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가짜 보상'에 빠지는 구조 해부…신간 '중독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검은머리물떼새는 자신의 둥지에 있는 알 중 가장 큰 것에 본능적으로 끌린다. 연구자들이 석고로 만든 가짜 알을 넣어놓으면 이 새들은 완전히 넋을 잃고 자기가 낳은 진짜 알 대신 과장된 크기로 만들어진 가짜 알을 골라 품는다.
이는 노벨상 수상자인 네덜란드 과학자 니콜라스 틴베르헌이 '초자극'이라고 명명한 사례에 해당한다. '초자극'은 동물이 본능적으로 끌리는 대상을 인위적으로 과장한 버전의 자극을 뜻한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선택지보다 더 크거나, 더 밝거나, 더 강력한 자극이다.
하지만 이러한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이 과연 동물뿐일까.
덴마크의 과학자 겸 작가 니클라스 브렌보르는 신간 '중독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초가공 식품, 데이팅 앱과 포르노, 숏폼과 소셜미디어 등 우리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중독 현상을 '초자극'이라는 틀로 설명한다.
특히 저자는 오늘날 인간 사회에서 이 '초자극'은 식품이든, 콘텐츠 소비든, 소셜미디어 사용이든 사람들이 그것을 최대한 많이, 지속적으로 찾도록 현대 산업이 철저히 의도적으로 설계한 데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과자와 사탕 등을 제조하는 대규모 식품 제조업체들은 판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 세계에 연구 단지를 운영하고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어떻게 먹는 사람의 식욕을 더 자극하고 더 맛있게 느껴질 수 있는지 연구한다.
인간이 좋아하는 지방, 설탕, 소금의 완벽한 균형과 각종 첨가물로 맛뿐 아니라 식감, 냄새, 모양 등 모든 것을 최적화하고 다양한 선택지로 매력을 극대화한다.
현대의 인터넷 기반 포르노는 시청자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도록 갖가지 기법을 총동원한다.
넷플릭스를 비롯해 주요 온라인 웹사이트에서는 재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사용자들의 반응을 추적하며 어떤 방법이 제일 잘 작동하는지 시험한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는 '좋아요', 무한 스크롤 기능, 기계학습 알고리즘 등을 통해 사용자의 관심과 시간을 잡아두려 한다.
문제는 이처럼 강한 보상을 주는 물질과 경험은 인간의 타고난 조절 메커니즘을 무력화시켜 과도한 소비를 이끌어내고 그에 따른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뇌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러한 초자극에도 둔감해지기 시작하고 점점 더 높은 자극을 갈망하게 된다.
"엄청나게 자극적인 틱톡 피드, 컴퓨터 게임, 넷플릭스 시리즈에 한 번 익숙해지고 나면, 뇌는 이런 활동들을 기준 삼아 다른 활동에 따라올 보상을 평가한다. 그렇게 되면 인공적으로 설계된 초자극만큼 즉각적인 보상을 주지 못하는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더 큰 의지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자연식품은 과학적으로 최적화된 식품 초자극과 경쟁해야 하고, 현실 세계의 평범한 파트너 혹은 친구들은 끊임없는 재미와 만족, 사회적 인정의 감각까지 주는 디지털 세계의 초자극적 상대와 경쟁해야 한다. 저자는 이런 싸움은 결국 초자극의 승리로 끝날 때가 많다고 강조한다.
핵심은 이런 자극을 끊거나 줄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성과 의지력만으로는 이러한 욕구를 억누르기 힘들 때가 많고, 이는 부정적인 효과를 연쇄적으로 일으킬 수 있다.
전 세계적인 난제인 비만과 그에 따른 질병, 현실 세계에서 이성을 만나는 일에 점점 서툴러지는 사람들, 진짜 친구·가족과 보내는 시간과 상호작용이 줄어드는 추세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책은 동물행동학, 진화생물학, 뇌과학 등을 오가며 인간이 왜 이러한 '가짜 보상'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지 풀어내고 일상의 여러 사례를 통해 중독의 구조를 파헤친다.
위즈덤하우스. 김성훈 옮김. 364쪽.
k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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