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초등학교 312곳이 안전사고와 민원 우려를 이유로 교과시간 외 스포츠 활동을 제한하면서 아이들의 '건강 양극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교육 공간에서 신체 활동이 제한되면 결국 사교육으로 대체될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아이들의 건강과 체력 수준이 갈리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학부모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전문가들 역시 학교 운동장 이용 제한이 아이들의 건강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다며 학부모들의 견해에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뛰지 마" "놀지 마" 아이들 사라진 운동장…체육활동 사교육화에 학부모들 시름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실이 교육부와 각 시도교육청에서 받은 '전국 초등학교 축구·야구 등 스포츠 활동 금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해 3~4월 기준 전국 초등학교 6189개교 중 312개교(5.04%)가 교과 시간 외 축구·야구 등 스포츠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대도시 일수록 더욱 심각했는데 특히 부산의 경우 303개 학교 중 105곳의 학교가 스포츠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무려 30%가 넘는 비중이다. 서울 역시 600여개 학교 중 100곳 가량이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과 시간 외에 스포츠 활동을 금지시키는 학교들은 안전사고 우려와 각종 민원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혹시나 모를 안전사고가 발생 시 책임소지가 불분명할 뿐 아니라 학교 이미지 타격도 피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또한 운동 능력이 부족한 아이가 느낄 열등감이나 편 가르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외감을 우려하는 일부 학부모들의 민원도 상당해 부득이한 결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도 피력하고 있다.
문제는 부작용을 우려한 조치가 오히려 더욱 큰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학교 운동장에서 밀려난 아이들의 발길이 축구교실이나 줄넘기 학원, 수영교실 등으로 향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체육 사교육 시설은 저렴한 곳은 회당 2만원에서 비싼 곳은 5만원에 이른다. 부모 입장에선 주 1회만 보낸다고 가정해도 월 평균 10~20만원 정도 내야한다. 심지어 팀 단위로 등록을 받는 곳도 적지 않아 학기 초 학부모들이 직접 나서 팀을 짜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팀에 속하지 못하는 아이가 생기는데, 대부분 부모가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은 맞벌이인 경우가 많다.
최수영 씨(35·여)는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치는데 학교에선 위험하다고 운동장에서 뛰어 놀지 못하게 하니 방과 후에 돈을 내고 사설 축구 교실을 보낼 수밖에 없다"며 "작년에 아이가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한 학부모가 축구교실 팀을 짠다는 소릴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알고 보니 팀 단위로 등록을 받는데 아무래도 반이 다르면 서로 어색하다 보니 한 반에서 한 팀을 학부모들이 의기투합해 팀을 짜는 것이었다"며 "당시 남자 아이 12명 중 10명을 모았고 결국 2명만 팀에 끼지 못했다. 2명 모두 부모가 맞벌이였다"고 덧붙였다.
진주은 씨(40·여)는 "운동장은 모든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운동할 기회를 주는 공간이어야 하는데 일부 극성 엄마들 때문에 모든 아이들이 피해 입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아무래도 아이들 건강과 체력 때문에라도 신체 활동을 시킬 수밖에 없다 보니 결국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는 아이들 체력마저 부모 재력에 따라 갈리는 것 같아 씁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을 쓸 수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며 "교육당국이 공교육이 하지 않으면 사교육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여전히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미 사설 체육 수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 사교육으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영어유치원 부원장 한수진(30·여·가명) 씨는 "과거에는 체육이 남는 시간에 하는 활동이었다면 지금은 학부모들이 아이의 사회성과 신체 발달을 위해 전략적으로 투자하는 영역이 됐다"며 "요즘에는 키 성장을 돕는다는 인식 때문인지 줄넘기 전문 학원이 인기가 많고 소득 수준이 높은 집안의 아이들은 하키나 승마 등 고가의 이색 스포츠 수업에도 많이 몰린다"고 귀띔했다.
전문가들은 스포츠 활동의 사교육화가 고착될 경우 가정 환경이나 부모 재력에 따라 아이의 체격과 체력이 결정되는 '건강 양극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안전사고에 대한 학교의 부담과 난처한 입장은 공감하지만 교과 시간을 제외한 체육 활동의 원천 봉쇄는 결국 아이들 사이의 또 다른 소외 현상을 낳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체육이 사교육의 영역으로 넘어갈 경우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아동기 기초 체력 자체가 달라져 건강도 양극화라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운동장에서의 사고가 걱정이라면 학교 차원에서 보증보험을 강화하거나 안전 관리 시스템을 보완하는 식으로 해결책을 모색해야지 단순히 전면 금지하는 것은 교육 기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며 "모든 아이가 가정 형편과 관계없이 운동장에서 평등하게 뛸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학교와 교육당국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방과 후 체육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은 정기적으로 모여 운동하며 유대감을 쌓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그 무리에 합류하기 어렵다"며 "방과 후 친구들이 단체로 학원 차량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홀로 귀가하는 아이들은 강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이러한 현상은 또래 관계의 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학교 운동장이라는 공용 공간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사설 학원 이용 여부가 아이들의 사회적 관계망 형성에도 차이를 만들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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