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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기는 종결되기 마련이나, 특정한 작별은 공동체에 깊은 상실감을 남긴다.
수십 년간 지역 공동체의 안식처였던 ‘솔저스 필드’의 철거 소식은 은퇴를 앞둔 선수들에게 단순한 장소의 소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야구 경기>는 이 이별의 순간을 과잉 된 감정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상실을 그저 슬퍼해야 할 일로 두지 않고, 그 존재를 귀하게 여기는 ‘존중’의 마음으로 바꾸어 차분하게 응시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학적 특징은 실제 야구 경기의 흐름을 거의 실시간으로 추적한다는 점이다.
카메라는 극적인 편집으로 시간을 압축하는 대신, 경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선수들이 겪는 미세한 기다림과 소강상태까지 가감 없이 담아낸다.
이러한 연출은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한 관람객을 넘어, 사라질 공간 속에서 마지막 시간을 함께 견디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 듯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해가 저물고 운동장의 조명조차 사용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에 놓이자, 선수들은 자동차들을 끌어모아 헤드라이트를 켠다.
인공적인 조명 대신 불규칙하게 쏟아지는 자동차 불빛에 의지해 경기를 지속하는 이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이는 단순히 경기를 끝내기 위한 고집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이 허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들의 정체성을 증명하려는 끈질긴 의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폐쇄가 결정된 야구장에서 선수들이 선택한 작별법은 평소와 다름없는 ‘플레이’의 지속이다.
상실 앞에서 비장한 각오를 다지기보다는, 오히려 평소처럼 실없는 농담을 나누고 잡담을 늘어놓으며 때로는 느슨하게 경기에 임한다.
하지만 이들의 무심한 듯한 태도 속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야구선수로서 마운드를 지키겠다는 단단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여기서 영화가 제시하는 존중의 태도가 드러난다.
진정한 예우는 소멸할 대상을 연민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그 존재의 본질을 잃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는 것이다.
끝까지 경기를 이어가는 행위 자체가 공간에 바치는 가장 격조 있는 인사가 된다.
영화의 원제이자 빌 리(Bill Lee)가 구사했던 ‘이퍼스(Eephus)’는 위력적인 구질이 아니다.
중력에 의지해 느린 포물선을 그리는 이 공은 효율과 속도를 우선시하는 현대 사회의 논리와 정반대 지점에 위치한다.
영화는 자책이나 슬픔에 매몰되는 대신,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과 일상적인 농담들을 포착한다.
이러한 ‘비효율적 과정’이야말로 상실의 무게를 견디게 하는 실질적인 힘임을 영화는 느린 공의 궤적을 통해 역설한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하나둘 운동장을 빠져나가자, 야구장을 밝히던 자동차들도 줄을 지어 떠나기 시작한다.
정적이 찾아온 운동장에는 이들의 마지막 경기를 축하하는 폭죽 소리와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쓸쓸한 라디오 소리만이 맴돌 뿐이다.
영화는 무언가를 억지로 채워 넣기보다 비어 있는 공간을 그대로 응시하며, 상실을 마주하는 최종적인 자세가 결국 ‘부재’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임을 말해준다.
화려한 은퇴식은 없지만, 어둠 속으로 흩어지는 선수들의 모습은 설령 장소는 사라져도 그곳에서 함께 나눈 기억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지막 야구 경기>는 상실의 극복을 종용하지 않는다. 대신 소멸의 과정을 어떻게 품격 있게 통과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을 제시한다.
무언가를 떠나보내야 하는 시기를 지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존재의 본질을 지키며 마지막 공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그 과정은 충분히 유의미하다는 사실을 정제된 영상 언어로 전달한다. 오는 22일 개봉.
/디컬쳐 박선영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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