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221개의 무너진 우주'…세계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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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분투칼럼] '221개의 무너진 우주'…세계의 이름을 다시 부르는 이유

연합뉴스 2026-04-21 07:00: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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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반크 단장

박기태 반크 단장 박기태 반크 단장

[박기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타인의 비극을 숫자로 받아들인다.

보고서 한 줄, 통계표 한 칸, 뉴스 자막 한 문장으로 한 사람의 삶과 고통이 정리되곤 한다. 그러나 어떤 숫자들은 결코 숫자로만 읽어서는 안 된다. 최근 우리 사회가 마주한 학생 자살 통계가 바로 그렇다. 초·중·고교생 자살 사망자는 2015년 93명에서 2024년 221명으로 늘어났다. 학생 10만명당 자살률 역시 같은 기간 각각 1.53명에서 4.3명으로 높아졌다. 2023년 214명, 2024년 221명. 이 수치는 단순한 연도별 증감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교육·돌봄·생명안전 체계 전반을 다시 점검하라는 무거운 경고다.

[연합뉴스 그래픽] 초·중·고등학생 자살률 추이 [연합뉴스 그래픽] 초·중·고등학생 자살률 추이

지난해 8월 31일 통계청의 '분기별 고의적 자해 사망자 수'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자살로 숨진 19세 이하 청소년은 1분기(1∼3월)에는 79명, 2분기(4∼6월)에는 101명으로 집계됐다.
또한 전국 시도교육청이 파악한 초·중·고등학생의 자살률은 꾸준히 높아지는 양상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www.129.go.kr/etc/madlan)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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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고는 한국 사회 내부의 일시적 현상으로만 보기 어려운 구조적 신호이기 때문에 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비교에서도 한국의 자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전체 자살률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며, 청년층 자살률 역시 OECD에서 가장 높은 그룹에 속한다. 이것은 몇몇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직면해야 할 구조적 과제임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숫자의 무게를 충분히 느끼는가

221명은 통계표의 한 줄이 아니다. 그것은 221개의 이름이고, 221개의 얼굴이며, 221개의 꿈이었다.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었으며, 친구이고 제자였다. 누군가는 예술가를, 누군가는 운동선수를 꿈꿨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자신의 꿈을 미처 찾기도 전에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을지 모른다. 221명이라는 숫자는 곧 221개의 우주가 무너졌다는 뜻이다. 지금도 전국의 학교에는 그 아이들이 남긴 빈자리가 있을 것이다. 그 빈자리는 단지 책상 하나의 공백이 아니다. 우리 공동체가 더 깊이 돌아봐야 할 책임의 흔적이다.

◇죽음으로 드러난 숫자가 위기의 전부가 아니다

자살 시도로 응급실에 실려 온 청소년들. 반복적으로 위험 신호를 보내는 학생들. 적절한 상담과 치료로 연결되지 못한 채 정서적 위기를 겪는 아이들이 지금도 곳곳에 있다. 아이들은 마지막 순간 갑자기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그 전에 여러 형태의 구조 신호를 보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 신호를 제때 알아차리고 붙잡아 줄 시스템과 문화가 충분히 작동하고 있는가에 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성취와 경쟁을 강조해왔지만,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도움을 청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언어와 안전망을 충분히 제공해왔는지는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연합뉴스 그래픽] 정신과 방문 아동 현황 [연합뉴스 그래픽] 정신과 방문 아동 현황

(서울=연합뉴스) 김민지 기자 = 지난해 5월 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11월 우울증 등 정신건강의학과 관련 질환으로 의원을 찾은 18세 미만 환자는 27만625명으로 2020년(13만3천235명)과 비교했을 때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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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데서 가장 기본적인 책임을 진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개인이나 특정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직면해야 할 공적 과제다. 정부와 학교, 지역사회와 가정, 언론과 시민사회 모두가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안타깝다'는 말에 머물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구조를 바꾸고 예방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생명 앞에서 감수성과 책임은 건강한 공동체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해볼 필요

만약 국제사회가 대한민국의 이 아픈 현실만을 떼어내 한국 전체를 하나의 부정적 이미지로 규정한다면 어떻겠는가. 예컨대 청소년 자살이라는 비극적 지표 하나만으로 한국 사회 전체를 '자살 한국'(Suicide Korea)으로 호명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도, 경제 성장도, 문화적 성취도, 시민의 연대도 지워진 채 오직 가장 고통스러운 단면 하나만으로 한국 사회 전체가 설명된다면 우리는 깊은 부당함을 느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일부 현실일 수는 있어도 대한민국 전체의 본질을 다 담아내는 표현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가장 아픈 단면을 그 사회 전체의 정체성처럼 부르는 일은 이해를 넓히기보다 편견을 강화한다. 낙인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인식의 틀을 고정하는 힘이 된다.

