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경남 진주시 정촌면 CU 진주물류센터 앞에서 화물연대 노조원이 집회 중 2.5톤 화물차에 치어 숨진 노조원의 영정을 들고 슬픔에 잠겨 있다. 이날 현장에서는 화물차와 집회 참가자 3명이 충돌해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뉴스1
편의점 배송기사들이 "진짜 사장 나오라"고 외친 지 16일째 되던 날, 현장에서 사람이 죽었다.
420일 오전 10시 32분 경남 진주시 정촌면 CU 진주물류센터 앞. 물류센터 정문에서 흰색 2.5t 화물트럭 한 대가 출차를 시도했다. 대기하고 있던 민주노총 화물연대 조합원 여러 명이 트럭 앞으로 달려들었다. 일부는 차량 측면에 매달렸고, 일부는 차량 정면을 온몸으로 막아섰다. 트럭은 멈추지 않았다. 트럭 앞에 있던 50대 조합원 1명이 넘어지더니 트럭 아래로 깔렸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공개된 현장 영상에는 끔찍한 사고 당시 모습과 함께 사고 직후 비명과 외침이 뒤섞인 채 주변 사람들이 트럭 하부를 확인하려 달려드는 장면이 담겼다. 카메라가 흔들릴 만큼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에 이송된 조합원은 20분 뒤 숨졌다. 함께 차량을 막아섰던 조합원 2명도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직전 모습을 담은 영상을 캡처한 사진. / 인벤
이들은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을 상대로 처우 개선과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지난 5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상태였다. 배송기사들은 BGF리테일과 직접 계약을 맺지 않은 특수고용노동자이지만, 배송 경로와 시간·물량 배정 등을 BGF리테일이 사실상 통제한다며 원청이 교섭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법적 근거로 삼은 것이 지난달 10일 시행된 노란봉투법이다. 하지만 BGF리테일은 "계약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여섯 차례의 교섭 요구 공문에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고, 대신 대체 차량을 투입해 물류를 유지해왔다.
사고 당일 경찰 4개 중대가 현장에 배치된 가운데, 경찰이 물류센터 앞을 막고 있던 조합원 40여 명을 강제 해산시키고 대체 차량 출차를 강행했다. 탑차 30여 대가 순서대로 빠져나가던 중 일부 조합원이 사고 차량에 매달리거나 앞을 가로막으면서 사고가 났다. 경찰은 화물차 기사를 특수상해 혐의로 입건했으며, 사망이 확인되면서 혐의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사고 후에도 현장은 들끓었다. 오후 1시 33분께 화물연대 소속 승합차가 경찰 바리케이드로 돌진해 기동대원 1명이 머리에 타박상을 입었다. 전날인 19일에는 같은 집회 현장에서 흉기를 든 조합원 1명이 체포된 바 있다. 화물연대는 사고 직후 비상지침을 내려 전 조합원 집결을 선언하고 집회를 이어간다는 방침을 밝혔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 41일 만에 원청과의 직접 교섭 요구 과정에서 조합원이 처음으로 목숨을 잃은 사고다. 새 법이 현장에 제대로 안착하기도 전에 벌어진 갈등이 최악의 결과로 치달았다.
'노란봉투법'이란 무엇인가... 이름의 유래부터 핵심까지
이번 사태를 이해하려면 노란봉투법이 무엇인지부터 짚어야 한다.
노란봉투법의 정식 명칭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조·3조의 개정안이다. 법안의 이름은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에서 비롯됐다. 2014년 법원이 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에게 47억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리자,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담아 보내는 캠페인이 전국으로 확산됐다. 노란 봉투는 과거 월급봉투가 노란색이었던 것에서 착안한 것으로, 손배 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평범한 일상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2004년 관련 법안이 처음 국회에 발의된 지 21년 만인 지난해 8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6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달 10일부터 시행됐다. 윤석열 정부 시절 두 차례 본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모두 대통령 거부권으로 무산됐던 법안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공포된 노동법이 됐다.
20일 경남 진주시 정촌면 CU 진주물류센터 앞에서 화물연대 노조원이 집회 중 2.5톤 화물차에 치어 숨진 노조원의 영정을 들고 슬픔에 잠겨 있다. 이날 현장에서는 화물차와 집회 참가자 3명이 충돌해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법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노조법 2조 개정으로, '사용자'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기존 법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만 사용자로 인정했다. 개정 이후에는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까지 사용자 범위에 포함된다. 쉽게 말해 직접 고용계약을 맺지 않은 원청 기업도 하청 노동자의 실질적인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조항이 바로 화물연대가 "BGF리테일이 진짜 사장"이라며 교섭 테이블에 나오라고 요구하는 법적 근거다.
둘째는 노조법 3조 개정으로, 쟁의행위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한 것이다. 파업 참가자 개인에게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던 관행, 이른바 '손배 폭탄'을 방지하는 조항이다. 개정안은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할 경우 노조와 근로자 개개인의 귀책 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책임 범위를 나눠 산정하도록 했다. 노조의 존립을 위협하거나 활동을 방해할 목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단, 불법적인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다.
다단계 하청 구조와 '진짜 사장' 논쟁의 실체
이번 파업의 발단을 추적하면 화물 운송 업계의 구조적 문제가 드러난다.
CU 물류를 담당하는 배송기사들의 법적 신분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즉 특수고용노동자다. 이들의 고용 구조는 'BGF리테일(CU 운영사) → BGF로지스(물류 자회사) → 하청 운송사 → 배송기사'로 이어지는 수직적 다단계 구조다. 기사들은 BGF리테일과 직접 계약을 맺지 않은 채 물류센터별로 개별 운송업체와 계약을 체결한 형태다. 이 때문에 BGF리테일은 "고용 구조상 BGF리테일과 개인 화물기사들 사이에 체결된 계약은 없다"며 교섭 요구를 일관되게 거부해왔다.
