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메이커=손보승 기자]
풍요의 유토피아인가 일자리의 디스토피아인가
최근 몇 년간 생성형 AI의 폭발적인 발전은 인류에게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그러나 기술 패권을 다투는 빅테크의 시선은 이제 지금의 AI를 아득히 뛰어넘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있다. 바로 ‘범용 인공지능(AGI)’이다. 전문가들은 AGI의 등장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의 발명을 넘어, 불이나 전기의 발견에 필적하는 문명사적 ‘특이점(Singularity)’이 될 것이라 예고한다.
특정 분야의 ‘장인’을 넘어선 만능의 ‘천재’
현재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고 감탄하는 AI는 학술적 용어로 ‘좁은 인공지능’으로 분류된다. 바둑 세계 챔피언을 꺾은 알파고,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려한 문장을 작성하는 거대언어모델(LLM), 암세포를 판독하는 의료용 AI 등은 모두 특정하게 주어진 영역 내에서만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발휘한다. 다시 말해 체스를 완벽하게 두는 인공지능에게 시를 쓰게 하거나, 코딩에 특화된 AI에게 자율주행을 맡길 수는 없다. 현재의 AI는 목적과 용도가 명확하게 제한된 ‘고도로 훈련된 장인’에 가깝다.
이와 달리 AGI는 이 모든 영역의 경계를 허무는 ‘보편적 지성’을 의미한다. 인간의 뇌처럼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한 분야에서 학습한 지식을 전혀 다른 분야로 전이하며, 스스로 추론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까지 갖춘 인공지능이다. 직관, 논리적 사고, 상식, 나아가 창의성까지 인간이 수행할 수 있는 모든 인지적 작업을 인간과 같거나 혹은 그 이상의 수준으로 해내는 존재다. 요컨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믿어왔던 ‘종합적 사고 능력’을 온전히 구현해 낸 것이 바로 AGI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AGI는 수십 년 뒤에나 가능할 영화 속 상상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거대언어모델(LLM)의 급격한 도약은 실리콘밸리 수장들의 시간표를 획기적으로 앞당겼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올해 1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어쩌면 올해 말 인간보다 똑똑한 AI가 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압도적인 컴퓨팅 파워의 진화 속도를 고려할 때, 지능의 폭발적 성장을 막을 물리적 장벽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역시 “AGI의 기준이 대부분 사람보다 10% 정도 잘하는 소프트웨어를 의미한다면 이미 지금 달성했다”이라며 AGI의 임박을 기정사실화했고, 다리오 아모데이 앤트로픽 CEO도 “6~12개월 안에 AI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업무 대부분을 대체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러한 전망에 힘을 실었다. 막대한 자본과 우수 인재가 집중된 현재의 연구 속도가 임계점을 돌파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들 ‘기술의 예언자’들은 막대한 연산 능력과 데이터의 결합이 지능의 질적 도약을 이끌 것이라 믿고 있다.
“거대한 확률적 앵무새일 뿐”
그러나 장밋빛 예언에 대해 학계와 일부 AI 석학들은 날 선 비판과 회의론을 제기한다. 현재 AI 열풍의 근간인 거대언어모델(LLM)이 아무리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더라도, 그것은 문맥상 다음에 올 가장 적절한 단어를 통계적으로 예측하는 ‘확률적 앵무새(Stochastic Parrot)’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인공지능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얀 르쿤 뉴욕대 교수는 최근 “인류가 자신의 지능을 ‘범용적’이라고 믿는 것부터가 허구”라고 주장했다. 그는 “범용성은 명확한 기술적 지표도, 합의된 개념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대신 르쿤 교수는 AI의 발전 목표를 ‘인간처럼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느냐’(AGI)가 아닌 ‘새로운 환경과 과업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해 성과를 내느냐’(SAI)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 연구진 역사 ‘2026년 AI 전망’ 보고서를 통해 AGI 연내 출현론을 일축했다. 제임스 랜데이 HAI 공동소장은 “올해 AGI가 등장하는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올해 산업 현장에서 생산성을 입증하지 못해 실패하는 AI 프로젝트가 속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인공지능 발전 협회 설문에 참여한 AI 연구자 475명 중 76%는 현재 접근 방식으로 AGI 달성 가능성이 낮다고 답했다.