◇같은 기준으로 우리 자신도 돌아봐야

우리가 우리를 향한 낙인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다른 나라와 다른 대륙을 향해서는 얼마나 무심한 언어를 사용해왔는지 성찰해야 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반복해온 표현들 가운데는 누군가의 존엄을 훼손하거나 한 지역 전체를 단순화하는 효과를 낳는 말이 적지 않다. 한국 사회가 지금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가 바로 '아프리카'라는 이름을 둘러싼 편견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프리카 인종' 편향 서술 수정 전(위쪽)과 수정 후(아래쪽) 네이버 지식백과 '아프리카 인종' 편향 서술 수정 전(위쪽)과 수정 후(아래쪽)

[반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아프리카는 하나의 나라가 아니다. 54개의 독립된 주권 국가가 존재하는 거대한 대륙이며, 15억명이 넘는 인구가 살아가는 다층적 세계다. 수많은 언어와 민족, 예술과 철학, 전통과 산업이 공존하는 인류 문명의 중요한 터전이기도 하다. 인류의 발상지로서 깊은 역사성을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젊은 인구 구조와 빠르게 성장하는 디지털 산업, 역동적인 창업 생태계를 바탕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는 대륙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자주 아프리카를 빈곤, 질병, 분쟁, 구호와 원조의 대상으로만 좁게 바라본다. 대륙의 복합성과 생동감, 주체적 역사와 역량은 충분히 보지 못한 채 제한된 이미지만 반복적으로 소비해온 것이다.

◇언어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경향

대표적인 사례가 '아프리카돼지열병'이라는 명칭이다. 많은 이들에게는 익숙한 용어일 수 있다. 물론 행정적·국제적·관행적 이유로 사용돼온 명칭일 수도 있다. 그러나 특정 질병명에 대륙 전체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결합할 때, 그것이 어떤 인식 효과를 낳는지 우리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표현이 언제나 충분히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질병에 대륙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연결될 경우, 아프리카 전체가 마치 부정적 이미지로 축소되어 인식될 위험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공언어는 정확성뿐 아니라 존중과 감수성의 기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특히 공공기관이 사용하는 언어일수록 더욱 신중해야 한다.

반크, '아프리카돼지열병' 용어 바로잡기 캠페인 반크, '아프리카돼지열병' 용어 바로잡기 캠페인

[반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필자는 민간 외교 단체 반크에서 한국의 청년들과 함께 대한민국이 세계 모든 이들과 더불어 꿈과 우정을 나누는 매력적인 나라가 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아프리카와 협력 확대, 공적개발원조, 미래 파트너십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해왔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의 공공문서와 정책 홍보, 보도자료와 안내문 속 언어 또한 그에 걸맞은 감수성을 갖추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협력을 말하면서도 상대를 단순화하는 표현을 비판 없이 반복한다면 그 메시지의 진정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진정한 파트너십은 예산 규모나 사업 개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상대를 어떻게 부르고, 어떻게 이해하며, 어떻게 소개하느냐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름을 존중하는 일은 외교의 가장 작고도 중요한 출발점이다.

◇세계를 더 정확하고 균형 있게 연결하는 적극적 역할

그 상징적 계기 가운데 하나가 최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월드 팩트북 서비스 종료가 던진 질문이다. 오랫동안 각국의 역사·인구·정치·경제·지리·안보 정보를 집약해 제공해온 대표적 국가정보 플랫폼의 종료는 단순한 웹서비스 중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누가 세계를 설명해왔는가. 어떤 시선과 기준이 국제사회의 인식 체계 형성에 영향을 미쳐왔는가. 우리는 이 질문 앞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언어와 지식의 질서를 다시 성찰해야 한다.

세계의 많은 국가와 대륙은 오랫동안 강대국 중심의 시선과 서술 체계 속에서 소개해 왔다. 특히 아프리카와 아시아, 중남미의 수많은 나라들은 자신들의 복합적인 역사와 문화, 시민사회와 미래 역량보다 빈곤, 분쟁, 자원, 안보와 같은 제한된 프레임 안에서 먼저 설명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물론 그 안에는 실제 현실의 일부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일부가 전체를 대표하는 이미지로 굳어질 때 발생한다. 누가 어떤 항목으로 한 나라를 설명하느냐는 단순한 편집의 문제가 아니다. 정보는 인식의 틀을 만들고, 그 인식의 틀은 국제사회 속 관계와 존중의 수준을 결정짓는다.

