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방송 성적만 보면 예상 밖이었다. JTBC가 야심차게 내놓은 신작인데 1회 2.2%, 2회도 2.2%에 머물렀다. 숫자만 놓고 보면 다소 밋밋한 출발이다. 그런데 정작 시장 반응은 전혀 다른 곳에서 먼저 터졌다.
방송 2회 만에 넷플릭스 발칵 / JTBC
구교환, 고윤정 주연의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단 2회 만에 넷플릭스 코리아 1위에 오르며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TV 시청률만 보면 조용한 시작인데, OTT에서는 가장 먼저 선택받은 작품이 된 셈이다. ‘28.4%’를 넘겠다던 포부를 당장 실현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화제성만큼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불이 붙었다.
20일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전날 방송된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2회는 전국 유료가구 기준 2.2%를 기록했다. 지난 18일 방송된 1회와 같은 수치다. 하지만 같은 날 넷플릭스 코리아 ‘오늘 대한민국의 TOP 10 시리즈’ 오전 10시 기준 1위는 이 작품이 차지했다. 뒤를 이어 ‘신아랑 법률사무소’, ‘사냥개들’, ‘황천의 츠가이’, ‘원펀맨’, ‘용감한 형사들’, ‘킬 블루’, ‘이서진의 달라달라’, ‘성난 사람들’, ‘그것이 알고싶다’가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시청률 성적표와 OTT 체감 화제성이 극명하게 엇갈린 것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이 작품이 애초부터 작은 기대작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구교환과 고윤정이라는 조합만으로도 화제를 모았고,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의 박해영 작가와 ‘동백꽃 필 무렵’, ‘웰컴투 삼달리’의 차영훈 감독이 의기투합했다. 여기에 박해준, 오정세, 강말금, 한선화 등 배우진까지 탄탄하다. 기대치가 컸던 만큼 첫 주 2%대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OTT 1위는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본방 시청률은 아직 낮지만, 지금 이 작품을 둘러싼 관심은 분명 살아 있다는 뜻이다.
시청률은 2%대인데 왜 넷플릭스에서 먼저 터졌나
박해영 작가 신작 / JTBC
답은 드라마의 결에 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첫 회부터 자극적인 사건을 몰아치는 작품이 아니다.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뒤처졌다고 느끼는 한 인간의 시기, 질투, 열등감, 외로움을 천천히 파고드는 방식에 가깝다. 속도보다 감정, 전개보다 여운이 앞선다. 이런 작품은 본방에서 한 번에 폭발하기보다 OTT에서 뒤늦게 반응이 붙는 경우가 많다. 추천 알고리즘과 입소문, 몰아보기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실제 첫 회 반응도 엇갈렸다.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느린 호흡이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는 반응이 나왔지만, 동시에 “구교환 배우 연기가 좋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보는 느낌이다”, “요즘 밤에 보기 좋은 드라마”라는 반응도 이어졌다. 결국 이 작품은 처음부터 모두를 한 번에 사로잡는 타입이라기보다, 맞는 시청자에게 천천히 스며드는 드라마에 가깝다. 넷플릭스 1위는 바로 그 침투력이 예상보다 빨리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박해영표 구원 서사, 이번에도 통할 조짐 보였다
황동만으로 분한 구교환 / JTBC
극의 중심에는 20년째 감독 데뷔를 이루지 못한 황동만이 있다. 구교환이 연기한 황동만은 친구들은 모두 영화계에서 자리를 잡아가는데 자신만 계속 제자리인 듯한 결핍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남의 성공에 흔들리고, 스스로의 초라함을 감추려 더 요란해지는 인물이다. 그런 황동만 앞에 변은아가 등장한다. 고윤정이 맡은 변은아는 모두가 무시하던 황동만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무너진 그의 감정에 조용히 손을 내미는 인물이다.
