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이주민 실태上] 위험한 일터·높은 의료 문턱…사각지대 놓인 40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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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이주민 실태上] 위험한 일터·높은 의료 문턱…사각지대 놓인 40만명

투데이신문 2026-04-21 11:10: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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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민 40만명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이주민을 향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인권침해는 여전히 심각하다. 그 실상은 각종 통계와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를 통해 반복해서 확인되고 있다.

저출생과 인구감소, 노동력 부족이 현실이 된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자생적으로만 유지되기 어려우며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도 결국 이주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단지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만 필요한 일이 아니다. 누구나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주민을 낯선 타인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본보는 이번 기획을 통해 이주민을 둘러싼 현재 제도의 한계와 사회적 배제를 비판적으로 짚고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미래와 공존의 사회를 만들기 위한 대안의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 21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 참석해 강제노동 철폐, 사업장 변경 자유 보장,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 등을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원들이 지난해 9월 21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전국이주노동자대회에 참석해 강제노동 철폐, 사업장 변경 자유 보장,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 등을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권신영 기자】국내 미등록 체류 외국인은 약 40만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합법적으로 입국했음에도 사업장을 옮기거나 체류 기간이 만료되면서 미등록 체류 신분으로 전락한다.

법무부의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 연보에 따르면 한국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2024년 기준 39만7000여명이다. 2023년 42만명, 2022년 41만명, 2021년 39만명으로 2017년 25만명 이후 급격히 증가한 뒤 큰 변화 없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흔히 ‘불법’이라는 낙인 하에 살아간다. 체류 자격의 문제를 개인의 범법성으로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미등록 이주민들은 비자를 포기하는 선택은 자의가 아닌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노동을 수행하고 있음에도 미등록이라는 이유만으로 최소한의 안전과 권리에서 배제된 것이다.

어업·농업·건설·돌봄 등 이주노동자가 주로 종사하는 일명 3D(Dirty, Difficult, Dangerous) 업종은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정작 노동자의 기본적인 안전과 권리 보장에는 소극적이다. 일부 사업장은 노동자의 체류 자격을 사실상 통제 수단으로 삼아 고용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도 한다.

이렇게 제도 밖으로 밀려난 이들은 노동·복지 안전망에서 배제된 채 일터에 내몰리고 있으며 부상이나 질병에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실제로 산업재해를 경험한 비율도 26%에 달했다. 미등록 체류 노동자 10명 중 6명은 비싼 의료비로 인해 다쳐도 병원을 찾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이 같은 구조 속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재해와 건강 위험에 노출되면서도 적절한 의료·사회보장 지원을 받지 못하는 등 노동과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병원 진료 받는 이미지.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병원 진료 받는 이미지. [사진제공=게티이미지뱅크]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사단법인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이하 센터)가 2022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미등록 이주민 129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96명(59%)이 ‘병원에 못 가는 가장 큰 이유’로 ‘비싼 의료비’를 지목했다. 그다음으로는 ‘의사소통의 어려움’ 30명(19%), ‘단속의 두려움’ 21명(13%), 기타 8명(5%), 시간 없음 7명(4%) 등 순이었다.

‘의료 기관 이용 횟수’에 대한 질문에는 ‘연 1~2회’라는 응답이 71명(55%)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월 1~2회 24명(19%), 주 1~2회 14명(11%), 기타 17명(13%), 무응답 3명(2%) 등이 뒤따랐다.

‘최근 병원을 이용한 경우 질환의 발병 시기’를 묻는 질문에는 ‘1주 이내’와 ‘1개월 이내’가 각각 32명(25%)으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으로는 1년 이상 28명(22%), 3개월 이내 20명(15%), 3개월 이상 12명(9%) 순이었다. 

