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봄이 오면 땅은 가장 먼저 작은 신호를 보낸다. 얼어붙었던 흙을 뚫고 올라오는 연한 풀 한 포기, 바로 달래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그 안에는 겨울을 이겨낸 생명의 기운이 고스란히 응축돼있다. 우리 조상은 이 작고 여린 풀에서 자연의 흐름과 인간의 몸을 동시에 읽어냈다. 달래는 계절의 문을 여는 열쇠다.
옛 동양의학의 기본인 '황제내경'에서는 봄을 두고 "만물이 생하여 펼쳐지고, 하늘과 땅의 기운이 함께 일어난다"고 했다.
겨울 동안 저장됐던 기운이 바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시기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자연보다 한 박자 늦다. 겉은 따뜻해졌지만 속은 아직 닫혀 있다. 이때 나타나는 것이 몸의 무거움과 나른함, 그리고 소화의 정체다. 기운이 나가야 할 길을 찾지 못하고 머무르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춘곤증이다.
이것은 전쟁에서 군대가 길목에서 막혀 서 있는 형세와 같다. 움직이지 못하는 군대는 스스로 무너진다. 그래서 손자는 군쟁(軍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흐름을 차지하는 것'이라 봤다. 빠르게 움직여 길을 선점하고, 막힘없이 이어지게 하는 것, 그것이 승리의 근본이다.
달래는 바로 이 막힘을 풀어주는 음식이다. 성질은 맵고 따뜻하며 약간 쓰다. 심장과 폐, 비위와 장으로 들어가 기운의 막힘을 뚫고 순환을 돕는다. 이를 통양산결(通陽散結)이라 하는데, 쉽게 말해 막힌 양기를 열어주고 응어리를 부드럽게 풀어 흩는 것이다. 가슴이 답답하거나 속이 더부룩한 증상, 또는 장이 막혀 불편한 상태를 풀어주는 데 쓰인다.
달래 속에는 알리신과 같은 유황 화합물이 풍부하다. 이 성분은 혈액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고 혈관을 깨끗하게 하며,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는 힘을 지닌다. 몸속에서 정체된 것을 풀고 자연스럽게 흐르게 만드는 역할은 현대 과학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 달래의 영양학
영양적으로도 달래는 봄철에 가장 알맞은 식재료다. 비타민 A, B군, C가 풍부해 신진대사를 돕고 면역력을 강화하며, 특히 철분이 많아 혈을 보충한다. 겨울 동안 움츠렸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달래 한 줌은 그저 하나의 채소가 아니라 계절의 전환을 돕는 작은 처방이다.
달래를 가장 효과적으로 먹는 방법은 가능한 한 생으로 섭취하는 것이다. 비타민 C는 열에 약하기 때문에 가열하면 영양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달래 양념장 만드는 법은 먼저 달래를 깨끗이 씻어 3~4cm 길이로 썬다. 그런 다음 간장에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을 넣는다. 이후 참기름과 깨를 더해 고루 섞는다. 마지막에 달래를 넣고 살짝 버무린다. 이렇게 만든 달래장은 따뜻한 밥에 비벼 먹거나 김에 싸 먹으면 봄의 향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달래는 따뜻한 성질이 강하기 때문에 몸에 열이 많거나 위가 약한 사람은 지나치게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다. 과하게 섭취하면 속이 쓰리거나 불편할 수 있다. 어떤 음식이든 자신의 몸 상태에 맞게 조절해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조상은 이를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했다. 봄이 오면 들에 나가 달래를 캐고, 이를 밥상에 올렸다. 달래장에 밥을 비벼 먹고 된장찌개에 넣어 향을 더했다. 이는 몸의 흐름을 여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았다. 자연의 변화를 음식으로 받아들이는 지혜였다.
