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 흉기를 들고 주택가를 배회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남성은 "수면 장애를 앓아왔는데 최근 약을 바꿨다. 왜 흉기를 들고 배회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약물 부작용인 것 같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채널A가 20일 이처럼 단독 보도했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16일 오후 1시 30분쯤 서울 은평구 빌라 밀집 지역에서 흉기를 들고 배회한 혐의로 체포됐다. 적용된 혐의는 공공장소흉기소지죄. 정당한 이유 없이 도로·공원 등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흉기를 소지하고 드러내 공중에게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킨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범죄다. 지난해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4월 8일부터 시행된 신설 규정이다.
경찰은 "젊은 남자가 흉기를 들고 돌아다닌다"는 목격자 신고를 받고 출동해 자택에 있던 남성을 긴급체포했다. 서울 은평경찰서는 남성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 중이다.
공공장소흉기소지죄는 2023~2024년 신림역 칼부림 사건, 서현역 칼부림 사건, 은평구 일본도 살인사건 등 이상동기 강력범죄가 잇따르면서 입법 논의가 본격화됐다. 종전에는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거나 구체적인 해악 고지 이전 단계는 처벌이 어려웠고, 경범죄처벌법상 흉기 은닉 휴대죄는 최대 벌금 10만 원에 불과해 처벌 공백이 크다는 지적이 있었다.
A씨 주장이 사실이라면 수면장애와 관련한 여러 의학적 가능성이 검토될 수 있다.
우선 몽유병(수면 보행증)이 대표적으로 거론된다. 몽유병은 수면 중 무의식 상태에서 걷거나 행동하는 증상이다. 비렘(Non-REM) 수면 3단계인 깊은 수면 단계에서 주로 발생한다. 몽유병 환자는 행동 당시 의식이 없으며, 깨어난 뒤 해당 행동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단순히 걷는 수준을 넘어 집 밖으로 나가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경우도 보고된다. 성인에게서는 수면 부족, 극심한 스트레스, 수면제나 항불안제 등 특정 약물 복용이 몽유병을 유발하거나 악화하는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남성이 언급한 '약 교체'는 그런 지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수면 장애 치료에 흔히 쓰이는 수면제 계열 약물, 특히 비벤조다이아제핀계 약물(졸피뎀 등)은 수면 보행증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보고된 바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졸피뎀 등 일부 수면제에 대해 수면 중 운전, 식사, 성행위 등 무의식적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문 부착을 의무화하고 있다. 약을 새로 바꾼 직후 이런 행동이 나타났다면 약물 유발성 몽유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렘수면행동장애(RBD)도 가능성 있는 진단 중 하나다. 정상적인 렘(REM) 수면 중에는 근육이 마비 상태가 돼 꿈에서 일어나는 행동이 실제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렘수면행동장애가 있는 경우 이 근육 마비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아 꿈속 행동을 실제로 구현하게 된다. 소리를 지르거나, 팔다리를 휘두르거나, 침대에서 뛰어내리는 등 격렬한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렘수면행동장애는 주로 50대 이상 남성에게서 많이 발생하지만 젊은 층에서도 나타난다. 항우울제나 항정신병 약물 복용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수면 관련 해리 장애도 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해리 장애는 의식, 기억, 행동이 통합되지 않고 분리되는 상태를 말한다. 수면과 각성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행동하고 이후 기억이 없는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극심한 수면 부족이나 특정 약물 복용 후 각성 상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반수면 상태에서 행동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수면 분절과 각성 혼란 상태도 유사한 증상을 만들 수 있다. 수면이 지속적으로 방해받아 깊은 수면과 얕은 수면 사이를 반복하면 완전히 깨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행동하는 이른바 '수면 취기(sleep drunkenness)' 또는 '혼돈성 각성'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이 상태에서는 외견상 깨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판단력과 인식이 극도로 저하돼 있어 이후 기억이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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