이에 따라 병원 이용 시 우선 개선돼야 할 점으로 미등록 이주민 61명(43%)이 ‘건강보험 적용’을 꼽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건강보험 제도에 가입할 수 없기 때문에 의료비가 매우 비싸고 이로 인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이로 인해 몸이 아파도 제때 병원을 갈 수 없어 만성질환으로 이어지고 건강관리나 치료 시기를 놓쳐 중증질환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건강보험 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는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혐오의 시선으로 쉽지 않은 구조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이를 두고 센터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건강보험 제도 밖에 존재함으로 인해 비싼 의료비, 의사소통의 어려움, 단속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건강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강보험 제도의 개선을 비롯한 다국어 의료정보, 통·번역 시스템의 구축 등은 민간영역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미등록 이주민 산모는 의료체계에서 가장 취약한 집단 중 하나로 꼽힌다. ‘경상남도 미등록 이주민 산전 진찰 경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은 불안정한 법적 지위와 경제적 부담, 언어·문화적 장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필수적인 산전 진찰조차 제때 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로 인해 출산 전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한 채 조산으로 이어지거나 신생아가 중환자 치료를 받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특히 미등록 상태의 경우 국제수가가 적용돼 의료비 부담이 급격히 커진다. 실제로 2023년 베트남 출신 한 산모는 창원경상국립대병원에 9일간 입원해 신생아 집중치료를 받았는데, 당시 산모와 신생아를 합친 진료비가 8223만원에 달했다.

전국이주인권단체 참여자들이 지난해 4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반인권적, 폭력적 정부 합동단속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전국이주인권단체 참여자들이 지난해 4월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반인권적, 폭력적 정부 합동단속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된 현실도 드러났다. 미등록 이주민의 26%는 산업재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나 이들 중 46%는 전액 본인이 치료비를 부담해야 했다고 털어놨다. 미등록 이주민이라는 신분 탓에 산재처리를 요구하기 힘들고 회사에서도 이를 꺼리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는 게 센터 측의 설명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의뢰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수행한 ‘이주노동자 사망 원인 분석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연구(2024)’에서도 이주노동자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한국인 노동자보다 2.3~3.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신고되지 않은 사망 사례나 국내에서 다친 뒤 치료를 위해 귀국했다가 숨진 경우까지 포함할 경우 실제 사망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격차의 배경으로 내국인이 기피하는 고위험 업무에 이주노동자가 집중돼 있는 구조적 문제와 함께 한국어 의사소통의 한계가 꼽히고 있다. 안전 교육이나 작업 지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 위험을 사전에 인지하거나 회피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분석이다.

최근 경기 화성의 한 제조업체에서는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가 사업주가 분사한 에어건 고압 공기에 맞아 중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피해 노동자는 고용허가제(E-9)로 입국해 근무하던 중 2020년 체류자격이 만료되면서 미등록 상태가 됐고 이후 인력사무소를 통해 해당 사업장에 파견돼 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이후에도 피해자는 충분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사업주 측이 치료보다 귀국을 우선하도록 종용했다는 의혹도 나오면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의료 환경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당국의 단속을 피하는 과정에서 숨진 사례도 있었다. 대구 달서구 성서공단의 한 자동차부품 제조업체에서 일하던 미등록 이주노동자 뚜안씨가 지난해 10월 28일 오후 6시 38분께 공장 부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일 오후 3시부터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의 단속이 시행됨에 따라 그는 공장 내 에어컨 실외기 창고에 몸을 숨겼다가 3시간 넘게 머문 끝에 3층 높이에서 추락해 사망한 것이다.

뚜안씨는 구직비자(D-10)를 소지하고 있었지만 해당 비자로는 제조업 취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에 생계를 위해 공장에 취업했으나 입사 2주 만에 단속을 피하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인력난이 만성화된 농업·제조업 등 현장에서 이주노동자는 이미 대체 불가능한 노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제도는 이들을 ‘필요한 인력’이 아닌 ‘관리 대상’으로만 규정하며 권리 보장에는 소극적인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이 같은 구조적 모순을 해소하지 않는 한 산업 현장의 인력 공백과 노동권 침해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송은정 집행위원은 본보에 “미등록 이주민들은 처음부터 불법적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아니라 합법적인 체류 자격으로 입국한 뒤 체류 자격이 만료되면서 미등록 상태가 된 경우들이 대부분”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정부는 미등록 이주민 정책에 대해 늘 국민 정서나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다고 말하지만 그런 공감대는 정부가 책임 있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며 “지금은 미등록 체류자 문제에 대해 정부가 보다 분명한 입장을 내고 적극적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결국 이주노동자를 일시적 노동력이 아닌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체류 자격과 노동권·복지 제도를 연계해 재설계하는 근본적 접근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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