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방산의 인텔' 꿈꾸는 LG전자…반도체 그늘에서 시작된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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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방산의 인텔' 꿈꾸는 LG전자…반도체 그늘에서 시작된 반격

비즈니스플러스 2026-04-20 11:27: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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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이란 전쟁에 여전히 안개속을 헤매이고 있는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임직원들이 사상 최대 규모의 성과급을 지급받을 것으로 예상되자, 이를 전국민 모두에게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뜨거운 화제가 되고 있다. 

자신을 공무원이라고 밝힌 한 직장인은 지난 18일 한 익명 커뮤니티에 "하이닉스 성과급은 왜 하이닉스만 받느냐"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과거 SK하이닉스가 경영 위기에 처했을 때 산업은행을 통해 막대한 국세가 투입됐으니 그 결실인 성과급 역시 전 국민이 향유해야 마땅하다"는 논리였다. 

엉뚱한 내용임에는 분명한데 그만큼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한국 기업들의 약진이 새삼 눈에 띄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들어가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리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한국경제를 지탱하는 것은 아님도 확인할 필요는 있다. 

만화같은 이야기이기는 한데 두 아들을 SK하이닉스와 LG전자에 취업시켜 언제나 어깨를 으쓱이고 다니던 지인이 전해준 말이 새삼 우스개처럼 떠오른다. 

지인에 따르면 수년 전만 해도 두 아들의 직장생활은 서로 비교대상이 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하이닉스에서 수억원의 상여금을 받아내는 아들에 비해 LG전자에 다니는 아들이 상대적으로 소외감에 빠지더니 이제는 아예 우울증에 빠질 정도로 위축된 모습을 보여 안타깝다는 것이다. 말이 안타깝다는 이야기이지 사실 속내를 보면 두 아들 모두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 분명했다. 

최근 LG전자 주가가 장기 소외를 극복하고 올 들어 가끔 급등세를 시현하면서 우상향하는 현상을 보면 새삼 LG전자의 변신 과정에 시장의 관심이 점차 집중되고 있는 것 역시 확실하기 때문이다.   

LG전자 사옥 / 사진=LG전자
LG전자 사옥 / 사진=LG전자

◇전장·HVAC·AI로 체질 개선에 나선 가전명가 LG전자

초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카피가 안방극장을 수놓던 시절, 금성사(현 LG전자)는 단순한 제조사가 아닌 신뢰의 상징이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슈퍼사이클'을 타고 화려한 숫자를 찍어낼 때,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LG전자가 이제 그 '신뢰의 자산'을 무기로 조용하지만 거친 반격을 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1980년대, 금성사 컬러TV 광고의 한 구절인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는 한국 광고사를 넘어 한국인의 소비 철학을 관통하는 명문장이었다. 이 문구는 단순히 내구성 좋은 제품을 팔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고객의 삶에 깊숙이 뿌리내리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LG전자는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를 지나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반도체 거인들의 압도적인 실적에 가려져 '만년 저평가'의 늪에 빠져있던 LG전자가, 이제는 '가전기업'이라는 낡은 외투를 벗고 '미래 모빌리티와 AI(인공지능) 솔루션'이라는 새 옷으로 갈아입으며 시장의 시선을 모아가고 있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LG전자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은 회의적이었다. '초콜릿폰'과 '프라다폰'으로 세계를 호령했던 휴대폰 사업(MC사업본부)은 스마트폰 전환기에 실기하며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돈 먹는 하마'로 전락했었다. 투자자들은 혁신이 사라진 LG전자에 차가운 등을 돌렸고, 주가는 10년 넘게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2021년, LG전자는 26년간 이어온 휴대폰 사업 철수라는 '단호한 선택'을 내렸다. 당시에는 뼈아픈 퇴각으로 보였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신의 한 수가 됐다. 휴대폰에 쏟아붓던 막대한 연구개발(R&D) 인력과 자본은 고스란히 전장(VS)사업과 AI 가전으로 수혈되었다. 패배를 인정하고 미래를 선택한 그 결단이 오늘날 LG전자 재평가의 핵심 동력이 된 것이다.

LG전자 재평가의 핵심은 전장(VS) 사업이다. 단순히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는 수준이 아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공급하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차량용 조명 자회사 ZKW를 통해 확보한 프리미엄 차량용 램프, 캐나다 자동차 부품제조사 마그나와의 합작을 통한 전기차 파워트레인(e-axle) 등 세 축을 통해 LG전자는 차량 내부 경험, 구동, 외부 시그널을 아우르는 구조를 완성했다.

