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폐인의 날⑤] 자신만의 감각으로 세상을 밝힌 오티즘 작가 42인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세계자폐인의 날⑤] 자신만의 감각으로 세상을 밝힌 오티즘 작가 42인

투데이신문 2026-04-20 20:15:43 신고

3줄요약
오티즘 작가 특별전시회 <세상을 밝히는 명작전> 전시회장 풍경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재현·송수원 인턴기자】‘명작(名作)’이란 무엇일까. 흔히 정교한 묘사나 화법의 공식 등을 떠올리지만 때로는 자신의 감각에 오롯이 집중한 그림이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여기 그 정의를 다시 쓰게 만드는 전시가 있다. 작가 본연의 시각으로 빚어낸 작품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은 채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바로 지난 2일 유엔(UN)이 지정한 ‘세계 자폐인의 날’을 맞아 열린 오티즘 작가 특별전시회 ‘세상을 밝히는 명작전’이다.

2023년 시작돼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이 전시는 지난 4월 2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됐으며, 매년 오티즘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이고 판매하는 자리로 이어지고 있다.

오티즘(Autism)은 그리스어 ‘autos’, 즉 ‘자기 자신’에서 온 말이다. 의학적으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로 불리는데, 스펙트럼이라는 명칭처럼 그 증상과 모습은 사람마다 넓고 다양하게 나타난다. 김은정 기획자는 개인적 관점에서 오티즘을 가진 이들을 “자신의 감각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감각의 오류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를 억지로 교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현한다는 의미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김은정 '세상을 밝히는 명작전' 기획자 ⓒ투데이신문
오티즘 작가 특별전시회 <세상을 밝히는 명작전> 아트디렉터 김은정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미술분야 운영위원이 투데이신문과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작가 선정의 척도는 자율성과 몰입도다. 화실에서 익힌 공식이나 반복 훈련으로 완성된 그림이 아니라, 작가 스스로가 즐기며 독립적으로 그려낸 작품이 이 전시의 벽에 걸린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은정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미술분야 운영위원은 “작가 개인의 고유한 감각과 표현력을 가장 중시한다”며 “이 전시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은 소위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 자기 감각에 충실한 창작의 과정과 그 안에 담긴 진정성”이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소재에 따라 세 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자연 풍경을 담은 1섹션을 시작으로, 동물과 식물을 세밀하게 포착한 2섹션을 지나, 작가의 내면을 투영한 추상화와 동양화가 모인 3섹션으로 이어진다. 주제별로 짜임새 있게 구성된 흐름 덕분에 관람객들은 작품마다 각기 다른 감각의 결을 비교하며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곤충들의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되어있는 여름산책 작품 ⓒ투데이신문
평소에 그냥 지나쳤던 곤충들의 모습이 세밀하게 묘사돼 있는 여름산책 작품 ⓒ투데이신문

전시장에서 만난 작품들은 관찰의 밀도가 남달랐다. 산책길을 묘사한 그림 속에는 평소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작은 곤충들이 실제보다 크고 세밀하게 형상화돼 있었다. 백로의 다리는 투박할 정도로 굵직하고 거칠었으며, 청보리밭은 회색빛의 과감한 선들로 역동적으로 펼쳐졌다. 작가들이 고유의 시선으로 멈춰 서서 바라본 세계가 그 작품 앞에서 다시 멈춰 선 관람객의 시선과 조우하는 순간이었다.

