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천 개의 파랑', 연극·웹툰·영화로…"만화처럼 상상하며 이야기 구상"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김경윤 특파원 = 경주마가 빠른 속도로 주로를 질주한다. 그 위에 올라탄 것은 사람이 아니라 자그마한 몸집의 휴머노이드다.
말과 하나가 된 듯 호흡을 맞추며 달려 나가던 중 휴머노이드 기수가 낙마한다. 그는 자신의 끝을 예감하고, 푸른 하늘을 눈에 담으며 삶을 반추한다.
천선란 작가의 SF소설 '천 개의 파랑'은 이처럼 선명한 이미지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초록색으로 칠한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윤기가 반질반질한 검은색 털을 가진 경주마 투데이, 쨍한 파란색의 하늘 등 소설 속 요소들이 또렷하게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15∼22일(현지시간) LA한국문화원과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한 '한국문학: 사랑과 미래의 언어' 행사차 미국을 찾은 천 작가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진짜 좋아했고 원래 만화가가 꿈이었다"며 "모든 장면을 먼저 컷 만화처럼 생각하는 습관이 있고, 이를 글로 묘사하게 되더라"고 설명했다.
2035년을 배경으로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와 안락사를 앞둔 경주마 투데이의 우정을 그린 이 SF소설은 다른 매체로도 무한히 변주되고 있다.
이미 2024년 국립극단 연극과 서울예술단 가무극으로 재탄생했고, 지난해 워너 브라더스 픽처스와 영화화 계약을 했다. 올해는 밀리의 서재 오리지널 웹툰화 소식을 알렸다.
할리우드 영화로 재탄생한다면 가장 보고 싶은 장면을 묻는 말에는 이 소설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기수 콜리가 투데이를 타고 주로를 달리는 모습"이라고 답했다.
'천 개의 파랑'은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마이너 장르로 꼽히는 SF장르에다가 주인공부터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천 작가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다루는 것은 다분히 취향 때문" 이라며 "어렸을 때부터 '디지몬 어드벤처', '트랜스포머'처럼 인간이 아닌 주인공 이야기를 좋아했고, 그게 글을 쓰는 데 반영됐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 외 캐릭터가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재밌다"며 "우리를 객관적으로 보게 만들기도 하고, 인간에 대해 재정의를 내리게 된다"고 덧붙였다.
소설 속에는 유독 달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경주마 투데이는 연골이 닳아 고통스러워할 때까지 뛰고, 고등학생 연재는 계주 마지막 주자로 달리다가 경로를 이탈해 학교 밖으로 뛰어 나간다.
이는 모두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다. 경마장에 들어찬 관객들은 말들이 더 빨리 달리길 바라고, 운동장에서는 선생님과 학생들이 계주 주자를 향해 더 뛰라고 다그친다.
여기서 휴머노이드 콜리는 '왜 달려야 할까'라는 의문을 갖는다. 작가는 우리 모두 이렇게까지 달릴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인간은 우주라는 개념 속에서 시간을 만든 존재인데,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낸 시간 속에 끼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멈추는 법조차 모르게 된거죠. 그렇게 달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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