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이란 해상봉쇄의 일환으로 화물선을 나포하자 이란이 보복을 다짐했다. 양국 휴전 협상이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었다.
미 중부사령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미군이 19일(이하 현지시간) 이란 해상 봉쇄 일환으로 호르무즈 해협에 위치한 이란 항구 반다르아바스로 향하던 이란 국적 화물선 투스카호에 발포했다고 밝혔다. 중부사령부는 투스카호에 미군 봉쇄를 위반하고 있다고 수차례 경고를 발령했지만 6시간 동안 따르지 않아 미 구축함 스프루언스가 기관실 대피 명령 뒤 5인치(127밀리미터) MK45 함포를 여러 발 쏴 투스카호 추진 장치를 무력화했다고 설명했다.
또 이후 31해병원정대 소속 미 해병대원들이 해당 선박에 승선했고 투스카호가 미군에 억류 중이라고 했다. 중부사령부는 미군이 신중하고 전문적이며 비례적 방식으로 행동했고 이란 해상 봉쇄 뒤 지금까지 상선 25척에 회항 또는 이란 항구로의 복귀를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오늘 길이 약 900피트(274미터)에 거의 항공모함만큼 무거운 투스카라는 이름의 이란 화물선이 우리 해상 봉쇄를 뚫고 지나가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며 "미 해군 유도미사일 구축함 스프루언스가 오만만에서 투스카를 가로막고 정지 경고를 보냈지만 이란 승조원들이 듣지 않아 우리 해군 함정이 기관실에 구멍을 내 그들의 항해를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미 해병대가 해당 선박을 억류하고 있다"며 투스카호는 과거 불법 행위 이력으로 미 재무부 제재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란이 곧바로 보복을 천명하며 22일 미·이란 휴전 종료를 앞두고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휴전 만료 전 협상 재개 전망이 흐려지고 기존 휴전 기간도 채우지 못한 채 전투가 재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대두된다.
이란은 미국의 해상 봉쇄가 휴전 협정 위반이라는 입장이다. 에스마일 바가에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19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의 이란 항구와 해안선에 대한 소위 '봉쇄'는 파키스탄이 중재한 휴전 협정 위반일 뿐 아니라 불법적이고 범죄적 행위"라며 "이는 유엔 헌장 2조4항(타국에 무력행사 금지)을 위반하고 유엔총회 결의안 3314호(1974년 채택) 3조c항에 따른 침략 행위를 구성한다. 해당 결의안은 국가의 항구나 해안 봉쇄를 그러한 행위에 명시적으로 포함한다"고 비판했다. 또 해상봉쇄는 "이란 국민에 대한 고의적인 집단적 처벌을 가하는 것으로, 전쟁 범죄 및 반도적 범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란 국영 프레스TV에 따르면 에브라힘 졸파가리 이란 합동군사령부 카탐 알안비야 대변인은 19일 미국의 자국 화물선 나포를 "휴전 협정 위반 및 해적 행위"로 규정하고 "이란군이 곧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의 종전 협상 참여 여부는 불분명하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을 보면 바가에이 대변인은 20일 주간 기자회견에서 아직 2차 협상 참석 여부 관련해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통신은 이란 협상팀이 트럼프 대통령의 해상봉쇄가 계속되는 한 협상은 없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표단이 20일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할 거라고 밝혔고 파키스탄은 회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파키스탄 보안 소식통 2명에 따르면 미국 대표단 도착에 대비해 보안 장비와 차량을 실은 미 C-17 대형 수송기가 19일 오후 한 기지에 착륙했다. 통신에 따르면 이슬라마바드 시 당국은 시내를 통과하는 대중교통과 대형 화물 차량 통행을 중단시켰고 1차 회담이 열렸던 세레나 호텔 인근엔 철조망이 설치됐다. 호텔 쪽은 모든 투숙객에 퇴실을 요청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미 ABC 방송에 이란과의 평화 합의가 "좋은 방법으로든 어려운 방법으로든 일어날 것"이라고 여전히 자신감을 표출했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 외교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는 중이다. 이란 국영 IRNA 통신을 보면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19일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와의 통화에서 미국의 이란 해상봉쇄를 "도발적이고 불법적 행위"라고 규정하고 "그러한 행위와 미 당국자들의 이란에 대한 위협적 수사는 미국의 진정성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고 미국이 과거 행태를 반복해 외교를 배신하려 한다는 점을 드러낸다"고 비판했다. 미국이 트럼프 2기 들어 핵협상 중 이란을 두 차례 군사 공격한 것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란과 미국 관계를 둘러싼 불신과 불확실성이 너무 짙어서 트럼프 대통령이 22일 휴전 만료 뒤 이란에 대한 추가 군사 공격에 앞서 외교를 또 다시 거대한 연막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는지 여부를 아무도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이란 해상봉쇄, 2차 제재 경고 등 경제적 압박을 강화 중이고 지난주 <워싱턴포스트>(WP)가 휴전 만료에 맞춰 추가 항공모함 병력이 중동에 도착할 수 있다고 보도하는 등 군사적 압박도 강화 중인데, 이러한 압박이 협상 영향력을 위한 것인지 전투 재개를 위한 것인지 점점 불투명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가디언>은 지난주 레바논 휴전,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일부 해제 흐름이 미국의 이란 해상봉쇄 해제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이 기대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해상봉쇄를 유지하고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을 가져갈 것이라고 발표해 이란이 "항복했다는 인상"을 주며 이란의 반발이 "불가피"해졌다고 분석했다.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무절제함"이 협상이 혼돈을 가져왔다고 비판했다.
레바논 휴전으로 급물살을 타는 듯 했던 미·이란 종전 협상 전망이 다시 불확실해지자 국제유가는 요동쳤다. 20일 BST 오전 9시7분 기준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5.38달러(5.95%) 오른 95.76달러에 거래 중이다. 이날 장중 배럴당 97.5달러까지 급등하기도 했다. 같은 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EST 오전 4시16분 기준 전 거래일보다 5.56달러(6.29%) 오른 배럴당 89.41달러에 거래 중이다. 장중 한때 배럴당 91.2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크리스 라이트 미 에너지 장관은 19일 미 CNN 방송에 휘발유 가격이 "정점을 찍었을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갤런당 3달러 이하로 떨어지는 건 "내년" 전에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자동차협회(AAA) 집계에 따르면 현재 미국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4달러를 넘어서, 1년 전보다 갤런당 1달러 가량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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