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의 칼럼] 심장과 뇌를 지배하는 대장의 미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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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 칼럼] 심장과 뇌를 지배하는 대장의 미생물

이데일리 2026-04-20 06:27: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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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석 서울의료원장(심장혈관흉부외과)]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2500년 전에 이미 “모든 병은 장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막연한 직관에 불과했던 이 말이 오늘날 최신 과학 연구들을 통해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현대 의학은 각 장기를 따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장기들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대장~ 심장~ 뇌라는 세 축의 연결이다. 인간은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라 수조 개의 미생물과 공생하는 복합체이며, 인체에는 100조 개 이상의 미생물 군집이 있고, 그 대부분은 위장관에 존재한다. 이들이 만들어내는 물질은 단순한 대사 부산물이 아니라 심장과 뇌 기능에까지 직접 영향을 미친다.

장내 미생물이 심혈관 건강을 좌우하는 핵심 열쇠는 TMAO라는 물질에 있다. TMAO는 소고기, 돼지고기 등의 식품에 함유된 콜린, L-카르니틴 등이 장내 미생물에 의해 트리메틸아민(TMA)으로 분해된 후, 간에서 산화되는 과정을 통해 최종 생성된다.

이렇게 생성된 TMAO는 여러 경로로 심장을 공격한다. TMAO는 콜레스테롤을 동맥 벽으로 진입시키는 한편, 과잉 콜레스테롤의 배출까지 차단해 동맥경화를 촉진한다. 또한 혈소판을 자극해 혈전을 만들어 심근경색과 뇌졸중의 씨앗을 심으며, 혈관 염증을 통해 신장 기능까지 악화시켜 심장에 연쇄적인 부담을 준다. 혈중 TMAO 농도가 높을수록 관상동맥 심혈관질환, 고혈압, 부정맥, 뇌혈관질환이 발생하기 쉬우며, 뇌졸중이나 심장발작을 포함한 심혈관질환의 강력한 예측 인자로도 지목되고 있다.

실제로 4,0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규모 임상 연구에서 TMAO 수치가 가장 높은 그룹은 가장 낮은 그룹에 비해 심혈관질환 발생 위험이 약 2.5배 더 높다는 사실이 입증됐으며, 안정적인 관상동맥 질환 환자의 TMAO 농도 분석을 통해 5년 후 사망률까지 예측 가능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반면 유익균이 만들어내는 ‘단쇄지방산(SCFA)’은 정반대의 역할을 한다. SCFA는 장내 미생물이 섬유질을 발효시킬 때 만들어지며, 장내 pH를 낮춰 유해균을 감소시키고 암모니아 흡수를 저해해 심혈관질환 위험을 낮추고, 혈압 강하에도 도움을 준다.

또한 콜레스테롤 합성을 조절하고 인슐린 감수성을 높여 비만과 당뇨병 예방에도 기여한다. 결국 장내 미생물의 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심장 건강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관상동맥질환 환자의 장내 미생물 구성을 분석해 보면, 질환이 없는 건강한 성인과 달리 유해균이 증가하고 유익균이 감소한 패턴을 보인다.

뇌 역시 장내 미생물의 영향권 안에 있다. 장과 뇌는 미주신경이라는 거대한 정보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미주신경은 척추동물에서 가장 긴 신경으로, 장에서 뇌로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 섬유와 뇌에서 장으로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 섬유가 80:20의 비율로 구성된다.

즉, 뇌가 장에 보내는 신호보다 장이 뇌로 보내는 신호가 훨씬 많다는 뜻이다. 장내 미생물이 생산하는 단쇄지방산은 장 점막을 보호하고 염증을 억제하며, 미주신경을 통해 뇌로 신호를 전달해 감정 조절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 외에도 장내 박테리아는 도파민, 세로토닌, GABA, 아세틸콜린과 같은 주요 신경전달물질을 만들고 조절하는 데도 관여한다. 우리가 느끼는 기분, 불안, 우울감이 장 상태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 뇌 연결은 알츠하이머 같은 신경퇴행성 질환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알츠하이머성 치매 생쥐 모델에서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장벽 기능을 약화시키고 장내 독소가 혈액으로 누수되어 전신적인 염증반응이 증가했다는 국내 논문도 있다. 이 논문에서 건강한 장내 미생물을 이식했을 때 기억 및 인지기능 장애가 회복되고 뇌 내 특징적인 단백질 축적과 신경세포 염증반응이 완화됐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변비가 있는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에 비해 알츠하이머병 발생 위험이 2.04배에서 2.82배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렇게 장 건강은 심장과 뇌 건강에 큰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어떻게 식생활 습관을 바꾸는 것이 좋을까. TMAO는 주로 붉은 고기, 달걀노른자, 유제품처럼 콜린과 L-카르니틴이 풍부한 식품을 섭취할 때 만들어지므로 이를 과도하게 섭취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주의할 점은, 생선은 육류에 비해 TMAO를 더 많이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류는 수압에 견디기 위해 체내에 TMAO를 축적하며, 특히 심해어류일수록 함량이 높다.

따라서 생선을 무조건 늘리기보다는 두부, 콩 같은 식물성 단백질로 육류를 대체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수용성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와 과일, 피스타치오·베리류 같은 항산화 식품을 함께 섭취하면 유익균을 늘리고 TMAO 생성을 억제하는 데 더욱 도움이 된다. 또한 TMAO를 줄이기 위해서는 한 가지 성분보다 다양한 성분이 혼합된 프리바이오틱스를 섭취하는 것이 좋은데, 장내 세균이 다양할수록 TMAO 감소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들을 우리 식재료로 구현한 것이 K-지중해식 식단이다. 올리브오일 대신 들기름을 요리 마지막 단계에 뿌려 사용하고, 백미 대신 식이섬유가 풍부한 현미를 선택하며, 다양한 나물과 두부, 콩, 생선으로 단백질을 채우는 방식이다. 김치는 유익균과 풍부한 식이섬유를 동시에 공급하는 훌륭한 발효식품이다. 탄수화물 50%, 지방 30%, 단백질 20%의 비율로 구성되는 이 식단은 장내 환경 개선에 최적화되어 있다. 지중해식 식단이 심장병 예방에 탁월하다고 오래전부터 알려진 이유가, 이제는 장내 미생물을 통한 TMAO 억제와 SCFA 생성 촉진이라는 메커니즘으로 명확히 설명된다.

결국 심장병 예방의 패러다임은 단순히 기름진 음식을 피하는 수준을 넘어,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건강하게 가꾸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올바른 식단으로 TMAO를 낮추고 SCFA 생성을 늘리는 동시에, 명상이나 심호흡으로 미주신경을 활성화해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을 돌보는 일이 곧 심장을 지키는 일이고, 나아가 치매를 예방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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