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베어스의 오른손 구원 투수 김택연(21)이 마운드에 오르면, 서울 잠실야구장 관중석이 술렁인다. 세이브 상황 특유의 긴장감 때문만은 아니다. 마운드 위에서는 비장한 표정의 투수가 공을 쥐고 있었지만, 관중석에는 어딘가 어설프고 귀여운 곰 캐릭터가 가득했다. 팬들은 '망그러진 곰', 이른바 망곰이가 그려진 유니폼과 응원 도구를 흔들며 김택연을 외쳤다. 투수의 묵직한 존재감과 캐릭터의 엉뚱한 귀여움이 묘하게 어우러진 장면이었다.
최근 KBO리그는 단순히 승패를 겨루는 스포츠 무대를 넘어 하나의 '캐릭터 각축장'이 되고 있다. 과거 야구장 굿즈(Goods)가 구단 로고나 단순한 디자인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팬들이 "가지고 싶다"고 느끼는 캐릭터 기반의 굿즈가 시장을 이끈다. 귀여운 캐릭터가 입은 유니폼, 선수와 연결된 스토리를 가진 굿즈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팬덤의 상징이 된다.
두산과 '망그러진 곰'의 협업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컬래버레이션은 사실 구단의 전략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팬들의 상상력에서 출발했다. 김택연의 앳된 얼굴과 강단 있는 투구 모습이 망곰이와 닮았다며 팬들이 합성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고, 경기장에는 망곰이 인형과 머리띠가 등장했다. 팬들의 장난 같은 아이디어는 어느새 문화가 되었고, 결국 구단 공식 협업으로 이어졌다. 팬이 만든 이야기 위에 구단이 올라탄 셈이다.
이 과정에서 캐릭터는 '선수의 서사'를 확장하는 장치가 됐다. 김택연이 인터뷰에서 "팬들이 선물한 망곰이 인형이 침대 절반을 차지한다"고 말한 것처럼, 캐릭터는 선수와 팬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는 매개체가 된다. 컬래버 유니폼과 굿즈는 출시와 동시에 매진되는 '오픈런 아이템'이 되었다. 두산 팬 김동현(26)씨는 "김택연 선수가 떠오르는 망곰이와 3년째 컬래버를 하게 되어 정말 행복하지만 초반에는 유니폼을 구하기도 힘들었다"고 말했다.
구단들이 캐릭터 협업에 적극적인 이유는 분명하다. 새로운 팬층의 유입 때문이다. 야구는 규칙이 복잡하고 경기 시간이 길어 진입 장벽이 높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캐릭터의 귀여움은 '야구 입덕' 장벽을 낮춘다. 캐릭터 상품을 통해 야구장에 처음 발걸음을 들이는 팬들이 늘고, 자연스럽게 스포츠 자체에도 관심이 이어진다. 특히 MZ(밀레니얼+젠지)세대와 여성 팬층이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소비와 응원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한정판 굿즈가 만들어내는 팬덤 문화도 협업 계기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지금 아니면 못 산다"는 심리는 SNS 인증 문화와 결합하면서 강력한 파급력을 만든다. 팬들은 굿즈를 구매하고, 사진을 찍어 공유하며, 그 과정을 하나의 팬 활동으로 즐긴다. 굿즈 소비는 더 이상 단순한 구매가 아니라 팬덤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이 됐다.
결국 캐릭터 컬래버는 야구장의 풍경 자체를 바꾸고 있다. 그라운드에서는 투수와 타자가 승부를 벌이고, 관중석에서는 캐릭터와 팬덤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선수의 서사, 팬의 상상력, 구단의 마케팅이 맞물리면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는 거다.
야구는 여전히 기록과 승패의 스포츠다. 하지만 그 주변을 채우는 이야기와 상징 역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귀여운 캐릭터가 그라운드의 긴장감과 공존하는 풍경. 그것이 지금 KBO리그가 만들어내고 있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진화다.
일간스포츠 서포터즈 1기 우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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