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써보는 <왕과 사는 남자>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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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써보는 <왕과 사는 남자> 감상평

평범한미디어 2026-04-19 22:42:36 신고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싶은 동기부여가 될 만큼만 읽다가,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면 그만 읽고 바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좋다. 물론 이동진 평론가처럼 스포를 확인해도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 타입이라면 그냥 읽어도 상관없다.

 

[평범한미디어 윤동욱 기자] 사실 필자는 신파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뭐 싫어한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예능도 고민 상담류? 이런 거 안 좋아한다. 사연을 토로하다 보면 분명 울게 되는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슬픈 것을 아예 안 보는 건 아닌데 뭔가 슬픈 장면이나 신파물을 계속 보면 상당히 피로감을 느낀다. 특히 개연성과 상관 없이 오직 울리기 위한 억지 신파는 정말 별로다. 그러나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다르다. 단순히 “울어 왜 안 울어? 정말 슬프지 않아?”라고 하는 어거지 신파가 아니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안타까운 감정이 자연스럽게 끓어오르는 그런 슬픔이다. ‘비통하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2월 초에 개봉해서 두달 넘게 장안의 화제인 <왕과 사는 남자>를 좀 늦게 봤다. 리뷰 기사를 쓰고 싶은데 뒷북 치는 꼴이 되더라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왕과 사는 남자> 영화 포스터. <사진=쇼박스>

 

굳이 결론부터 말자하면 결국 노산군(단종)은 안타깝게도 죽음을 맞이 한다. 사실 역사물의 스포일러는 역사 그 자체이기 때문에 아예 스포로부터 자유로우려면 대한민국 의무교육에서 국사를 빼야 한다. 다만 노산군의 죽음을 다루는 방식은 기존에 다뤘던 흔한 묘사들과는 사뭇 다르다.이 영화가 특별한 점은 다들 생각한대로다.

 

한국사를 좋아하거나 한국 사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선시대 문종-단종-세조로 이어지는 시기를 잘알고 있을 것이다. ‘계유정난’이 일어난 시기는 ‘여말선초’가 지나간 시점인데 그래도 조선 초기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계유정난과 ‘장희빈’으로 대표되는 숙종 시기로 연결되는 그 타이밍이다. 잡설은 이만하고 왜 이 영화가 특별할까? 그동안 계유정난을 통해 수양대군(세조)이 왕좌를 차지하는 모습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숱하게 다뤄졌다. 하지만 단종은 유배를 가서 얼마 안가 사약을 받거나 교살을 당하는 모습으로 별 비중 없이 그려졌다. 단종이 유배지에서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묘사가 없다. 사실 계유정난과 수양대군에 초점을 맞춘 작품들에서는 그 부분에 분량을 할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왕과 사는 남자>는 그동안 다루지 않았던 단종의 유배지 생활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깊고 신선한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다.

 

스토리라고 하면 사실 간단하다. 계유정난으로 인해 노산군으로 강등된 단종(박지훈 배우)은 결국 강원도 영월의 청령포라는 곳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현재 이곳은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유명 관광지의 지위에 오르게 됐다. 청룡포에 있는 마을 촌장(유해진 배우)은 유배를 올 예정인 고위 권력자를 잘 모시면 마을이 부유해진다는 소문을 듣고 어떻게든 영월군수(박지환 배우)에게 청탁해서 고위 권력자를 자기 마을로 모셔올 계획을 짠다. 그러나 이게 웬걸? 고위 벼슬아치 수준이 아니라 하필이면 폐위된 왕이 와버린 것이다.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똥 밟았다고 생각했으나 이내 정성껏 노산군을 대접했다. 폐위된 충격으로 밥도 멋지 못하고 있던 노산군은 점차 마을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게 되며 찐한 우정과 의리를 키우는 그런 스토리다.