반면 화물연대는 BGF리테일이 실질적인 사용자라고 맞선다. 물류 물량 배정, 배송 경로와 시간, 작업 방식 등을 BGF리테일이 사실상 결정한다는 것이다.
배송기사들은 처우가 열악하다고 주장한다. CU 배송기사들의 월 매출은 340만~360만 원 수준이지만, 차량 할부금·유류비·차량 유지비·지입료(하청 운송회사 수수료) 등을 모두 제하면 사실상 적자가 된다는 것이다. 노동 강도도 심각하다고 말한다. 하루 평균 12시간 넘게 일하고, 명절도 없이 운행하면서도 폭설이나 혹한에 제설·방한 장비 하나 지급받지 못한다는 것이 노조 측 주장이다. 아파서 하루 쉬려면 대신 투입할 다른 기사 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구조도 문제로 지적된다.
20일 경남 진주시 정촌면 CU 진주물류센터 앞에서 진입을 시도하는 화물연대 노조원들을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이날 현장에서는 화물차와 집회 참가자 3명이 충돌해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 뉴스1
화물연대는 지난 1월 19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BGF리테일 측에 여섯 차례 교섭 요구 공문을 보냈지만 사측은 한 번도 응답하지 않았다. 노조가 교섭을 촉구하는 과정에서 사측은 오히려 조합원 11명을 상대로 개인당 1000만~2000만 원, 총 2억 원대의 손해배상 청구 예정을 통보했다.
노동법 전문가들과 노동계는 기존 판례를 근거로 BGF리테일이 사용자성을 가진다고 본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이 이미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과의 소송에서 원청을 노조법상 사용자로 판단한 전례가 있고, CU의 계약 구조가 이와 유사하다는 논리다. 반면 BGF리테일은 "3자 계약 구조상 직접 교섭 의무와 권한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대체 차량을 투입해 물류를 유지해왔다.
소상공인 피해는 고스란히, 법의 공백이 낳은 혼란
노동 현장의 충돌이 격화되는 사이, 그 피해는 CU 편의점주들에게 전가됐다.
화물연대는 화성·안성·나주·진주 등 전국 4개 주요 거점 물류센터에서 파업과 봉쇄를 이어가다 지난 17일부터는 충북 진천의 BGF푸드 간편식 공장 출입로까지 막아섰다. 하루 15만 개를 생산하던 김밥·도시락·샌드위치 등 간편식의 생산과 출하가 중단됐고, 당일 생산된 신선식품은 유통기한 문제로 전량 폐기됐다. 18~19일에도 공장 가동이 중단됐으며 수도권 일대를 포함해 하루 3000개에 달하는 점포에 물품 공급이 끊겼다. CU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들은 매출 감소를 토로하고 있다.
업계는 가맹점주와 본사가 입은 피해 규모가 현재까지 수십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일부 매장에는 이미 '화물연대 파업에 따른 결품' 안내문이 붙었다. 삼각김밥·도시락 등 냉장식품은 물론 라면·음료·주류 같은 상온 제품까지 진열 공백이 확산됐다. 점주들은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무릎을 꿇고 파업 중단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CU가맹점주협의회는 "화물 운송 구조와 노사 협상 과정에 아무런 결정권이 없는 점주들이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떠안고 있다"고 밝혔다.
노동계 반발·사측 강경…사망 후에도 대화 없다
사망 사고 이후 노동계와 사측은 더욱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사고 직후 성명을 내고 "원청 CU BGF는 조합원들이 생계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며 파업을 방치하고 대체 수송을 강행했다"며 이번 사망을 교섭을 거부한 원청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규탄했다. 민주노총 전남지역본부도 성명을 내고 BGF리테일·BGF로지스의 즉각적인 교섭 참여, 정부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파업 현장 공권력 투입 및 대체 인력 운용 중단 등을 촉구했다. 화물연대는 이번 사망을 계기로 투쟁 거점을 본사 등으로 확대하는 강도 높은 대응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반면 BGF리테일 측은 "파업 여파로 소상공인인 가맹점주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며 "공급을 재개하기 위해 경찰에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는 등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BGF로지스는 이미 파업 초기부터 조합원 11명에게 총 2억 원대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공문을 발송한 바 있다. 노란봉투법이 쟁의행위에 대한 과도한 손배 청구를 제한하는 법임에도 법 시행 이후에도 사측의 손배 청구 방침은 바뀌지 않았다.
20일 경남 진주시 정촌면 CU 진주물류센터 앞에서 진입을 시도하는 화물연대 노조원들을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 뉴스1
'실질적 지배력' 기준 모호…제도 공백이 비극을 불렀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노란봉투법 시행 과정에서 드러난 제도적 공백의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법이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이 있는 자를 사용자로 규정했지만, 어느 수준의 지배력이 교섭 의무를 발생시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실질적 지배력', '구조적 통제' 등의 개념이 모호하다 보니 현장에서는 노조와 사측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해석만을 고집하며 대화를 거부하는 구조가 형성됐다.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는 6개월의 준비 기간 동안 현장지원 태스크포스(TF)를 통해 지침과 매뉴얼을 정교하게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 시행 41일 만에 사망 사고가 발생했고, 현장에는 아직 뚜렷한 교섭 기준이 자리 잡지 못한 상태다. 노란봉투법이 하청·특수고용 노동자의 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진 법이라면, 이제 남은 과제는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를 가려낼 명확한 기준을 현장에 적용 가능한 형태로 마련하는 것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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