이 구조는 박해영 작가가 꾸준히 밀어온 구원 서사와 닮아 있다.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 역시 초반부터 강하게 치고 나가기보다 시간이 갈수록 대사와 감정이 쌓이며 입소문을 탔다. 이번 작품도 비슷한 길을 택했다. 1, 2회만 놓고 보면 황동만의 찌질함과 외로움, 그리고 변은아의 연대가 서서히 구조를 만들기 시작하는 단계다. 첫 주 시청률만 보면 약하지만, 이야기의 결은 분명 오래 가는 드라마 쪽에 가깝다.
구교환·고윤정 조합, 생각보다 더 강하게 붙었다
무가치함과 싸우는 고윤정 / JTBC
초반 화제성의 중심에는 역시 두 주연배우가 있다. 구교환은 황동만을 단순한 실패자로 그리지 않는다. 한심하고 초라한데도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되는 인물로 만든다. 남 잘되는 것에 흔들리고, 관계에서 밀려날수록 스스로를 더 우스워지게 만드는 사람의 민낯을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그 결과 황동만은 밉다가도 쉽게 외면할 수 없는 인물이 됐다. 고윤정 역시 변은아를 전형적인 구원형 여주인공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상처와 불안을 안고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가능성을 끝내 놓지 않는 얼굴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2회 후반부는 이 조합의 힘이 가장 선명했던 대목이다. 8인회에서 사실상 밀려나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받아주던 공간에서도 내쳐진 황동만은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를 건져 올린 사람이 변은아였다. 황동만이 자신을 모멸한 세계를 향해 “빛나는 것들끼리 빛나는 세상 만들어봐라. 하나도 안 빛난다”라고 쏘아붙이는 장면, 그리고 그를 지켜보던 변은아의 표정이 바뀌는 순간은 이 작품이 어디로 갈지 분명하게 보여줬다. 시청률보다 체감 반응이 빠른 이유도 결국 이런 감정선에 있다.
‘28.4%’ 포부, 허언이 될지 반전이 될지는 이제부터다
배우 오정세(왼쪽부터)와 강말금, 고윤정, 구교환, 한선화, 박해준이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스탠포드 호텔에서 열린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모자무싸'는 잘난 친구들 사이에서 혼자만 안 풀려 시기와 질투로 괴로워 미쳐버린 인간의 평화 찾기를 따라가는 드라마다 / 뉴스1
박해준은 제작발표회에서 자신이 출연했던 ‘부부의 세계’가 기록한 JTBC 역대 최고 시청률 28.4%를 언급하며 이번 작품으로 그 기록을 넘어보자는 목표를 밝혔다. 지금 2.2%만 보면 거리가 멀어 보여도, 드라마의 초반 흐름만으로 끝을 단정하긴 어렵다. 차영훈 감독 역시 시원한 성공담보다 따뜻한 위로와 공감이 있는 드라마라고 소개한 바 있다. 이 작품의 승부처가 즉각적인 자극보다 늦게 번지는 감정에 있다는 뜻이다.
같은 날 MBC ‘21세기 대군부인’이 11.1%를 기록하며 시청률에선 크게 앞섰지만, OTT 시장에서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결국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둘러싼 진짜 관전 포인트는 단순한 첫 주 숫자가 아니다. 낮은 본방 시청률에도 왜 플랫폼 시청자들이 먼저 반응했는지, 그리고 그 반응이 입소문으로 이어져 실제 시청률 반등까지 만들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모자무싸' 공식 포스터, 구교환X고윤정 / JTBC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도 분명하다. “우리는 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처럼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결국 “당신은 이미 충분히 가치 있다”는 쪽으로 나아간다. 잘나가는 친구들 사이에서 미쳐버릴 듯한 열등감에 휩싸인 인간, 그런 자신을 끝내 포기하지 않으려는 몸부림, 그리고 누군가의 작은 연대가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과정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승부는 단순한 흥행 수치보다 더 길게 갈 수 있다. 지금은 2%대지만, 이미 넷플릭스 1위에 오른 순간부터 이 작품의 진짜 싸움은 시작됐다. 박해영 작가 작품들이 늘 그랬듯 초반 숫자보다 뒤늦은 공감의 힘이 더 크게 작동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래서 지금 단계의 2.2%는 끝이 아니라 시작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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