 

폐위된 노산군과 촌장 엄흥도의 모습. <사진=쇼박스>

 

여기까지만 보면 뻔하디 뻔한 것 같지만 뻔하더라도 보는 재미와 즐거움이 있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이 노산군이 직접 CG로 만들어진 호랑이를 활로 잡는 장면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역시 왕은 왕이었다. 기본 무술을 습득해야 했던 왕의 대목을 제대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호랑이 CG가 허접했다는 몇 안 되는 지적이 있긴 한데 이건 그냥 넘어가자. 배우들 연기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촌장 역을 맡은 유해진 배우는 정말 말이 필요 없다. 그냥 연기의 장르 자체가 유해진인 느낌이다.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그동안 맡았던 배역들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를 하다가도 후반부에 노산군의 ‘부탁’을 진심으로 들어줄 때는 연기의 연륜이 느껴졌다.

 

단종 역의 박지훈 배우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돌 출신의 연기자로 매끄럽게 궤도에 오른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시리즈물 <약한 영웅>에서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사실 조금 우려되는 지점은 실제 역사에서 단종은 고작 향년 16세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배우 박지훈은 20대 초중반의 나이인데, 단종은 한국 나이로 고작 중학생 3학년 때 사망한 것이다. 아무리 동안이라고 해도 중학생의 연령을 잘 소화할지 의문이었는데 첫 등장씬부터 그런 우려는 단박에 깨부숴졌다. 일단 워낙 동안이라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조선시대에는 16세도 준 성인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역사적 고증으로 봐도 납득이 갔다.

 

그리고 메인 빌런인 한명회(유지태 배우)의 무게감도 컸는데 수양대군이 코빼기도 나오지 않는 영화 설정상 욕받이를 전담해야 했다. 한명회라는 인물도 계유정난과 수양대군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인데 유지태 배우의 풍채가 워낙 거대해서 위압감이 제대로 구현됐다. 안 그래도 골격 자체가 큰 배우인데 벌크업까지 해서 더 커졌다. 최근에 유지태 배우는 악역이나 최종 보스 역할을 많이 맡았는데 피지컬에서 나오는 위압감과 함께 연기력이 더해져서 그야말로 찰떡궁합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계략을 써서 노산군과 금성대군(이준혁 배우)을 한 번에 함정에 빠트려 제거하려는 권모술수의 진수를 보여준다.

 

메인 빌런인 한명회의 모습. <사진=쇼박스>

 

후반부로 갈수록 몰입도가 극강으로 치닫는데 금성대군과의 재역모 플랜이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단종은 사약을 받게 되는데 여기서 노산군은 깊은 정을 나눈 촌장에게 ‘자신을 잘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촌장은 할 수 없다고 울면서 말해 보지만 결국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수락한다. 노산군이 쓰던 활시위를 풀어 목에다 감은 뒤 문 밖으로 실을 연결해 밖에 있는 사람이 줄을 잡아당기는 방식이다. 한 마디로 교살인데 노산군이 저들의 손에 죽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고 간청한 탓이다. 촌장은 방 안에 있는 노산군에게 절을 한 뒤 문 밖으로 나온 줄을 잡아당기며 “전하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라고 울부짖으며 줄을 힘껏 당긴다. 그 와중에 창호지 문에 발라놓은 나무 살이 한 칸씩 부서지면서 줄이 점점 아래로 내려오는데 이 장면이 뭔가 가슴 아프면서도 신파의 요소를 극대화했던 연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노산군은 한 많은 짧은 삶을 마쳤다. 노산군의 시신은 쓰레기 처리하듯 강가에 버려진다. 전왕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우도 해주지 않은 것이다. 노산군을 어렸을 때부터 모시고 유배지에서도 곁을 지킨, 거의 엄마나 다름없는 상궁(전미도 배우)은 이를 보고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강물로 뛰어들어 버린다. 분명 시신을 거둬 제사를 지내지 마라는 엄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촌장은 개의치 않고 망설임 없이 강가로 들어가 노산군의 시신을 수습한다. 역사에 따르면 촌장 엄흥도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위선피화 오소감심(爲先被禍 吾所甘心). 선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하더라도 내가 달게 받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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