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만명이 달려갔다…전국민이 한 마음으로 움직인 사건, 지금 보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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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만명이 달려갔다…전국민이 한 마음으로 움직인 사건, 지금 보면 놀랍다

위키트리 2026-04-19 11:07: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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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검게 변했던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적지 않다.

자원봉사자들이 길게 줄을 지어 기름을 제거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 사회는 큰 위기 앞에서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였던 기억을 여러 번 남겼다.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이던 일에도 전국 곳곳에서 손을 보탰고 그렇게 힘을 모아 위기를 헤쳐나간 경우가 적지 않았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로 알려진 '삼성 1호-허베이 스피릿 호 원유 유출 사고'도 그런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사건 중 하나였다.

지금의 태안 앞바다는 다시 사람들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 됐다. 관광객이 찾고 어민들은 다시 바다에 나가지만 한때 이곳이 검은 기름으로 뒤덮였다는 사실은 이제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그래도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해안으로 밀려오던 기름띠와 코를 찌르던 냄새, 그리고 그 앞에 끝없이 모여들던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이 아직 선명하다.

검게 변한 서해, 순식간에 번진 기름띠

2007년 12월 7일 아침, 태안 앞바다에서는 선박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예인 중이던 해상 크레인과 유조선이 부딪히면서 유조선의 화물탱크가 파손됐고 원유 1만 2547㎘가 바다로 유출됐다. 단일 사고로는 당시 기준 국내 최대 규모였다.

사고 직후 바다는 순식간에 검게 변했다. 유출된 기름은 태안 앞바다에 머무르지 않고 조류와 바람을 타고 빠르게 번져 나갔다. 태안 해안선은 물론 충남 서해안 곳곳이 오염됐고 기름띠는 군산과 목포를 지나 제주 인근 해역까지 내려갔다.

해양 오염 사고가 발생한 허베이 스피리트 호의 파손된 모습. / 연합뉴스

양식장과 어장은 직접 피해를 입었고, 오염 면적만 8000여㏊에 달했다. 만리포와 천리포, 모항, 안흥항, 가로림만, 안면도 해안에는 시커먼 기름이 들러붙었고, 바위와 모래사장, 갯벌은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검게 물들었다.

더 큰 문제는 사고 뒤였다. 이미 바다로 퍼져버린 기름을 당장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당시 해상에는 풍랑주의보가 내려져 있었고, 높은 파도와 강한 바람 때문에 초기 방제 작업도 뜻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충돌 부위를 급히 막거나 바다 위에 저지선을 치는 작업마저 쉽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기름은 더 넓게 퍼졌고, 피해 지역도 빠르게 늘어났다. 현장에서는 눈앞에서 오염이 번지는 걸 보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국의 대응도 늦고 서툴렀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상황은 하루가 다르게 더 심각해졌다.

123만 자원봉사자, 검은 바다를 닦아냈다

사고 직후부터 태안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빠르게 불어났다. 처음에는 해경과 방제선 중심으로 대응이 시작됐지만, 검은 기름띠가 서해안을 따라 빠르게 번지면서 현장은 곧 사람과 장비가 총동원된 대규모 방제 현장으로 바뀌었다. 사고 수습 과정에는 연인원 207만 명이 투입됐고, 이 가운데 자원봉사자만 123만 명에 달했다. 장비도 3만 5000대가 동원됐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이뤄진 작업은 사람 손으로 기름을 닦아내는 일이었다. 바위와 모래, 갯벌에 들러붙은 기름을 하나하나 걷어내야 했는데, 기계와 장비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구간이 워낙 넓었다.

검게 뒤덮인 해안선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바위 틈과 갯벌 구석마다 기름이 깊게 밴 상태였다. 현장을 처음 본 이들 사이에서 “이걸 정말 사람 손으로 다 닦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 나왔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로 방제 작업 11일째인 2007년 12월 17일 원북면 신두리 해안사구 인근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신었던 장화가 깨끗하게 닦여진 상태로 놓여있다 / 연합뉴스

기름 유출 피해 복구용 헌 옷 등 구호 물품 / 연합뉴스

작업 여건도 넉넉하지 않았다. 보호복과 장비는 초반에 크게 부족했고 흡착포가 모자라 헌옷이나 수건으로 기름을 닦아내는 일도 이어졌다. 그 빈자리를 메운 건 전국에서 몰려든 자원봉사자들과 구호 물품이었다. 장갑과 마스크 같은 기본 장비부터 생활용품까지 현장으로 끊임없이 들어왔고 부족한 장비를 사람들의 손길이 메우는 장면이 반복됐다.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 속에서 사람들은 허리를 굽힌 채 바위 표면을 문지르고 모래에 밴 기름을 퍼내고 갯벌에 엉겨 붙은 기름을 떼어냈다. 가까이서 보면 끝이 없어 보이는 작업이었지만 같은 자리에 여러 사람이 달라붙으면서 해안선은 조금씩 색을 되찾기 시작했다. 대학생과 직장인, 종교단체, 지역 주민, 군 장병은 물론이고 연예인들까지 현장을 찾았고 성탄절과 연말에도 봉사 행렬은 끊기지 않았다.