작품 곁에 놓인 ‘드로잉북’은 이번 전시만의 특별한 기획이었다. 그 안에는 완성된 그림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던 작가의 치열한 창작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로봇이 빼곡히 그려진 한 작품의 드로잉북에는 각 로봇의 세밀한 특성과 정보가 빼곡히 기록돼 관람객의 감탄을 자아냈다. 드로잉북을 살핀 뒤 다시 마주한 작품은 이전보다 훨씬 풍성한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관람객의 발걸음을 오래 붙든 두 작가가 있다. 김 운영위원으로부터 이다래, 김범중 작가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다래 작가가 자신의 작품 ‘봉황 공작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 운영위원은 이다래 작가에 대해 “정적인 편이지만 마음이 매우 깨끗하고 순수한 작가”라며 “언어적 표현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맑은 마음이 색채와 화풍에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소개했다. 발달장애·오티즘 미술계의 ‘1세대’로 꼽히는 이다래 작가는 백석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했으며, 자신만의 작업에 매우 충실하다는 평을 받는다. 다양한 색채를 꼼꼼하게 구사하며 동물과 자연을 다루면서도 드로잉을 통해 대상의 또 다른 면을 함께 표현한다. 이번 출품작 ‘봉황 공작도’에서도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형형색색의 아크릴로 채워진 이 작품은 전통 회화인 봉황도와 공작도를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자연과 동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오티즘을 가진 이들에게 타인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다. 좁은 언어의 문턱을 넘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이 작가의 시선이 향한 곳은 자연과 동물이었다. 오티즘 특유의 감각이 화면 곳곳에 스며든 그의 작품은, 오로지 그림으로만 자신을 말하고 싶어 하는 자주적인 세계를 형성한다.

김범중 작가가 자신의 작품 ‘그해 겨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범중 작가가 자신의 작품 ‘그해 겨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범중 작가는 언어적 발화가 거의 없는 대신 ‘공감각’이 두드러진다. 그는 경험과 감정을 특정 색으로 치환해 기억한다. 즐거운 감정은 주황색으로, 누군가의 분노는 고동색으로 느끼는 식이다. 김 운영위원은 “한 곳의 감각이 결핍되면 다른 감각의 비약적인 발달을 불러온 사례”라며 “언어 대신 공감각이 특별하게 뛰어난 작가”라고 그를 소개했다.

김 작가의 작업은 주로 여러 조각의 캔버스를 이어 붙이는 콜라주 방식이다. 하나의 재료나 기법에 갇히지 않고 그날의 감각에 따라 방식을 달리하기 때문에 조각마다 질감과 터치가 제각각이다.

이번 전시 출품작 ‘그해 겨울’의 화면 바탕에는 ‘김범중’이라는 작가의 이름이 무수히 새겨져 있다. 이름은 그가 쓸 수 있는 유일한 글자이기도 하다. 김 운영위원은 이를 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나는 여기 존재하며 활동하고 있다는 강력한 존재감의 발현”이라고 설명했다.

작품 설명에 적힌 ‘이름에 발자국을 얹었다’는 표현처럼, 그는 언어 대신 이름을 겹겹이 쌓아 올리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지난해까지 이름 없이 조각들을 연결하던 방식에서 한 단계 나아가 바탕에 이름을 새김으로써 작가로서의 세계를 더욱 확장했다. 일상에서는 조력자가 필요하지만, 캔버스 앞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완고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그는 ‘천생 작가’로 불린다.

전시 마지막에 관람객 후기와 오티즘 관련 책을 만나볼 수 있다. ⓒ투데이신문
전시 마지막에 관람객 후기와 오티즘 관련 책을 만나볼 수 있다. ⓒ투데이신문

오티즘 작가들은 원근법이나 보색 대비 같은 교육적 공식을 먼저 익히기보다 자기가 느끼는 대로 화면에 쌓아 올리며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가는 방식을 취한다. 김 운영위원은 “그들의 정직한 감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그들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의 끝자락에는 오티즘과 관련된 다양한 도서와 관람객이 직접 방명록을 남겨 벽에 걸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마련됐다.

그곳에는 “마음의 모양이 비슷한 경험은 누구나 있기에 깊은 공감이 갔다”, “작가님들이 계속 자유로움을 잃지 않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작품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등 관람객들의 진솔하고 따뜻한 후기가 빼곡히 걸려 있었다.

각자의 고유한 감각으로 빚어낸 42개의 세상은 전시장 안에서 저마다의 온도로 빛나고 있었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다음 내용이 궁금하다면?
광고 보고 계속 읽기
원치 않을 경우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