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최병일 칼럼니스트]
프로젝트 헤일메리/강동혁 옮김/RHK
헤일메리는 미식축구에서 절박한 상황에 던지는 기적같은 패스를 뜻한다. 지구 멸망이 얼마남지 않은 순간 우주로 쏘아올린 우주선이 헤일메리인 이유도 지구를 구하는 기적같은 순간을 염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스케일’이 아니다. 우주 공간에 뚝 떨어져 버린 ‘고독’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일이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 난제를 정면으로 돌파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놀랍도록 인간적이다.
소설의 문을 여는 순간, 독자는 기억을 잃은 채 우주선에서 깨어난다. 같이 떠났던 동료들은 이미 죽어 있다. 철저하게 혼자가 된 것이다. 이 설정은 단순한 미스터리가 아니다. 주인공이 상황을 이해해 가는 과정 자체가 곧 독자의 학습 곡선이 된다. 과학적 발견의 쾌감을 서사의 엔진으로 바꿔놓는다. 이는 작가 앤디 위어가 이미 전작 '마션'에서 입증했던 방식이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한층 더 세련되고 감정적으로 확장됐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문제 해결 서사’가 결코 건조하지 않다는 데 있다. 수식과 실험, 가설과 검증이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도 이야기의 중심에는 늘 관계가 놓여 있다. 인간과 인간, 더 나아가 인간과 ‘타자’ 사이의 신뢰와 연대가 이 작품의 핵심 축이다. 과학은 도구일 뿐, 결국 세계를 구하는 것은 이해하려는 의지와 공존의 감각이라는 메시지가 은근하면서도 강하게 스며든다.
이 지점에서 많은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마션을 떠올릴 것이다. 실제로 두 작품은 몇 가지 분명한 공통점을 공유한다. 극한 상황에 놓인 주인공, 과학적 사고를 통해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구조, 그리고 위기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태도.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혼자 버티는 이야기’에서 ‘함께 살아남는 이야기’로의 이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션이 철저히 개인의 생존기였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관계의 서사다. 전자는 고립된 인간의 생존 본능을 그렸고, 후자는 낯선 존재와의 협력이라는 더 복잡하고 윤리적인 문제를 탐색한다. 그 결과, 감정의 결은 훨씬 깊고 넓어진다. 독자는 단순히 “살 수 있을까”를 넘어서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또 하나의 차이는 ‘지구’의 존재감이다. 마션에서는 지구가 구조의 주체로 기능했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에서는 지구 자체가 위기의 대상이자 구원의 이유로 작동한다. 이로 인해 이야기의 스케일은 단순한 개인 생존을 넘어 인류 전체의 운명으로 확장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거대한 서사는 아주 사적인 선택—한 개인의 결단—에서 완성된다.
과학적 설명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문장은 결코 독자를 밀어내지 않는다. 오히려 유머와 리듬감 있는 대화가 긴장을 완급 조절하며 읽는 속도를 끌어올린다. 우주 과학을 소설로 풀어주는 데도 결코 어렵지 않다. 이는 ‘어렵지 않게 이해되는 과학’이라는 작가의 장점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다만 이번 작품에서는 감정선이 훨씬 강조되며, 때로는 과학보다 관계의 온기가 더 오래 남는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질문을 남기는 작품이다. 인간은 얼마나 이기적인 존재인가, 혹은 얼마나 이타적일 수 있는가. 그리고 완전히 다른 존재와 우리는 과연 ‘협력’할 수 있는가. 이 질문들은 우주라는 배경을 벗어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한편의 시나리오 같은 문체여서 인지 앤디 위어의 소설은 전작 '마션'에 이어 영화로 만들어졌다. 대개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는 소설의 상상력을 뛰어넘기 어려운데 이번 영화는 화려한 미장센때문인지 소설만큼 박진감이 넘친다.
뉴스컬처 최병일 skycb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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