공용 주방, 1층에는 거실, 2층에는 침실, 3층에는 홈짐과 취미 공간이 들어섰다. 병리과 의사로 일하는 그는 폐쇄적인 업무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하는 데 집중했다. 통창을 통해 보이는 방배동 전경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일상의 해방감을 제공한다. 동시에 남편의 별채와 시야가 이어져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거리 두기 속 연결’이라는 의미도 갖는다.
반면 남편 근모 씨의 공간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다. 곡선형 구조로 만들어진 원통형 별채는 작은 규모지만 높은 집중도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내부는 주방과 사무 공간, 다락으로 나뉘며, 특히 다락은 커튼 없이 하늘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 달빛에 눈이 부셔 잠을 이루기 어려울 정도라는 이 공간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휴식처다.
이들이 두 채의 집을 짓게 된 배경에는 건강 문제가 있었다. 10여 년 전 법적 분쟁으로 큰 스트레스를 겪은 남편의 상태가 악화되자, 아내는 자연 속에서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단, 함께 살되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방식으로 ‘따로 또 같이’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두 집을 잇는 야외 테라스는 필요할 때 서로를 연결해 주는 매개 공간으로 기능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아파트 생활을 떠나 오래된 주택을 선택한 한 가족의 사례다.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과의 갈등을 겪던 회수 씨 가족은 일상 자체가 스트레스로 변한 상황에서 탈출을 결심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할 정도로 위축된 생활 끝에, 결국 주택으로의 이사를 선택했다.
회수 씨가 선택한 집은 30년 된 노후주택이었다. 낡고 손볼 곳이 많은 공간이었지만, 지하까지 햇살이 들어오는 구조에 매료돼 남편과 상의 없이 계약을 진행했다. 이후 리모델링 역시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직접 나섰다.
그는 의사로 일하며 눌러왔던 미적 감각을 집 고치기에 쏟아냈다. 외관은 굴뚝을 살린 채 화이트 톤의 모던 클래식 스타일로 바꿨고, 내부는 가족 구성원의 취향과 생활 패턴에 맞춰 재구성했다. 지하에는 남편을 위한 AV룸과 홈짐을 만들고, 2층에는 자신만의 서재와 테라스를 마련했다. 집 곳곳은 휴식과 회복을 중심으로 설계됐다.
세부적인 공간 연출에서도 그의 취향이 드러난다. 웨인스코팅을 활용해 벽과 문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하고, 긴 복도를 통해 공간의 흐름을 살렸다. 낡은 벽난로는 히든도어 수납공간으로 탈바꿈했고, 생활 속 군더더기는 최대한 숨겼다. 오래된 가구 역시 버리지 않고 손질해 사용하며 공간에 시간의 흔적을 더했다.
이 집은 단순한 리모델링 사례를 넘어 가족의 삶을 바꾼 공간이 됐다. 층간소음에서 벗어나고, 각자의 휴식 공간을 확보하면서 가족 모두가 비로소 ‘숨통이 트였다’고 느끼게 된 것이다.
서로 다른 이유로 시작된 두 집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집은 단순히 사는 곳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지를 결정하는 공간이 될 수 있는가. ‘건축탐구 집’은 이번 방송을 통해 집이 사람의 삶과 관계, 그리고 마음의 상태까지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줄 예정이다.
EBS1 ‘건축탐구 집’ <집 짓고 숨통이 트였다> 편은 21일 밤 9시 55분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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