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경제] 최송목 작가 = 우리는 때때로 “잘 대접받았다”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자리를 경험한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정성이 넘치는 듯하지만, 이상하게 편하지 않고, 배려는 느껴지지 않는 자리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난 친구로부터 점심 초대를 받았다. 그는 특정 음식점과 시간을 정해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제안했다. 다른 일정이 가능한지, 어떤 음식을 선호하는지는 묻지 않았다. 오랜만의 만남이라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음식이 나왔다. 메뉴는 이미 정해져 있었고, 나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는 “이거 괜찮지?”라고 물었지만, 그 질문은 사실상 확인에 가까웠다. 그 순간 문득 ‘이 자리가 과연 나를 위한 자리일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분명 나를 대접했다. 먼저 초대했고, 비용도 부담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상대를 향한 배려가 빠져 있었다. 접대는 있었지만 후대는 없었다. 접대(接待)는 절차와 형식에 무게를 둔다. 체면을 세우고 관계를 관리하며, 자신의 성의를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 그래서 접대의 중심에는 상대가 아니라 ‘나’를 앞세우기 쉽다.
반면 후대(厚待)는 상대방 입장에서 출발한다. 이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이 자리가 부담스럽지는 않은지를 먼저 묻거나 생각한다. 후대는 비용이나 격식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고급 식당이 아니어도 괜찮고, 성대한 자리가 아니어도 무방하다. 중요한 것은 선택권을 남겨두는 태도, 상대를 계산의 대상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마음이다.
손자병법은 이를 ‘부전이굴(不戰而屈)’이라 했다. 싸우지 않고도 상대가 스스로 따르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미다. 진정한 승리는 결국 상대의 마음을 얻는 데 있다. 피상적으로 상대를 대하는 접대는 관계를 소모시키지만, 상대를 진심으로 헤아리는 후대는 관계를 깊게 만든다.
이 차이는 기업과 조직문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형식적인 접대 문화가 강한 조직일수록 회식은 많지만 신뢰는 쌓이지 않는다. 리더가 정한 시간, 정한 장소, 정한 메뉴에 구성원은 ‘참석’만 할 뿐이다. 회식은 관계를 위한 자리일 뿐 마음의 연결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실제로 기업에서 회식이 잦은데도 조직 만족도가 낮은 이유다. 후대가 아니라, 관리의 수단으로 직원을 대하기 때문이다.
반면 후대의 감각을 가진 조직은 다르다. 회식 자체를 줄이거나 형태를 다양화하거나, 유연하게 선택 가능한 모임으로 바꾸고, 특히 불참에 대한 눈치를 없앤다. 식사를 제안하면서도 시간과 메뉴를 스스로 정하게 한다. “시간을 비워둘 테니 편한 방식으로”라는 말 한마디가 그 어떤 형식적 격려보다 더 큰 신뢰를 형성한다. 이때 구성원은 ‘불려간다’가 아니라, ‘존중받는다’라고 느낄 것이다.
그래서 접대는 ‘했다’라는 자기만족의 기록이지만, 후대는 ‘받았다’라는 상대의 기억이 된다. 아무리 좋은 식당이라도 상대의 일정과 취향이 배제되면 그것은 대접이 아니라 연출된 행사다. 반면 소박한 자리라도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선택이 담겨 있다면, 그것이 진짜 후대다.
문제는 우리가 종종 접대를 하면서도 스스로는 ‘후대하고 있다’고 믿는 데 있다. 돈과 시간을 들였고, 자리를 마련했으며, 먼저 초대했으니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대가 빠진 대접은 나를 드러내려는 이기적인 자기과시에 머물 뿐이다.
대접의 품격은 비용이 아니라 방향에서 결정된다. 오늘 우리가 만든 이 자리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그 답이 접대와 후대를 가르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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