뇌과학자들과 인지과학자들도 지능이란 단순히 언어의 패턴을 흉내 내는 것을 넘어, 물리적 현실과 교감하며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피드백을 수용하는 복합적인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즉, 컴퓨팅 파워를 무한정 늘린다고 해서 언어 모델이 갑자기 스스로 자아나 범용적 사고를 갖는 마법 같은 도약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재의 AGI 타임라인이 빅테크 기업들의 주가 부양과 투자 유치를 위한 ‘과장’에 불과하다고 경고한다.
‘고성능 도구’에서 ‘스스로 일하는 직원’으로
AGI의 도래 시기에 대한 논쟁을 차치하더라도, AGI가 경제 시스템에 미칠 파장은 우리가 경험해 온 산업혁명의 궤적을 완전히 이탈한다. 현재의 AI는 인간이 프롬프트(명령어)를 입력하고, 그 결과물을 검수하며 전체적인 방향성을 쥐고 있어야만 가치를 창출하는 도구에 가깝다. 주도권은 여전히 인간에게 있다.
그러나 AGI는 도구가 아닌 ‘자율적인 행위자’이자 완벽한 ‘노동력’ 그 자체다. 기업의 CEO가 AGI에게 “다음 분기 아시아 시장의 매출을 20% 끌어올릴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라”거나 “이 난치병의 단백질 구조를 분석해 신약 후보 물질을 찾아내라”고 목표만 제시하면, AGI는 스스로 계획을 수립하고 필요한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며, 오류를 수정해 최종 결과물을 도출해 낸다. 지치지 않고 잠들지 않으며 전 세계의 모든 지식을 꿰뚫고 있는 천재적인 한 명의 직원을 고용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학의 기본 전제인 ‘노동과 자본의 결합’을 근본적으로 해체한다. 기존에는 기업이 성장하기 위해 막대한 인적 자원의 고용이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AGI 시대에는 클라우드 서버에 접속하는 것만으로 최고급 인력을 즉각적으로 무한 복제해 투입할 수 있게 된다. ‘지능의 한계 비용’이 0에 수렴하는 것이다. 이는 기업이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도 무한한 생산성과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노동과 성장의 디커플링(Decoupling)’ 현상을 촉발하게 된다.
풍요의 유토피아인가, 잉여 인간의 디스토피아인가
AGI가 가져올 미래 경제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팽팽하게 맞선다. 긍정적인 전망은 AGI가 인류를 노동의 굴레에서 해방시키는 ‘포스트 희소성(Post-Scarcity) 경제’를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AGI가 과학적 난제들을 해결해 무한한 청정에너지를 공급하고, 질병을 정복하며,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할 것이라 예견한다. 이렇게 창출된 부를 ‘보편적 기본소득’의 형태로 분배하면, 인류는 생존을 위한 임금 노동에서 벗어나 자아실현과 예술, 철학적 탐구에 집중하는 진정한 의미의 르네상스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편에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디스토피아적 경고가 도사리고 있다. 가장 시급한 위협은 ‘구조적 대량 실업’이다. 과거의 기술 혁신이 블루칼라 노동자의 육체노동을 기계로 대체했다면, AGI는 의사, 변호사, 금융가, 프로그래머, 창작자 등 화이트칼라의 지적 노동을 최우선적으로 궤멸시킬 것이다. 인류의 대다수가 노동 시장에서 경제적 가치를 상실한 ‘잉여 계급’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부의 극단적 집중’이다. AGI 알고리즘과 이를 구동할 거대한 컴퓨팅 인프라를 소유한 극소수의 빅테크 기업과 자본가들이 전 세계의 부와 권력을 독점하게 될 것이다. 노동으로 자본을 축적하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완전히 끊어지며,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나아가 AGI의 가치관이 인간의 이익과 정렬되지 않을 경우, 인류의 통제력을 벗어난 지능이 어떤 파국을 초래할지 예측 불가능하다.
AGI는 단순한 기술적 도약이 아니다.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서 ‘가장 지능이 높은 존재’라는 타이틀을 처음으로 내려놓아야 하는 인지적·문명적 특이점이다. 우리가 열광하는 현재의 AI 붐은 다가올 거대한 해일의 전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기술의 진보를 멈출 수 없다면, 이제 인류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AGI의 개발 속도가 아니라, 이 압도적인 지능을 포용하고 부를 재분배할 ‘새로운 사회적 계약’과 경제 시스템의 근본적인 재설계일 것이다. 닥쳐올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갈림길에서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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