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국내 인공지능(AI) 팹리스와 생성형 AI 기업들이 지난해 매출 급증을 계기로 ‘상용화 진입’ 신호를 보였다. 서비스 확장과 제품 출시가 실적에 반영되며 외형은 빠르게 커지는 모양새다. 다만 적자 지속과 프로젝트성 매출 구조, 고객 편중 등이 이어지면서 수익성 확보 여부를 두고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업스테이지·뤼튼테크놀로지스·리벨리온·퓨리오사AI 등 주요 AI 기업들은 지난해 두 자릿수에서 네 자릿수에 이르는 매출 성장률을 기록했다. 업스테이지는 매출이 1년 새 78% 늘었고, 뤼튼은 1400% 넘는 증가세를 보였다.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 역시 각각 3배, 90% 이상 성장했다.
하지만 비용 구조는 여전히 무거운 상황이다. 업스테이지와 뤼튼은 각각 305억원, 588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리벨리온 역시 연구개발 투자 확대 영향으로 영업손실이 1205억원까지 늘었다. AI 서비스 기업은 사용자 확보와 플랫폼 투자 비용이, 반도체 기업은 칩 개발과 양산 준비 비용이 동시에 반영되면서 외형 확대가 곧바로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다.
업스테이지는 서비스 용역 중심 매출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리벨리온은 상위 3개 거래처 비중이 80%를 넘는다. 특정 고객과 프로젝트에 의존하는 구조가 지속되는 한 안정적인 반복 매출로 전환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퓨리오사AI 역시 칩 판매와 서비스 매출이 함께 늘고 있지만, 양산 물량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전까지는 실적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장부상 실적 역시 실제 경쟁력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는 상환전환우선주(RCPS) 평가손실로 수천억원대 순손실과 완전자본잠식을 기록했지만, 기업가치 상승에 따른 회계적 영향이 크다. IPO 이후 우선주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부채는 대부분 해소된다. 다만 시장의 평가는 이때부터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에서는 상장 이후에는 장부가 아닌 실제 납품 실적과 고객 확대 여부가 기업 가치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맞물려 국내 AI 산업은 빠르게 ‘투자·상장 국면’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는 참여 기업의 기술력을 사실상 인증하는 지표로 작용, 기업가치를 수조원대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고 있다. 리벨리온과 업스테이지 등 주요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 유치와 프리IPO를 거치며 상장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금 흐름을 보면 정책과 민간 투자가 동시에 결합된 구조가 뚜렷하다. 리벨리온의 경우 프리IPO 단계에서만 국민성장펀드와 산업은행 등 정책자금이 3000억원 이상 투입됐다. 창업 초기부터 모태펀드와 팁스(TIPS)를 거쳐 성장 단계까지 정책금융이 이어지는 구조다. 시장의 관심 역시 기술 경쟁력보다는 상장 이후 투자 회수 가능성으로 이동하는 분위기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생태계 확장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경기도는 제3판교 테크노밸리를 팹리스 중심 클러스터로 조성하고, 연구기관과 기업을 연계한 산업 기반 구축에 나섰다. 메모리 중심 구조를 넘어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지원 필요성이 강조된다. 팹리스 업계는 최근 간담회에서 R&D 세제 지원 확대와 유동성 지원 등을 요구하며 “자생적 생태계 구축을 위한 정책 지원이 절실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와 달리 산업 기반은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구조적 한계는 글로벌 비교에서도 드러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시가총액 100억~1000억달러 구간의 중견 반도체 기업이 사실상 부재하다. 중국과 대만은 팹리스·파운드리·패키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간층 기업이 두텁게 형성된 반면, 한국은 메모리 편중 구조가 여전히 뚜렷한 양상이다.
K팹리스 경쟁력의 핵심은 몸값이나 상장 여부가 아니라 반복 매출과 글로벌 레퍼런스 확보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과제 등 초기 수요를 넘어 민간 시장에서의 자생력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 현재의 외형 성장은 일시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프로젝트 중심 매출과 투자 의존 구조로는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간 괴리를 해소하기 어렵다”며 “결국 민간 시장에서 반복 수요를 만들어내고, 이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매출 구조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사업 모델이 전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과정에서 정부 역시 단순 자금 지원을 넘어 초기 수요 창출과 산업 간 연계, 생태계 구축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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