◇바로 여기에서 대한민국의 새로운 역할이 시작

한국은 식민 지배의 고통과 전쟁의 폐허를 겪었고, 이후 경제 성장과 민주화, 시민사회의 역동성을 통해 세계적 경제·문화 강국으로 성장한 나라다. 우리는 타인의 아픔을 추상적으로만 이해하는 나라가 아니다. 역사로 겪었고, 사회적 연대로 회복해왔다. 동시에 세계적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와 시민 참여 역량을 갖춘 나라이기도 하다.

이러한 대한민국이 세계를 더 공정하고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는 지식 연대의 역할에 나선다면, 그것은 단순한 외교를 넘어 우리 시대에 필요한 공공적 기여가 될 수 있다. 필자는 대한민국 정부와 시민사회, 청년세대가 함께 '글로벌 우분투 아카이브'(Global Ubuntu Archive)와 같은 새로운 디지털 지식 연대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특히 아프리카 54개국의 역사와 문화, 지리와 인물, 청년과 산업, 민주주의 경험, 시민사회와 미래 비전을 현지의 학자와 청년, 언론인과 시민사회가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다국어 플랫폼에 담아내는 작업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사이트 하나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세계를 더 균형 있게 기록하고, 단순화된 이미지를 넘어 당사자의 목소리와 존엄을 반영하는 일이다.

인프라를 지원하고 식량 공급을 돕는 것만이 공적개발원조의 전부는 아니다. 왜곡되거나 축소된 인식을 바로잡는 일 역시 21세기형 공공외교의 중요한 과제다. 각국의 고유한 역사와 정체성을 세계와 연결해주는 일 또한 지식 공적개발원조(ODA)의 중요한 형태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아카이브는 현지의 학자와 청년, 시민사회가 직접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다국어로 기록하고, 이를 바탕으로 편견 없는 데이터를 전 세계 AI 생태계에 공급하는 역할까지 지향해야 한다. 기술적 패권주의를 넘어 세계 각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존중하는 '소버린 AI' 시대의 마중물이 되는 것이다.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 각국의 고유한 역사와 정체성을 세계와 연결해주는 'AI 외교관'의 역할을 우리가 앞장서 수행하자.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휴머니즘이다.

◇우분투는 말한다 "네가 있으므로 내가 있다"

이 철학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내가 존엄하기 위해서는 너 역시 존엄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 이름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너의 이름도 온전히 불려야 한다는 뜻이다. 교실의 221개 빈자리 앞에서 무감각해지지 않는 일과, 아프리카를 비롯한 다른 대륙과 공동체에 덧씌워진 단순화된 언어를 돌아보는 일, 그리고 세계를 더 정확하고 더 품격 있게 기록하는 디지털 연대에 나서는 일은 서로 다른 과제가 아니다. 모두가 인간과 공동체를 숫자와 편견의 표지로 환원하지 않으려는 하나의 노력이라는 점에서 연결되어 있다.

◇대한민국 더 깊은 성찰과 실천으로 나아가야

우리는 생명을 숫자로만 소비하는 사회여서도 안 되고, 타인을 편견의 언어로 부르는 나라여서도 안 된다. 또한 강대국이 만들어온 정보 질서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머물러서도 안된다. 우리는 아이들의 생명을 더 세심하게 지키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타인의 존엄을 더 정중하게 대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며, 세계를 더 공정하고 더 입체적으로 기록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221개의 무너진 우주 앞에서 멈추어 서는 일.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의 이름을 더 존엄하게 다시 부르는 일. 그리고 새로운 지식 연대의 길을 여는 일. 바로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이 새롭게 고민해야 할 시대적 책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박기태 단장

현 반크 단장, 경기도 인공지능위원회 위원, 직지 홍보대사 활동 중, 재외동포청 정책자문위원, 재외동포정책실무위원, 외교부·대검찰청 정책자문위원, 청와대 청년위원회 위원, 국가브랜드위원회 자문위원, KOICA 홍보전문위원, 국제교류재단 공공외교홍보대사, 서울시 홍보대사 등 역임. 저서 'AI 외교관: 세계를 이끄는 반크의 외교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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