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외교가 연 길 위에 금융이 올라탔다. 수출입은행이 튀르키예 고속도로 사업에 1억 유로(약 1734억원)를 투입하기로 하면서, 한국도로공사의 건설·운영 사업이 본궤도에 들어갔다. 지난해 11월 한·튀르키예 정상회담을 계기로 맺은 도로 인프라 협력 약속이 실제 사업과 자금으로 이어진 것이다.
20일 수은에 따르면 이번 지원 대상은 한국도로공사가 추진하는 ‘크날르~말카라 고속도로 건설·운영 사업’이다. 튀르키예 북서부 마르마라 지역을 가로지르는 이 사업은 이스탄불 서쪽 외곽 크날르에서 출발해, 국내 건설사가 시공했던 차나칼레 현수교 및 고속도로와 이어지는 총 127㎞ 구간을 건설하고 이후 운영까지 맡는 프로젝트다. 도로 하나를 놓는 사업이 아니라, 시공 이후의 운영 수익까지 함께 가져오는 구조다.
이번 지원의 핵심은 ‘무엇을 짓느냐’보다 ‘어떻게 버느냐’에 있다. 해외 인프라 사업은 오랫동안 시공 중심으로 움직였다. 공사를 따내면 매출은 생기지만, 완공과 동시에 수익도 끊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운영·관리(O&M)는 다르다. 완공 이후 수십 년 동안 이어지는 장기 계약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만든다. 경기 변동에도 상대적으로 덜 흔들린다. 수은이 이번 사업에서 도공의 운영·관리 계약까지 뒷받침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 기업의 해외 수익 구조를 단기 공사 중심에서 장기 서비스 중심으로 옮겨 놓으려는 시도인 셈이다.
이 구조는 후속 수주로도 이어진다. 해외 발주처는 입찰 과정에서 유사 사업 경험을 중시한다. 같은 종류의 도로를 지어본 적이 있는지, 운영한 이력이 있는지가 승부를 가른다. 도공이 이번 사업으로 운영 경험을 축적하면 국내 건설사와의 컨소시엄을 통해 튀르키예 내 후속 대형 사업에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다. 한 번의 금융 지원이 한 건의 수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입찰의 자격을 만드는 구조다.
출발점은 외교였다. 지난해 11월 한·튀르키예 정상회담을 계기로 도공과 튀르키예 고속도로청은 도로 인프라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번 금융 지원은 그 협약이 실제 사업으로 이어진 사례다. 정상외교가 길을 열고, 정책금융이 그 길을 사업으로 굳힌 셈이다. 말로 끝날 수 있었던 약속이 계약과 자금 집행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튀르키예의 위치는 이 사업의 성격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이 나라는 중동·유럽·아시아를 잇는 ‘중간 회랑’의 핵심 국가다. 중국에서 출발해 카자흐스탄, 카스피해, 아제르바이잔, 조지아를 거쳐 튀르키예를 통해 유럽으로 연결되는 물류 축의 관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기존 물류 경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 노선의 전략적 가치도 함께 높아졌다. 튀르키예가 교통 인프라 확충에 힘을 쏟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수은이 이 지점에 자금을 넣은 이유도 명확하다. 단순한 건설 지원이 아니다. 물류와 자본이 모이는 길목에서 우리 기업의 사업 기회를 선점하려는 판단이다. 중동 정세가 흔들릴수록 튀르키예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 커진다. 길 위를 흐르는 사람과 물자, 자본이 많아질수록 그 길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사업의 가치도 함께 올라간다.
수은 관계자는 “중동 상황 속에서도 튀르키예의 전략적 중요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며 “우리 기업의 해외 수주 영역을 넓히고 양국 간 경제 협력을 공고히 하는 기반을 만들어가겠다”고 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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