불가에서는 달래를 오신채로 분류해 수행 중에는 멀리했다. 기운을 강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는 달래가 몸의 '기'(氣)를 바꾸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 음식이 곧 약이 되고, 약이 곧 흐름을 바꾸는 도구가 되는 지점이다.
◇ 손자병법으로 본 달래 요리
손자병법 '군쟁(軍爭)의 장'은 싸움의 기술만이 아니라 흐름을 다루는 분야를 다룬다. 길을 빼앗고, 시간을 앞당기며, 상대보다 먼저 도착하는 것.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무겁지 않고, 막히지 않으며, 끊기지 않는 것이다. 달래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식재료다.
달래무침은 군쟁의 경병(輕兵)과 같다. 가볍고 빠르며 즉각적으로 작용한다. 생으로 무쳐 먹는 달래는 열을 가하지 않아 기운이 그대로 살아 있다. 몸속으로 들어가 막힌 곳을 즉시 풀어준다. 이는 병력을 가볍게 하여 신속하게 움직이는 전략과 같다.
달래된장찌개는 중심을 잡는 전술이다. 구수한 국물 속에 마지막으로 들어간 달래는 전체의 맛을 정리한다. 이는 전투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질서를 유지하는 장수의 역할과 같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전체를 조율하는 힘이다.
달래국은 부드러운 전환이다. 맑은 국물에 스며든 달래는 몸을 긴장시키지 않고 서서히 풀어준다. 노자가 말한 무위의 방식처럼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게 한다. 강함보다 부드러움이 오래가는 이유를 보여준다.
달래전은 집중된 힘이다. 여러 재료가 하나로 어우러져 불 위에서 익으며 균형을 이룬다. 이는 병력을 모아 한순간에 힘을 쏟는 전략과 닮았다. 겉은 단단하지만, 속은 부드러운 조화 속에 긴장과 이완이 공존한다.
달래양념장은 보급이다. 아무리 강한 군대라도 먹을 것이 없으면 무너진다. '밥도둑'이라 불리는 달래장은 밥 한 그릇을 살리고 입맛도 되살린다. 이는 사기를 유지하는 근본이며 지속 가능한 힘이다.
달래장아찌는 시간을 다스리는 지혜다. 봄의 기운을 저장해 오래도록 활용하는 방식이다. 손자가 말한 빠른 승리의 이면에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절제가 있다. 장아찌는 계절을 넘어 흐름을 이어주는 전략이다.
이 모든 방식은 하나로 통한다. 막힘을 풀고 흐르게 하는 것. 기운이 막히면 병이 되고 흐르면 건강이 된다. 전쟁도 마찬가지다. 길이 막히면 패하고 흐르면 이긴다.
노자는 '가장 부드러운 것이 가장 단단한 것을 이긴다'고 했다. 달래는 부드럽고 작지만 그 향과 기운은 깊다.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고 스며들어 변화를 일으킨다. 이것이 진정한 힘이다.
봄의 식탁에서 달래는 겨울과 봄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몸과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다. 긴장과 이완, 정체와 흐름, 싸움과 평화가 한 그릇 안에서 조화를 이룬다.
결국 최고의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몸속의 막힘을 풀고 자연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것. 달래 한 줌으로 시작되는 이 작은 변화가 곧 큰 울림을 만든다.
봄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몸속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늘 작고 조용하다. 달래 한 포기가 땅을 깨우듯 우리의 몸도 그렇게 깨어난다.
달래는 작은 풀 한 포기지만 그 안에는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건강을 잇는 깊은 지혜가 담겨 있다. 봄마다 다시 돋아나는 달래처럼 우리의 몸도 자연의 흐름에 맞추어 새롭게 깨어난다. 결국 음식이란 그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 그리고 계절을 이어주는 다리인 것이다.
최만순 음식 칼럼니스트
▲ 한국약선요리 창시자 ▲ 한국전통약선연구소장 ▲ 중국약선요리 창시자 팽명천 교수 사사 후 한중일 약선협회장 역임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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