정부 대응도 뒤따랐다. 태안 등 피해 지역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고 이후 유류오염사고 지원 특별법과 해양환경 복원 조치도 이어졌다.

유출된 기름으로 뒤덮인 충남 태안 만리포해수욕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나란히 배를 대고 누워 선착장에 묻은 기름띠를 닦아내고 있다.2 / 연합뉴스

혼자였다면 엄두도 내기 어려웠던 일이었지만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움직이자 끝이 없을 것 같던 검은 바위와 모래사장은 조금씩 달라졌다. 당시 태안의 복구가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거대한 재난 앞에서 방제선과 중장비, 제도적 지원이 함께 움직였지만 현장을 버텨낸 것은 바다로 몰려든 사람들의 손이었다.

사고 직후만 해도 현장에서는 복구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만큼 오염 범위가 넓었고 피해도 심각했다. 하지만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고 방제 작업이 이어지면서 상황은 조금씩 달라졌다.

해안 곳곳에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던 기름이 서서히 걷혀 나갔고, 최소 10년은 걸릴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던 작업은 예상보다 빠르게 진척됐다. 눈에 보이는 기름은 사고 두 달 만인 2008년 2월 무렵 상당 부분 제거된 것으로 평가됐다.

자원봉사자들이 바위에 달라붙은 기름때를 제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사람이 닦아낸 해안, 되돌아온 생태계

물론 바다가 단기간에 완전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기름이 한 번 휩쓸고 간 바다는 표면만 닦아낸다고 곧바로 회복되지 않았고 어민들과 지역 주민들이 체감한 상처는 훨씬 오래 남았다.

이후 실제 환경이 얼마나 회복됐는지는 사고 발생 10년 뒤 나온 조사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충남연구원 서해안기후환경연구소 윤종주 책임연구원 등 연구진은 2017년 발간한 보고서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고 후 10년 동안의 충청남도 해안환경 변화’에서 사고 이후 충남 해안의 변화를 장기적으로 추적해 정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고 직후 기준치를 크게 웃돌았던 해수 내 기름 성분은 약 1년 안에 빠르게 줄었고, 갯벌과 퇴적물에 남은 유류 오염과 해안가에 남아 있던 기름 흔적은 2~3년에 걸쳐 점차 회복된 것으로 분석됐다.

태안 북부해안 및 태안 남부도서의 잔존유징 분포 변화 / 충남연구원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유출사고 후 10년 동안의 충청남도 해안환경 변화' 보고서

눈에 바로 드러나지 않는 생태계 변화는 조금 더 천천히 진행됐다. 해양생물 몸속에 축적됐던 독성물질도 2~3년 정도에 걸쳐 감소했고, 갯벌에 사는 저서동물의 종수와 종다양성이 사고 이전에 가까운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에는 약 3~4년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사고 직후에는 오염에 강한 일부 종이 우세해지며 생태계 균형이 흔들렸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다양한 생물이 돌아오는 흐름이 확인됐다.

보고서는 충남 서산 가로림만처럼 생태적 가치가 큰 갯벌 해역도 이런 회복 흐름 속에서 함께 관찰했다. 한때 심각한 오염 충격을 받은 서해안 일대가 사람들의 방제 작업과 시간의 흐름, 지속적인 조사 속에서 조금씩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사람이 살린 바다, 기록으로 남은 기적

처음엔 사람 손으로 감당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현장이었지만, 결국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로 조금씩 달라졌다. 시간이 지나도 이 사건을 떠올릴 때마다 ‘사람이 바다를 살렸다’는 말이 따라붙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후 태안의 극복 과정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남게 됐다. 사고와 방제, 복구 과정에서 정부와 지자체, 민간단체가 남긴 기록 22만 2000여 건은 2022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 지역목록에 등재됐다. 단순한 사고 기록이 아니라, 그 이후 이어진 대응과 참여, 그리고 회복의 과정을 함께 담은 기록이었다.

2007년 12월 검은 기름띠로 물든 태안의 모습(위)과 10년이 지나 푸른 에메랄드 빛을 되찾은 태안의 모습(아래). / 연합뉴스

이 사고도 어느덧 20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한국 사회를 두고 예전보다 각박해졌다는 말도 자주 나온다. 서로에게 무심해졌고, 내 일 아니면 지나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지적도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이 사고가 우리 사회에 더 특별하게 기억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함께 만들어낸 기적 같은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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