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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마켓in 허지은 기자] 경영권 분쟁을 치르고 있는 고려아연(010130)이 최근 공시한 5411억원 규모의 자금 조달 내역에서 실제 돈을 빌려준 대주와 담보권자를 사실과 다르게 기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윤범 회장 측 특수목적법인(SPC)의 차입처는 물론, 오너 일가가 개인 지분을 맡기며 체결한 담보계약 상대방마저 오기된 것이 확인되면서 부실 공시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 14일 제출한 ‘주식등의대량보유상황보고서’에서 SPC인 피23파트너스가 메리츠증권으로부터 5411억원을 차입했다고 공시했다. 아울러 최윤범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11인이 보유 주식 62만1463주를 담보로 제공한 계약 상대방 역시 메리츠증권으로 명기했다.
하지만 이데일리 취재 결과, 실제 자금을 대여하고 주식 담보권(질권)을 설정한 주체는 메리츠증권이 아닌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캐피탈인 것으로 드러났다. 메리츠증권은 이번 딜의 설계를 맡은 주선 업무만 담당했을 뿐, 실제 대출 약정서 상의 대주와 담보권자 명단에는 이름이 빠져 있었다. 그럼에도 고려아연 공시에선 실제 대주 정보가 통째로 누락된 채 제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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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시장에선 메리츠증권이 베인캐피탈 보유 고려아연 지분 2.01%(41만9082주)를 인수한 주체로 알려졌다. 특히 메리츠증권이 대출 담보로 오너 일가 11명의 보유 주식을 설정하면서, 담보유지비율을 통상적 수준을 훨씬 웃도는 300%로 잡았다는 점이 알려지며 과도한 담보계약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 고려아연이 제출한 공시에서 차입처와 계약 상대방이 메리츠증권으로 명기되며 이는 기정사실화됐다.
◇메리츠 요청에…'실제 대주' 누락한 공시
고려아연은 이같은 공시 기재가 메리츠 측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대주단에 포함된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캐피탈이 전면에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아, 주선금융기관인 메리츠증권이 차입까지 수행하는 형태의 공시가 불가피했다는 해명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공시 이후 기재 내용과 관련해 계약 구조에 대한 문의에 상세히 설명했다”며 “현재로서는 정정 공시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상장사가 수천억원 규모의 차입처와 법적 권리관계인 담보권자를 전혀 다른 법인으로 기재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특히 담보계약은 대주주 일가의 개인 재산권에 대한 질권자가 누구인지 명시하는 핵심 정보임에도, 계약 당사자조차 잘못 기재한 채 공시를 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금융감독원은 공시 내용과 실제 계약 사이의 ‘불일치’가 시장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확인에 착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국이 공시와 관련해 사전에 조율하거나 승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선을 그었다. 금감원은 즉각 경위 파악에 나설 방침으로, 기업과 당국 간의 입장 차이가 드러나며 논란은 증폭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이 단순 기재 실수를 넘어 공시 제도의 근간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본시장법상 상장사의 자금 원천을 투명하게 밝혀야 함에도 대주단의 비공개 요청을 이유로 실체를 가리는 행위가 용인된다면 심각한 문제라는 비판이다. 결과적으로 고려아연의 부실 공시가 증권사의 규제 우회 의혹을 자초하고, 투자자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제공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한편 금감원은 해당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본격적인 사실관계 확인에 착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해당 공시 내용과 실제 거래 구조 사이의 불일치 사안을 인지했으며, 즉시 해당 기업에 경위를 파악하고 중요 사항 누락 여부를 검토해 후속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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