LG전자 모델이 차량용 디스플레이 솔루션을 시연하고 있다. / 사진=LG전자
LG전자 모델이 차량용 디스플레이 솔루션을 시연하고 있다. / 사진=LG전자

그동안 문제는 수익성이었다. 대규모 수주에도 불구하고 초기 투자 부담으로 적자가 지속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고부가가치 인포테인먼트 비중이 확대되면서 손익 구조가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시장은 이제 전장 사업을 "언젠가 돈이 될 사업"이 아니라 "이익 기여가 시작되는 사업"으로 보기 시작했다.

또 하나 주목할 축은 HVAC(냉난방 공조) 사업이다.

AI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데이터센터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발열이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가 밀집될수록 열 발생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일부 데이터센터에서는 전체 전력의 30~40%가 냉각에 사용된다. 이 지점에서 공조 시스템은 단순 설비가 아니라 핵심 인프라가 된다.

LG전자는 가전 사업에서 축적한 인버터, 컴프레서 기술을 기반으로 고효율 칠러(냉각기)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했다. 결국 LG전자는 에어컨을 파는 기업이 아니라 에너지 효율을 설계하는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하이닉스 아들 부럽다'던 시대 끝나나…LG전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LG전자의 부활이 유독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그들이 가진 '정서적 자산' 덕분일지도 모른다. 

"사랑해요 LG", "엘라스틴 했어요" 같은 카피들은 한국인의 무의식 속에 '신뢰의 LG'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이러한 브랜드 파워는 위기 시에는 버팀목이 되고, 도약기에는 강력한 가속도가 된다. 

최근 구광모 회장이 강조한 "고객의 더 나은 삶"이라는 가치는 과거 금성사가 가졌던 '신뢰'의 정신을 현대적 AI 기술로 재해석한 것에 다름 아니다.

투자자들은 이제 LG전자를 삼성전자의 보조재가 아닌, 독립적인 성장 동력을 가진 '플랫폼 기업'으로 보기 시작했다. 하드웨어 판매에 그치지 않고 가전 구독 서비스(SaaS)를 통해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전 세계에 보급된 수억 대의 스마트 기기를 OS(운영체제) 플랫폼으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은 LG전자의 밸류에이션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LG전자의 주가가 최근 12만원대를 돌파하며 활기를 띠는 것은 단순히 일시적인 실적 개선 때문이 아니다. '잘하는 것(가전)'에 '미래인 것(전장·AI)'을 더해 사업 체질 자체를 완전히 개조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LG전자 주가는 2024년 초 8만원대에 머물던 주가는 2025년 중반 10만원을 넘어섰고, 올해 들어 12만원대까지 치솟았다.

최근 이란-이스라엘 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확인되듯, 현대전의 승패는 '누가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영리한 무인 체계를 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여기서 LG전자가 수십 년간 갈고닦은 '피지컬 AI'와 '온디바이스 AI' 기술은 강력한 전략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도 관심의 대상이다.  

적의 전파 방해가 난무하는 전장에서 드론은 클라우드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지형을 지각하고 목표를 식별해야 한다. LG전자가 가전과 로봇에서 구현한 초저지연 연산 능력을 활용하면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할 것이다.  

자료=유진투자증권
자료=유진투자증권

주목해야 할 점은 LG전자의 포지셔닝이다. LG전자는 직접 살상용 무기를 제조하는 전통적 방산업체의 길을 걷기보다, LIG넥스원이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같은 방산 거인들에게 핵심 심장(부품)과 뇌(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방산의 인텔'과 같은 역할을 지향할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 PC 시장을 인텔이 장악했듯, 미래 무인 체계의 표준을 LG전자가 설계할 수는 없을까.

대신증권은 지난 3월에 내놓은 보고서에서 LG전자에 대해 올해 피지컬 AI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기대된다며 투자의견 매수, 목표주가 16만원을 유지했다. 

대신증권은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한 종전 추정치인 1조6100억원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 이는 시장 평균 전망치(컨센서스)인 1조38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했다.

대신증권은 계열사 간의 시너지 효과, 축적된 스마트 팩토리의 노하우가 경쟁력으로 부각될 것으로 평가하고 가정용 로봇 사업에서 경험을 반영하면 다양한 로봇에서도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또 자체적인 모터 경쟁력으로 액츄에이터의 내재화·AI·배터리·디스플레이 등 로봇 관련한 수직계열화를 구축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이에 초기의 피지컬 AI 성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과제도 분명하다. 전장 사업의 수익성이 얼마나 빠르게 안정화될지, 그리고 '가전은 LG'라는 공식이 AI 시대에도 유효할지는 여전히 검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말은 더 이상 광고 카피가 아니다. 지금 LG전자가 내리고 있는 선택이 향후 10년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하이닉스 아들이 부럽지 않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시점이 올지, 시장은 그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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